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간이 없어 투루판 고대 유적 ‘아스타나 공동묘지, 베제클리크 석굴’은 갈 수 없었다. 아스타나 공동묘지는 투루판 외곽에 있는 4세기부터 8세기 사이의 귀족 묘지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도 아스타나 고분 유물이 있다. 20세기 초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가 약탈해 온 아스타나 고분벽화가 조선총독부를 거쳐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다. 중국의 창조신화에 나오는 ‘복희와 여와’를 표현한 그림도 있다. 하반신은 뱀의 형상이고 상반신은 ‘복희와 여와’인 벽화다.
영국의 오렐 스타인이 1907년 투루판 아스타나 고분 근처에서 8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편지는 313년 둔황에서 발송됐고 수신지는 ‘사마르칸트’(현재 우즈베키스탄)다. 편지를 갖고 가던 사람이 분실한 편지 8통을 이곳에서 발견했다. 소그드문자로 쓴 8통의 편지는 313년 또는 314년 종이에 쓴 편지다. 종이는 후한시대 채윤이 발명했다. 이 편지는 종이가 발명된 지 300여년도 안 되는 이른 시기의 귀한 편지인 셈이다. 비가 적게 오는 건조한 지역이라 1천700년간 보존된 것이다. 편지는 지금은 사라진 소그드어로 씌어 있다. 소그드 상인의 부인(미우나이)이 둔황에서 수천㎞ 떨어진 사마르칸트에 살고 있는 친정 부모에게 보내던 편지다.
미우나이 여인의 편지는 “부모 말을 안 듣고 남편 따라 중국에 온 것을 후회한다. 남편이 빚만 남겨 놓고 도망가 딸과 함께 살기가 어렵다. 남편 친구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딸하고 둘이 살고 있는데 친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도망간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도 함께 발견됐다. “당신의 아내가 되느니 차라리 개나 돼지의 아내가 되겠다. 가난해 딸과 함께 남의 양 치는 일을 도우면서 어렵게 살고 있다. 당신 빚 때문에 3년 동안 둔황을 못 떠나고 있다. 사마르칸트에 갈 여비 은화 20닢이 필요하다”고 쓰여 있다. 이 편지는 313년경 소그드 상인이 장안, 둔황, 사마르칸트 등 실크로드에서 광범위하게 국제 중계무역을 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화염산 아래 계곡에 유명한 베제클리크 석굴이 있다. 이곳의 중요한 벽화는 20세 초 독일과 러시아 도굴꾼이 거의 뜯어갔다. 독일이 약탈해 간 인류사적 유물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으로 유실됐다. 6년 전 베제클리크 석굴을 갔을 때 남아 있는 부처상 눈은 이슬람교도에 의해 모두 훼손돼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도 일본의 오타니 원정대가 베제클리크 석굴의 벽에서 뜯어온 불상 벽화가 있다. 석굴 벽의 벽화를 칼로 도려내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 한국에 있다. 베제클리크 석굴의 귀중한 유산한 지금은 사라진 ‘마니교’ 벽화다. 마니교는 3세기 페르시아의 마니가 창설한 종교다. 마니교는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불교의 교리를 혼합한 것으로 선의 신과 악의 신이 투쟁하는 현실에서 선의 신이 승리하도록 선하게 살자는 취지의 종교다.
우리는 다음 목적지 쿠차를 향해 출발한다. 고대 중국은 이 지역을 ‘오랑캐 호(胡)’자를 붙여 호서(胡西) 지역이라 불렀다. 기원전 2세기 한 무제 때 장건은 서역의 월지국과 동맹을 맺는 데는 실패했지만 아랍과 페르시아 등 다양한 서역 과일을 중국으로 가져왔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한자 호(胡)자로 시작되는 ‘호도, 호산(마늘), 호마(참깨)’ 등이 서쪽에서 왔음을 상징한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옛날 실크로드 상인들이 ‘침묵의 바다’, ‘죽음의 바다’라며 무서워한 곳이다. 위구르어로 ‘한번 들어가면 살아 돌아오기 어려운 땅’이라 한다.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비구름이 히말라야산맥과 쿤룬산맥에 막혀 비가 안 오는 지형이다. 높은 산맥에 쌓여 있는 만년설과 빙하의 눈 녹은 물이 이 지역의 생명수다. 쿠차로 가는 사막의 중간에 거대한 쿠차협곡과 타림강이 흐른다. 수십㎞의 긴 쿠차협곡은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연상케 한다.
차는 해발 1천500m의 험준한 길을 굽이굽이 돌아 조심스럽게 달린다. 광대한 사막의 지형과 모양도 다양하다. 옛날 실크로드 상인과 구법승들이 사막의 높은 산맥과 협곡을 넘어올 때의 고난이 상상된다.
실크로드는 쭉 뻗어 있는 ‘선(線)’의 길이 아니고 오아시스와 오아시스를 연결하는 점선의 ‘오솔길’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오솔길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눈이 오면 수시로 사라진다. 그래서 길을 찾기가 힘들다.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 호펜이 1877년 ‘실크’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였지만 실제는 비단길과는 거리가 먼 위험한 길임을 경험하고 있다. 실크로드는 상품 외에도 동서양의 문화, 종교, 전쟁, 질병이 이동했던 역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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