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배준철 기자] 지난 7일,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석상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김병기 의원, 국정원 시절부터 아끼던 후배고 능력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눈물을 머금고 제명해야 합니다. 그게 당도 살고 대통령도 사는 길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 원로가 불과 일주일 전까지 집권 여당의 원내 사령탑이었던 인물을 향해 '출당'을 넘어 '제명'을 촉구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 의견이 아니다. 6월 3일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5개월 앞두고 터진 초대형 악재 앞에서 민주당이 느끼는 위기감이 임계점을 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공천 헌금 의혹, 원내대표 사퇴로 봉합 불가
사태의 발단은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공천 거래' 의혹이다. 이재명 정부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낙마한 강선우 의원이 당시 공관위 간사였던 김병기 전 원내대표 측에 공천 청탁 명목으로 1억 원을 건넸다는 녹취록과 정황이 드러났다. 강 의원은 지난 1일 "당에 부담을 줄 수 없다"며 전격 탈당했다. 그러나 김병기 전 원내대표는 지난 연말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으면서도 "결백하다", "제명당하는 한이 있어도 제 발로 나가는 일은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수사기관의 칼끝이 집권 여당 핵심부를 겨누는 상황에서 그의 버티기는 당 전체를 '방탄 정당' 프레임에 가두고 있다. 이번 사안의 폭발력은 '매관매직'이라는 본질에서 나온다. 유권자는 정책 실패에는 관대해도 돈과 연결된 공천 비리에는 가차 없는 심판을 내린다. '개혁'과 '공정'을 기치로 내건 이재명 정부에게 핵심 실세가 연루된 공천 헌금 의혹은 정권 도덕성을 뿌리째 흔드는 치명타다.
■정치9단 원로 박지원 등판의 정치적 함의
박지원 의원이 총대를 멘 배경을 읽어야 한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직접 나서 전직 원내대표를 내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막대하다. 김 전 원내대표는 대선 과정에서부터 현 정부의 핵심 공신으로 꼽혀온 인물이다. 자칫 내부 권력 투쟁으로 비치거나 당내 주류 세력의 반발을 살 수 있다. 원로인 박 의원이 '악역'을 자처한 것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행보다. "사랑하는 동생이지만 베어야 한다"는 읍참마속의 논리로 지도부가 윤리심판원을 가동해 김 전 원내대표를 징계할 명분과 공간을 열어준 셈이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손절'로 기울었음을 시사한다. 한편으로는 당내 자정 능력을 보여주려는 전략적 포석이기도 하다. 야당의 공세가 본격화하기 전에 스스로 칼을 빼 드는 모양새를 갖추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선제적 쇄신' 메시지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느냐다.
■수도권 민심, 6·3 지방선거 최대 변수로 부상
6·3 지방선거 승패는 수도권에서 갈린다. 현재 판세는 시계제로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를 "구태 정치의 부활", "부패 완판 정당"이라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서울시장 선거를 비롯한 수도권 기초단체장 선거다. 서울과 경기는 부동산, 세금, '공정' 이슈에 가장 민감한 지역이다. 중앙당발 도덕성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으면 현장에서 뛰는 후보들의 경쟁력과 무관하게 '정권 심판론'의 바람을 피할 수 없다. 과거 선거가 증명하듯 선거 직전 터진 권력형 부패 스캔들은 지지층의 투표 의욕을 꺾고 중도층을 등 돌리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악재다. 민주당이 1월 내로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면, 김 전 원내대표가 포토라인에 서는 장면이 반복될 때마다 지지율 하락은 불가피하다. 강선우 의원 탈당으로 '꼬리 자르기'를 시도했지만, 몸통으로 지목된 김 전 원내대표가 남아있는 한 '반쪽짜리 쇄신'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결단의 골든타임, 공멸이냐 쇄신이냐
공은 민주당 지도부로 넘어갔다. 박지원 의원의 눈물 섞인 발언은 사실상 최후통첩이다.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안고 가다가는 지방선거 전체가 침몰할 수 있다는 경고다.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명확하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온정주의를 버리고 야당보다 더 가혹한 잣대로 내부를 도려내는 것이다. 김 전 원내대표에 대한 출당 조치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강도 높은 공천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
시간은 민주당의 편이 아니다. 5개월 뒤 유권자의 표심이 '이해'가 될지 '심판'이 될지는 지금 당장의 결단에 달려 있다. 박지원 의원의 읍참마속이 당의 생존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치에서 '때'를 놓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 민주당이 마주한 것은 단순히 한두 명의 의원 문제가 아니라 정권의 도덕적 정당성이라는 근본적 질문이다. 야당이 채 공격 태세를 갖추기 전에 스스로 칼을 빼는 것과,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조치를 취하는 것은 유권자에게 전혀 다른 메시지로 읽힌다. 6·3 지방선거까지 남은 150여 일, 민주당 지도부의 결단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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