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 벽두부터 베네수엘라를 장악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선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덴마크령 그린란드로 향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의 일부인 서반구(아메리카 대륙과 그 주변) 장악력 강화 목표를 담은 '돈로주의'(19세기 미국식 고립주의인 먼로주의의 트럼프 버전) 행보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나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하여 백악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연일 그린란드 관련 발언을 이어가며 '군사행동'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백악관 "그린란드획득 논의중…미군활용은 항상 선택지"
美국무 "다른 방식 실패하면 군사적 방식 불가피"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한 기습 체포 작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난 4일 미 시사주간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는 "안보를 위해 그린란드가 꼭 필요하다"며 베네수엘라 다음 표적이 그린란드라는 것을 시사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을 중심으로 그린란드 병합 과정에서 군사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 담당 부비서실장은 6일 CNN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을 위해 무력 사용이 가능한지를 묻자 "그린란드의 미래를 두고 미국과 군사적으로 싸우려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며 군사행동도 가능하다는 취지로 답했다.
백악관도 비슷한 입장을 냈다. 6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획득이 미국의 국가안보 우선 과제이며, 북극 지역에서 우리의 적들을 억제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팀은 이러한 중요한 외교 정책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다양한 옵션을 논의하고 있다"며 "물론, 미군을 활용하는 것은 언제나 최고사령관의 선택지의 하나"라고 덧붙였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 역시 군사적 수단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루비오 장관은 7일 의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난 대통령이 항상 선택지(option)를 보유하고 있다고 항상 말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항상 (군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기를 선호한다"면서 "베네수엘라에서도 다른 방식을 시도했지만 실패해서 군사적 방식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덴마크 "공격받으면 반격"…유럽 7개국 "그린란드, 덴마크·그린란드가 결정"
그린란드는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덴마크의 자치령이다. 즉,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 동맹을 향해서도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덴마크에서도 군사적 맞대응까지 거론되는 등 격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덴마크 일간 벨링스케는 덴마크군이 공격받았을 때 '선반격 후보고'하도록 한 1952년 교전수칙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덴마크 국방부와 방위사령부가 확인했다고 7일 보도했다.
덴마크의 1952년 교전 수칙은 "공격받은 부대는 명령을 기다리지 말고 즉시 반격해야 한다. 사령관이 선전포고나 교전 상황을 알지 못하더라도 마찬가지다"라고 돼 있다. 따라서 그린란드 주둔 덴마크군 역시 미군의 공격을 받는다면 이 수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벨링스케는 전했다.
덴마크 정부에서는 미국의 주장을 공개 비판하는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
앞서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그린란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자 "미국이 그린란드를 장악해야 한다는 말은 완전히 터무니없다는 점을 미국에 분명히 말해야 한다"며 "미국은 덴마크 영토의 일부를 병합할 권리가 없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프레데릭센 총리는 다음날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도 미국이 그린란드를 병합한다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사 동맹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며 "미국이 NATO 회원국(덴마크)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택한다면, 모든 체제가 붕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 국가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 덴마크 등 7개국은 6일 공동 성명을 내고 그린란드와 덴마크에 연대를 표명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그린란드는 그린란드 주민들의 것으로, 덴마크와 그린란드 관련 사안을 결정하는 주체는 오직 덴마크와 그린란드뿐"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나토는 북극권이 나토의 우선순위라는 점을 명확히 해왔고, 유럽 동맹국들은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며 "우리와 많은 다른 동맹국은 북극권의 안전과 적대 세력 억제를 위해 주둔군, 활동,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동 성명과 별도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프랑스2 방송과 인터뷰에서도 "미국이 덴마크의 주권을 침해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며 "미국이 유럽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우리와 함께 계속 나아갈 것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와 이웃한 북유럽 국가들도 이날 오후 외무장관 명의의 연대 성명을 내고 "그린란드 사안은 오직 덴마크와 그린란드가 독자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공동으로 강조한다"며 힘을 실었다.
이들은 아울러 "우리 모두는 역내 억지력과 국방을 증강하기 위해 조치를 취했다"고도 덧붙였다.
그린란드, 안보 요충지이자 희토류 등 자원 풍부…군사행동 보다 매입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안보적 측면과 자원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린란드는 유럽과 북미 사이에 위치해 미국의 탄도미사일 방어 체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뿐만 아니라 원유와 희토류 등 풍부한 천연 자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온난화에 따라 북극항로의 잠재력이 커지면서 근래 들어 지정학적 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때부터 그린란드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매입하고 싶다는 바람을 일방적으로 밝혔다. 당시에는 그린란드는 '매물'이 아니라는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일축에 논의 한번 못해보고 뜻을 접어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집권을 앞둔 2024년 12월 다시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꺼냈고 취임 이후에도 그린란드에 대한 야욕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만일 미국이 실제로 군사행동에 나선다면 이미 그린란드에 주둔한 500명의 미군은 별다른 방어 시설이 없는 그린란드를 손쉽게 접수할 수 있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하지만 이런 무력 점령은 미국 국내법과 국제법 모두에 어긋나는 데다 우방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로 나토의 사실상 종말을 가져오는 위험을 지게 된다.
이에 군사 행동은 협상 수단이며 실제로는 그린란드를 매입하거나 독립을 유도하는 방안을 선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루비오 국무장관이 의회 비공개 브리핑에서 미국의 그린란드 침공 우려와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그린란드 매입"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향후 미국의 시나리오로 영향력 공작 등을 통해 그린란드를 덴마크에서 독립시킨 뒤 마셜제도, 팔라우 등 태평양 도서국과 맺은 방식의 자유연합협정(COFA)을 체결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현재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가 덴마크에서 독립하려면 국민투표를 해야 하는데 작년 여론 조사에서는 그린란드 주민 56%가 독립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폴리티코는 이미 그린란드 독립을 유도하기 위한 미국의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달 루이지애나 주지사인 제프 랜드리를 그린란드 특사로 임명한 것을 예로 들었다. 랜드리 주지사는 특사 임명 직후 "그린란드를 미국의 일부로 만들기 위해 봉사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3월 그린란드를 방문한 JD 밴스 미국 부통령도 "그린란드 주민은 자기결정권을 갖게 될 것"이라며 독립을 부추겼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들이 미국과 손잡길 바란다. 왜냐하면 지구상에서 그들의 주권과 안보를 존중해 줄 수 있는 국가는 오직 미국뿐이기 때문"이라고 속내를 내비쳤다.
유럽연합(EU)과 나토의 일원인 덴마크와 긴밀한 유럽 국가들은 그린란드의 일은 그린란드와 덴마크가 결정해야 한다며 미국의 영토 야욕을 경계하지만 미국은 결국 우크라이나 종전이라는 카드를 활용해 유럽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다고 폴리티코는 내다봤다.
한 유럽 외교관은 그린란드에서 미국의 역할 확대를 용인하는 대신 우크라이나전 종식이 절박한 유럽은 종전을 위한 필수 요건인 우크라이나 안보에 대한 미국의 좀 더 확실한 보장을 받아내는 걸로 타협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화당도 그린란드 논란 맹비난 "바보는 진절머리"
한편, 트럼프 행정부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공화당 소속인 톰 틸리스 상원의원은 7일 연방의회 상원 본회의장에서 최근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 담당 부비서실장의 그린란드 관련 발언을 두고 "바보에게는 진절머리가 난다"고 질책했다.
그는 "밀러가 그린란드는 미국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공식 입장이라고 했는데, 이는 터무니 없다"며 "그가 미 정부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이어 "그린란드와 관련된 난센스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좋은 일들에 대한 주의를 분산시킨다"며 "이런 일이 좋은 생각이라고 말한 아마추어들은 해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른 공화당 의원들도 백악관 안팎의 이런 기류에 우려를 쏟아냈다고 블룸버그통신과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전했다.
미치 매코널 전 공화당 원내대표는 미 당국자들의 그린란드 장악 위협 발언을 두고 "꼴사나울뿐더러 역효과를 낳는다"고 일갈했고, 리사 머코스키(알래스카) 상원의원도 "매우 매우 불안하고 분명히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상원 정보위원회 소속인 제임스 랭포드(오클라호마) 의원 역시 "우리가 이미 군사적 기반을 두고 있는 평화로운 동맹국을 위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그린란드에서 전쟁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아무도 이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의회에서는 분명히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미 상원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를 제한하는 법안을 상정해 투표할 전망이라고 로이터통신이 복수의 공화·민주당 상원의원을 인용해 보도했다.
美 언론 "80여년 전 방위협정으로 그린란드 '자유이용권' 확보"
미 현지 언론들도 그린란드 병합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사실상 '자유이용권'을 획득한 상태라는 이유에서다.
뉴욕타임스(NYT)는 7일 미국이 그린란드를 매입하거나 무력으로 병합하지 않더라도 이미 원하는 것을 대부분 얻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확보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80여년 전 덴마크와 체결한 방위협정 때문에 미군은 그린란드에서 광범위한 군사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협정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출범 전인 제2차 세계대전 중 체결됐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군은 그린란드에 진주해 독일군을 축출했고, 전쟁 기간 활주로와 기지 등 군사시설을 건설했다.
지금도 미국은 그린란드 전역에서 군사기지를 건설할 수 있고, 병력을 주둔시킬 수 있다. 또한 항공기와 선박이 이동을 폭넓게 통제할 권한도 지니고 있다.
구(舊)소련과의 냉전이 끝난 이후 미군이 그린란드에서 운용하던 군사기지는 대부분 폐쇄됐지만, 현재도 미사일을 감시하기 위한 피투피크 우주기지가 기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안보상의 이유라면 그린란드 병합 대신 현재 방위협정을 이용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나토 동맹국인 덴마크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매입이나 점령을 언급하는 것은 외교적 마찰만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개발이 트럼프 대통령의 숨은 의도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린란드 매입이나 점령까지는 불필요하다는 게 NYT의 반론이다. 그린란드는 경제 개발을 위해 해외 투자가 필요하고, 누구와도 함께 사업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