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새해의 출발선에 선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이곳을 묻는다.
우리는 속도와 요약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손가락 끝으로 넘겨지는 수많은 해답 속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빠른 즉답이 아니라 오래 붙잡고 천천히 마주해야 할 질문일지도 모른다. 마리끌레르 피처팀은 새해를 열며 정보를 얻는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드러나는 장치로서 ‘질문’에 주목했다. 인공지능(AI), 환경, 계층, 돌봄, 기술, 도시, 주거, 노동. 오늘의 삶을 규정하는 뜨거운 화두들을 하나의 리스트로 정리하고, 각 영역에 정통한 필자에게 단 하나의 질문만을 던졌다. 기술은 어디까지 인간의 결정을 대신할 수 있는가. 돌봄은 왜 여전히 사적인 희생으로 남아 있는가. 안정적 주거는 언제부터 권리가 아닌 운이 되었는가. 노동은 왜 존엄을 보장하지 못하는가. 특정 분야에 한정한 파편화된 문제가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얽힌 동시대의 구조를 드러내는 질문과 답을 엮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세계를 사유해온 필자 8인의 답변을 통해 우리의 사고가 확장되고, 보다 깊어지길 바란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좌표로서 말이다. 질문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재난-기계’의 시대에
재난은 회복 가능한가?
함돈균
문학평론가, <순간의 철학> <사랑은 잠들지 못한다> 저자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를 영화화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오늘날의 재난이 지닌 느닷없음, 구조적 성격, 인간 파괴 상황을 풍자한다. 성실한 직업인이던 주인공이 어느 날 느닷없이 받은 해고 통지서는 그의 죄나 도덕적 결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개인의 생존과 가족적 안정성, 전적으로 직업에 의존하는 사회적 정체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그것은 그가 성실한 일꾼으로서 회사를 키운 시스템 성장의 결과다.
이러한 형태의 재난은 피할 길이 없다. 혹은 지금이 아니라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누구나에게 닥칠 수 있는 잠시 유보된 운명 같은 불안을 동반한다. 성실한 개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사회가, 지극히 ‘정상적인’ 문명적 발전의 경로를 거치면서, 공동체에 헌신한 개인들의 삶을 재앙에 빠뜨린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내려진 이 잠재적 재앙의 현실은 오늘날 재난이 지닌 사회성과 구조적 성격을 보여준다.
영화가 강조하는 포인트와 달리 소설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사회에서 성장하고 훈련되고 관리됨으로써 그 자신이 ‘사회적 인간 기계’가 된 한 개인을 묘사한다는 점이다. 해고된 주인공은 그리하여 이 재난을 곧바로 자신의 사회적 운명으로 수락하고 이 문제의 해결을 통해 개인적 삶의 ‘회복’에 나선다. 그 방식은 사회와 동일하다. 그는 윤리적 죄의식 없이, 해고라는 자신에게 떨어진 ‘과업’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재취업을 위해 잠재적 경쟁자를 연쇄적으로 살해한다.
오늘날의 재난은 사회적 ‘정상성’의 일부로서, 누구나 그것을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수락하는 조용하고 구조적인 모습을 띤다. 이 과정에서 개인 역시 사회적 구조의 일부이며, 재난의 당사자는 잠재적으로 사회적 재난을 수행하는 합리적 가해자의 모습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이렇게 일체화되고 구조화된 ‘재난-기계’의 시대에 재난의 ‘회복’이 어떻게 가능한가. 가해와 피해가 하나로 얽혀 있으며, 재난은 회복되어야 할 파괴 상황이 아니라, 일상성의 외양을 띠고 있다. 이에 관해 솔루션이 이것이라고 말하는 일은, 거짓 희망을 주입하는 일이다. 그래서 작가 모리스 블랑쇼는 “시인은 희망을 말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풍경에서 재난적 일상성을 가장 먼저 읽어낸 19세기의 시인 보들레르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시와 예술을 통해 삶의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각하는 것, 현대적 삶의 불가피한 조건으로서 불모성과 재앙적 현실을 인식하는 일, 그 자체가 유일한 회복의 가능성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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