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인생40] '말귀를 알아 먹는 사람'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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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40] '말귀를 알아 먹는 사람' 많지 않다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6-01-08 05:1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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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지난 60여년의 인공지능 개발의 출발은 엉뚱한 질문 하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 '(Can machines think?)

1950년 앨런 튜닝이 시대를 뒤흔드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한 후, 1956년 인간수준의 지능을 가진 AI 개념이 처음 등장합니다. 그로부터 60년 뒤인 2016년 알파고와 바둑 기사 이세돌의 세기적 대국이 광화문에서 펼쳐집니다.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까워 AI가 인간을 넘지 못할 마지막 영역이라 여겼던 바둑에서 인간이 41로 패합니다. 인간의 창의성마저 기계가 학습하는 세상이 도래했음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다시 6년 뒤 챗GPT의 등장은 인간의 언어로 대화하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인간 언어의 한계를 뚜렷하게 인식한 것은 뇌과학자인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와의 대화에서였습니다.

"지난 50년간 AI는 고양이와 개를 분별하는 것조차 실패했습니다. 인간의 말로 AI를 훈련시킨 결과였습니다. 지나고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규칙은 10%뿐이더군요. 90%는 거기에 해당하는 인간의 언어가 없습니다. 고양이와 개 사진 수억장을 주니 AI가 스스로 구분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김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인간의 소통방식을 돌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보이지 않는'것이 있습니다. 말보다 먼저 느껴지는 태도, 몸집, 표정 같은 것입니다. 오래 전 '엘버트 메라리언'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가 녹음된 단어를 분석해 말의 내용보다 얼굴표정과 목소리 톤이 더 큰 영향을 준다고 밝혔지요.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비언어적 몸짓이 55%, 음성표현(억양, 어조)38%, 그리고 메시지가 7%라고 발표했지요. 따라서 모든 대화에 7-38-55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입니다만, 효과적인 소통은 말보다 비언어적인 요소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야 메시지가 10% 정도 밖에 되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풀렸습니다.

젊은 시절 오래 코치생활을 하는 동안, 성과를 내는 리더들 중에는 같은 이야기를 10번 이상 반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삼성의 모 사장은 한 백번은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주 지겨워 그분만 보면, 그가 하는 말을 다 외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모든 직원이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한두 번 말하면 알아듣는다고요? 아닙니다. 말귀를 알아먹는 사람은 얼마 안됩니다. 더욱이 그 말을 듣고 실천하는 직원은 더 적습니다. 내가 비전으로 세운 일이 실행되려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 정도 의지를 갖지 않으면 비전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만추'의 김태용 감독에게 '영화촬영 때 가장 큰 고충이 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에 5천 번의 <왜요?>를 듣느라 생각할 틈조차 없어 힘듭니다."

"그렇게나 많습니까?" 나는 매우 놀랐습니다. 5천 번의 why라니요?

주연 배우에게 이쪽으로 좀 걸어오라 하면, '왜요?'

아니, 그럼 그냥 있어요. '왜요?'

조금만 변화를 주어도 '왜요?'는 날아온다고 합니다. 배우 뿐이겠습니까? 조연출 등 스태프들까지도 많은 질문이 쏟아진답니다. 시나리오 대본을 한번 상상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정교한 대본이라도 여백은 존재합니다. 이 여백에 대해 자유로움을 느끼는 배우도 있고, 반면 불편한 배우도 있습니다.

가령 행인 1,2가 지나간다,라는 지문이 있습니다. 액스트라라도 전후 맥락을 읽고 움직여야 합니다. 두리번거리면서 걸어야 하는지, 얼굴을 들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걸을 것인가? 옆을 한두번 보면서 걸을 것인가? 껌을 씹으면서 건성건성 걸을 것인가? 이야기의 개연성을 고려해 시선과 동작을 처리해야 합니다.

 정말 변수가 많다 보니 어떤 경우엔 배우가 잘못 해석해서 혼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감독은 토씨 하나 못 고치게 합니다. 하지만 깊게 고민하여 대사든 애드리브든 더 나은 걸 제안하면 감독은 고마워합니다. 감독(혹 작가)만큼의 생각의 깊이에 도달한 다음 시나리오가 아주 현실에 잘 맞아 땅에 붙도록 만들어 주니까요. 일급 배우일수록 작품에 어떻게 녹아들어야 하는지 연구하고 또 연구합니다. 배우의 연기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로 보일 정도로 캐릭터를 밀도있게 연구했는지 감독은 압니다. 그래서 감독마다 선호하는 배우가 존재하지요. 박찬욱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의 주연배우인 이병헌의 연기를 칭찬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귀찮을 정도로 꼬치꼬치 묻는다'였습니다. 이병헌 역시 수없이 묻고 또 의견을 냈습니다.

"재미있게 작업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서 정말 즐거웠다. 'JSA' 땐 배틀 하듯이 질보다 양으로 아이디어를 냈다. 적용된 것이 10개 중 하나였는데, 이번엔 다 적용하셨다. 나중에는 책임전가를 하려고 그러나 싶어 겁이 났다. 말을 아껴야지 싶어서 후반부에는 아이디어를 아예 안 냈다."

 이제 인생의 비밀 하나가 풀립니다. 내가 하는 말이 10% 정도 밖에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나는 좀 더 세심하게 얘기해야 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의 말을 단 한번에 알아들었으면, 그건 그가 우수해서입니다. 이렇게 깨닫고 나니 온통 감사해야 할 것들 천지입니다. 배우자가, 직원이, 친구가 모두 나를 배려하고 나의 말을 경청한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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