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손성은 기자] 정부가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재임 관행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지배구조 손질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금융지주 회장 연임 관행을 ‘부패한 이너서클’로 규정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논란의 핵심은 재임 기간 자체가 아니다. 장기 재임을 가능하게 만든 견제와 감시 장치의 취약성이다. 특히 “한국 금융지주는 해외와 달리 현직 회장의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차단할 구조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당국, 금융지주 CEO 연임 구조 전면 점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오는 16일 은행연합회와 5대 금융지주가 참석하는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연다. 대통령 발언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TF에서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 선임·승계 절차, 이사회 독립성, 성과보수 체계 등 지배구조 핵심 요소를 전반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국내 금융지주에서 CEO 장기 재임은 낯선 일이 아니다.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은 약 9년,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은 10년,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은 6년간 재임했다. 이들은 실적 개선을 바탕으로 연임에 성공했지만, 개인 중심의 장기 집권이 그룹 차원의 견제 기능을 약화시켰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됐다.
◇해외도 장기 재임 흔해…차이는 ‘견제 작동 여부’
해외 금융사에서도 장기 재임 사례는 드물지 않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CEO는 2006년 취임 이후 약 20년간 회사를 이끌고 있고, BNP파리바의 장 로랑 보나페 CEO도 2011년 말 취임해 14년째 재임 중이다.
차이는 재임 기간이 아니라 권력 집중을 통제하는 구조에 있다. 해외 금융사들은 독립 사외이사 중심의 지명위원회가 CEO 후보군을 상시 관리하고, 위원회 활동 내역과 평가 기준을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한다. 의결권 자문사와 대형 기관투자자도 이사회 구성과 CEO 선임 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국 금융지주 역시 회장후보추천위원회와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두고 이사회 활동을 공시한다. 외형상 제도는 갖췄지만, 사외이사 후보 추천 단계에서 현직 회장의 영향력을 차단할 명확한 기준과 절차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제 기준은 ‘이사회 독립성’에 방점
국제 기준은 이사회 독립성을 핵심으로 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CEO 선임과 승계 절차를 이사회가 직접 통제하고, 독립 사외이사가 중심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원칙도 이사회의 책임과 독립성을 강하게 요구한다. 특히 승계 절차나 리스크·감사 조직 인사에 대한 CEO의 개입을 명확히 제한한다.
한국은 금융지주회사법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을 통해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설치, 사외이사 과반 구성, 내부 지배구조 규범 공시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다만 이사회가 현직 CEO를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강행 규정은 제한적이다.
◇‘관치’ 논란 속 제도 개선 불가피
금융권 안팎에서는 정부 개입을 둘러싼 시각이 엇갈린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민간 금융사의 CEO 선임·승계 절차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우려하지만, 학계는 금융산업의 공적 성격을 고려하면 지배구조 문제를 단순한 관치로 보지 않는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CEO가 지배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기 어렵도록 제도와 관행이 설계돼 있지만, 한국 금융지주는 이사회 독립성을 확보하기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며 “금융기관은 공적 보증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산업인 만큼, 지배구조가 기업가치나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훼손한다면 정부가 제도 정비에 나설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지주 지배구조 논쟁의 초점은 특정 회장의 장기 재임 여부가 아니다. 금융산업의 공공성에 걸맞은 이사회 독립성과 감독 체계를 갖추고 있는가다. 정부가 추진하는 TF 논의가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승계 절차의 투명성 확대로 이어지면, 금융지주 지배구조 운영 방식의 변화는 불가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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