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을 모욕하는 행위를 이어온 일부 극우 단체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돌입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얼빠진 사자 명예훼손’이라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는데, 이에 발맞춰 경찰은 엄정 대응을 예고했다. 피해자를 지원해 온 단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이 개정돼 반복되는 모욕 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보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경찰 발표를 종합하면 경찰은 소녀상 설치 장소에서 시위를 열고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등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등 일부 단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전날 경찰청은 “소녀상이 설치된 장소를 중심으로 집회 및 시위 관리를 강화하겠다”며 “소녀상 훼손 및 명예훼손 등 위법 행위에 대해 엄정히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일부 단체가 전국 소녀상을 순회하며 유튜브 등을 통해 혐오 행위 및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확산하고 있다”며 “학교 앞 소녀상에 ‘매춘 진로 지도’ 피켓을 거는 등 성적 혐오 표현으로 학습권을 침해하거나 우려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등은 철거 시위에 이어 무학여고, 서초고 등 학교 앞 소녀상에 ‘철거’라는 마스크를 씌우기도 했다. 또 소녀상 철거와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도 개최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경찰은 지난해 9월 관련 고발장을 접수한 뒤 수사에 들어간 상황이며 현재 혐의 성립 여부와 추가 가담자 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다.
경찰은 관련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 서초경찰서를 미신고 집회 사건을 집중적으로 수사하는 관서로 지정했다. 경찰청은 “사건을 병합하고 구체적 발언 양상, 과거 수사 기록 등을 분석해 (사자)명예훼손, 모욕 등 혐의를 적극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라며 “전국 소녀상 주변 순찰을 강화하고 온라인 불법행위에도 적극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시위를 주도한 단체의 대표 등이 입건돼 수사받고 있다는 내용의 인터넷 기사 링크를 공유하며 “얼빠진 사자명예훼손”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의 공개 발언을 계기로 정치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법 개정안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국회 성평등가족위원회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명예 훼손이나 평화의 소녀상 등 상징물 훼손 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이 계류 중이다.
피해자를 비롯해 관련 단체들은 오랫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의 개정을 촉구해 왔다. 현행 ‘위안부피해자법’에는 피해자 명예 훼손이나 역사 왜곡 주장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는 상태다. 이를 바탕으로 반대 단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자발성을 강조하는 주장을 내놓으며 문제 제기에 대해 표현의 자유라고 맞서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 등은 2024년에만 전국 각지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혹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자택을 찾아 ‘챌린지’ 방식의 모욕 시위를 100여차례 이상 진행했다. 경남에서는 2024년 9월 창원시 성산구 경남교육청 제2청사 옆 소녀상,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문화의 거리, 김해시 내동 연지공원 등에 설치된 소녀상 앞에서 ‘위안부 실상 왜곡 날조한 흉물’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방하기도 했다.
정의기억연대 등은 역사 왜곡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 보호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찰의 강경 대응 방침에도 불구하고 법적 장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명예훼손죄가 개별 인격체를 보호 대상으로 삼는 범죄라는 점에서 동상 자체를 훼손하거나 모욕한 행위에 대해서는 혐의 적용이 제한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소녀상 훼손이나 모욕 행위에 대한 처벌을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 침해 가능성에 대한 여야 간 판단이 갈리고 있는 상태다. 국회 성평등가족위원회 등에서 여야 입장이 조율되고 있는 가운데, 성평등가족부는 매년 소녀상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지자체들이 소녀상 관리에 관한 조례를 마련하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성공회대 일본학과 양기호 교수는 본보에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반복되는 근본 원인으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라며 “당시 문제 해결의 책임이 일본이 아닌 한국 정부로 사실상 전가되면서 국내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보수·진보 갈등이 심화됐다”고 짚었다.
피해자 보호법 개정 논의에 대해서는 “단기적인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정치적 대립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정부가 보다 원칙적인 과거사 대응과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야 하며 생존 피해자가 6명 밖에 남지 않는 현 시점에서 피해자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토대로 일본과의 외교를 이어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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