정부 주도 논콩 재배 확대 정책의 역설
정부는 그간 쌀 공급 과잉을 해결하고 식량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논콩 재배를 강력히 추진했으나, 소비 대책 없는 생산 장려는 거대한 재고와 시장 가격 왜곡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농민들은 기상 재해와 정책 불확실성 속에서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으며 농정의 신뢰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보조금에 의존한 인위적 수급 조절이 임계점에 도달한 처지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농정의 최대 난제는 쌀이었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고정적인 재배 관행은 쌀값 하락과 막대한 재고 관리 비용이라는 재정적 부담을 낳았다.
정부가 내놓은 회심의 카드는 바로 전략작물직불제였다.
벼를 심던 논에 콩이나 가루쌀을 심으면 파격적인 보조금을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하계 콩 재배 시 헥타르당 100만 원(약 740달러), 동계 밀과 연계한 이모작 시 최대 250만 원(약 1,852달러)에 달하는 직불금은 농민들에게 거부하기 힘든 유인책이었다.
그러나 이 달콤한 보조금의 이면에는 시장의 자생적 수급 조절 기능을 마비시키는 거대한 왜곡이 숨어 있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지적했듯, 인위적인 가격 지지와 보조금은 시장의 가격 신호를 차단한다. 농민들은 소비자의 수요가 아닌 정부의 보조금 단가에 반응해 작목을 전환했다. 그 결과 2021년 1만 660헥타르였던 논콩 재배 면적은 크게 늘어, 2025년산 재배 의향 면적은 전년 대비 48.9% 증가한 3만 3,421헥타르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공급이 폭발하는 동안 수요는 정체돼 있었다는 점이다.
국산 콩은 주로 두부와 장류로 소비되는데, 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가격이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가공업체들이 갑자기 수입산을 국산으로 바꾸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국산 콩 가격은 kg당 약 4,000원(약 2.96달러) 선인 반면, 수입 콩 단가는 kg당 약 500원(약 0.37달러) 전후로 7배에서 9배가량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의 2025년 12월 말 대두 선물 가격인 부셸당 1,061.50센트(약 14,330원, kg당 약 527원)와 비교하면 국산 콩의 가격 경쟁력은 처참한 수준이다.
잉여 물량의 창고: 보조금이 지운 시장의 가격 신호와 역계절 진폭의 습격
민간 시장에서 소화되지 못한 논콩은 결국 정부의 창고로 몰려들었다. 정부는 쌀 수급 안정을 위해 논콩 전량 수매를 원칙으로 내세웠고, 2024년산 콩 수매량을 전년보다 51.5% 늘린 5만 톤까지 확대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재앙을 예고했다. 2024년 초 4만 9,000톤이었던 정부 콩 비축량은 8만 8,000톤까지 치솟았다. 비축 여력이 한계에 도달하자 정부는 뒤늦게 재배 면적 축소를 검토하기 시작했고, 이는 농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시장의 왜곡은 가격 형성 과정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공급이 줄어드는 단경기에 가격이 올라야 하지만, 국산 콩 시장에서는 수확기보다 단경기 가격이 오히려 낮아지는 역계절 진폭 현상이 빈번해졌다. 대규모 정부 비축 물량이 시장을 압박하고, 공급 과잉에 대한 심리적 불안이 가격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25년 단경기 콩 가격은 평년 수준인 kg당 5,780원(약 4.28달러)보다 낮은 5,500~5,600원(약 4.07~4.15달러) 내외에서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수급 불균형 속에서 농민들의 고통은 가중됐다. 특히 논콩 주산지인 전북 김제와 부안의 상황은 처참했다. 콩은 본래 밭에서 자라는 작물이다. 물 빠짐이 좋지 않은 논에서 콩을 키우는 것은 기상 이변에 매우 취약한 선택이었다. 2023년과 2024년 여름의 집중호우는 논콩 포장을 거대한 진흙탕으로 만들었다. 김제시 부량면의 한 농민은 "콩 열매가 아래쪽에 달려 있는데, 완전히 잠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 신청조차 받지 않았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실제 수확 현장에서는 꼬투리가 열매를 맺지 못한 채 말라비틀어진 콩들이 수두룩했다.
농민들의 절망은 트랙터 시위로 이어졌다.
"정부 정책을 믿고 벼 대신 콩을 심었더니 돌아온 것은 재해와 정책 후퇴뿐이다"라는 외침과 함께 자식처럼 키운 콩밭을 갈아엎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현장을 방문해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라는 속담을 인용하며 격려했지만, 농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국들녘경영체중앙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논콩 재배 면적 축소는 식량 안보라는 국가적 목표를 포기하는 것이며, 농정 신뢰를 붕괴시키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뢰의 붕괴와 재난의 경계: 기후 위기 시대의 식량 안보라는 허상
정부의 갈팡질팡하는 행보는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도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다. 불과 1년 전까지 식량 자급률 43.5% 달성을 외치며 논콩 확대를 독려하던 정부가, 재고 관리가 힘들어지자 슬그머니 면적 조정을 거론하는 모습에 청년 농업인들은 영혼까지 갈아 넣으며 분투한 결과가 배신이라며 냉소를 보냈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도 나온다. 일본 역시 논 타작물 재배를 장려하다가 쌀 부족 사태를 겪은 바 있다.
법정에서도 논콩과 관련된 갈등의 단면이 드러난다. 최근 의정부지방법원은 농지 지상에 버섯재배사를 매수하여 콩나물을 재배한 이에게 내려진 농지 처분명령이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농지를 불법으로 사용한 사례를 엄중히 다룬 결정이다. 농지법상 농지는 농작물 재배만 가능하지만, 농지 위에 지어진 버섯 재배사를 사서 콩나물을 키웠던 것이다. 법원은 이를 농지법 위반으로 보고, 해당 농지를 처분하라는 명령(농지 처분명령)이 적법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는 농지가 본래의 농업 경영 목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논콩 재배 역시 논이라는 공간의 본질적인 목적과 충돌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농기계 임대료와 인건비도 건지지 못해 수매 대금 지급 지연 소송이 줄을 잇는 현실은 논콩 농가의 경제적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논콩 정책은 생산성 향상보다는 보조금을 통한 소득 보전에 치우쳐 있다. 논콩의 kg당 생산비는 약 4,879원(약 3.61달러) 수준인데, 시장 판매 단가는 이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조금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좀비 산업화'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공용 콩의 TRQ(저율관세할당) 물량이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상황에서, 국산 콩이 수입산과의 거대한 가격 차이를 극복하고 시장에서 살아남기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일지도 모른다.
결국 해법은 생산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소비 생태계의 질적 전환에 있다. 국산 콩의 용도를 두부와 장류라는 전통적 틀에 가두지 말고, 식물성 단백질이나 푸드테크 등 신산업 원료로 대량 소비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들이 국산 콩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원료 공급 체계를 전문화하고, 수입산과의 가격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정교한 보전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논콩 재배지의 배수 기반 시설을 정비하여 기상 재해에 대한 회복력을 갖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부가 시장의 가격 신호를 무시한 채 목표치 달성에만 급급한다면, 논콩은 쌀 수급 안정의 구원수가 아니라 국가 재정과 농민의 삶을 갉아먹는 수렁이 될 것이다. 벼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황금빛 콩밭이 진정한 식량 안보의 요새가 될지, 아니면 보조금으로 지탱되는 거대한 신기루가 될지는 지금 정부가 내릴 정책적 결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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