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백의총
임진왜란 당시 조헌이라는 선비가 의병700명을 이끌고 일본군과 맞서싸우다 전원 전사하고 그들의 유해를 수습해 만든 무덤
근데 여기에 많은 논란이 있으니
이떄 죽은 조선인의 숫자는 실제로 1500~ 1700명이였기때문
사건은 이러했음
조헌이 금산에 있는 일본군 본거지를 쳐들어가기위해 의병700명을 이끌고 가는데
당시 일본군 1만명의 부대였음
이때 조헌과 같이있던 영규대사는 이를 말리며 자신의 의병과 관군이 합류하면 그때서 작전을 펼치자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전장으로 향함
영규의 승병들은 절대로 전투에 참여하면 안된다고 말렸지만 영규는 백성들이 스스로 죽을려고 가는데 어찌 보고만 있을수있냐고하며 그들을 따라감
이때 영규가 조헌에게 후퇴할것을 권유했는데
조헌은 " 원래 못이기는건데 충의와 격동으로 사기가 한창일때를 이용하려고한다"라고 하면서 출진한거임
여기서 말하는 충의와 격동은 이들이 도착전에 관군,의병이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의병이 전멸했으니 이번전투에 분노를 담았다 뭐 그런거임
이후가 더 어처구니 없는데
조헌은 700명을 이끌고 평지에서 1만명의 일본군이랑 싸우는걸 선택함
당연히 일본군에게 탈탈 털린 의병은 그대로 도망쳤는데
하필 진형을 쌓고 방어를 준비중이던 영규의 승병쪽으로 도망침
승병들은 의병들을 보호하기위해 자신들의 몸을 날려서 일본군에 맞서싸웠지만 영규를 포함해 전부 전사함
이후 소식을 들은 조헌의 제자들이 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는데 시체가 삭발이면 당연히 스님이니까 대머리들은 버려두고
머리카락이 있는 사람들만 수습하고 스님들의 시신을 버려두고감
이를 본 동네주민들이 스님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명복을 밀어줌
시간이 흘러 지금 불교계에서는 그래도 같이 희생한 스님들도 같이 챙겨주기위해 칠백의총의 이름을 바꿔달라고 하지만
당연히 조헌의 객기때문에 생긴일인걸 알고있는 일부 후손들은 반대하고있음
작년에는 스님들이 이들을위해 칠백의총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여하여 800의승을 기리는의례를 진행했는데
전부 자리를 떠나버림
심지어 국가유산청장도 행사에 참여했다가 불교의례가 시작되자 자리를 떠나버림 ..
아마 칠백의총의 명칭 변경은 쉽지않아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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