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한국 가요는 다시 부르기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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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한국 가요는 다시 부르기만 할까?

에스콰이어 2026-01-08 00:00: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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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5년의 어느 겨울, 서울 상암동의 한 방송국 대기실. 10년의 공백 끝에 다시 돌아온 〈싱어게인-어게인 앤 어게인〉의 예선 대기실 구석에서, 노바 킴(18)은 초조한 표정으로 제작진이 전송한 ‘레전드 미션곡’ 리스트를 스마트 글래스에 띄워보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라 모국 ‘K팝’의 정취에 이끌려 한국 음악 오디션에 출연하게 된 그였지만, 홀로그램 속 노래 제목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유행한 노래들이었다. ‘Ditto’ ‘내 사랑 내 곁에’ ‘봄날’… 노바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AI 어시스턴트 ‘시리-Z’에게 속삭였다. “야, 이 플레이리스트 대체 뭐야?” AI가 시크하게 답했다. “그것도 모르냐? 2022년 걸그룹 뉴진스가 발표한 ‘Ditto’부터 좀 알려줄까? 그리고 김현식은….”

노바 킴이 시리-Z의 말을 끊고 말했다. “아, 우리 할머니가 에어팟 꽂고 흥얼거리던 그 처지는 노래구나. 그런데 뉴진스와 김현식, BTS가 어떻게 같은 카테고리지?” 그때 대기실 모니터에서 일흔을 아득히 넘긴 원로 심사위원장 윤종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요즘 음악은 세련됐죠. 그런데 그 세련됨 속에선 1990년대의 그 거친 질감이나 2020년대의 그 아련한 감성이 주는 낭만을 찾는 게 참 힘들어요. 49호님의 목소리엔 그게 있어요.”

노바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준비한 자작곡은 몇 년 전 드디어 화성 정착지 개척에 성공한, 자랑스러운 한국 우주인들의 저항 정신을 담은 2045년형 네오 일렉트로 펑크 팝이었다. 노바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AI에게 물었다. “노래 목록 중에 카더가든 선생님의 ‘명동콜링’ 좀 찾아줘. 원곡에서 두 키 높인 통기타 코드 악보랑, 노랫말 사이사이에 오브리(애드리브) 잔뜩 들어간 일렉기타 반주도.” 일단은 카더가든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은 일단 예선부터 통과하고 나서 하면 되니까.

JTBC의 ‘싱어게인’ 네번째 시즌을 시청하며 내가 그러 본 2045년의 뮤지션 노바 킴 씨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같은 노래를 다시 부르기만 할까? 무명 가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는 〈싱어게인〉은 현재 진행형인 가수들까지 마치 무대 뒤로 사라진 가수인 양 불러내 ‘추억’의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심사위원들의 세대에 맞는 노래를 부르다 보니 마치 타임루프물처럼 보이는 이 전략으로 시청률에선 성공을 거뒀는지도 모르겠다. 또 그 과정에서 지난한 인디 생존기를 써내려가던 이승윤과 서울예술대학교 신입생 이무진, 무명 로커 정홍일과 같은 스타들이 등장했다. 2023년의 ‘질풍가도’는 20여 년 전 애니메이션 주제가로부터 한국인의 응원가로 거듭났다.

이번 시즌도 화제성은 뜨겁다. ‘김밥’을 말던 자두가 나왔고, ‘숨듣명(숨어 듣는 명곡)’의 주인공 파이브돌스 멤버가 무대를 빛냈다. 며칠 전 서울 홍대 앞 라이브 바 ‘제비다방’ 앞에는 ‘55호 가수’ 이영훈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이제는 고대의 단어처럼 여겨지는 ‘본방 사수’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방송이 끝나고 하루도 되지 않아, 플레이리스트로 소비하기 좋은 가수들의 라이브 클립이 올라온다. 댓글창에는 음악의 새로운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다는 감탄이 쏟아진다.

나 역시 〈싱어게인〉이 유효한 순간이 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일종의 고백’을 오랜만에 방송 프로그램에서 듣는다거나, 올해의 루키로 내심 점찍어 두었던 61호 가수가 대중적 소구력을 확보하는 지점이 그렇다. 윤하의 ‘맹그로브’를 고른 80호 가수의 선곡 센스와 훌륭한 가창에도 박수를! 그러나 이런 소수의 몇몇 지점을 제외하면 결국 프로그램의 제목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결국 싱 ‘어게인’이다. 프로그램은 철저히 과거를 지향한다. 심사위원석을 채운 윤종신, 백지영, 임재범, 김이나, 규현, 이해리 그리고 사회자 이승기까지. 이들의 나이를 평균 내면 현재 한국 대중음악 신을 주도하는 소위 ‘영포티’ 세대와 비슷하다. 참가자들은 그들의 시선에 맞는 노래를 고르고 그들의 감상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석한다. 좀 더 세게 말하자면, 〈싱어게인〉은 어린 아티스트가 늙은 시청자와 심사위원의 취향에 맞게 재롱을 부린다는 점에서는 〈미스터 트롯〉과 다를 게 없다.

이들이 만든 한국 음악 오디션의 세게관에서 ‘잘하는 음악’의 기준은 명확하다. 고음을 시원하게 내지르고, 가슴을 쥐어짜는 ‘한(恨)’이 서려야 하며, 가난에 시달리거나 ‘뜨지 못한’ 설움의 서사가 있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1990년대 가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요구한다. 〈싱어게인〉도 다르지 않다. 제작진은 라이브 가창 장면을 너무도 매끄럽게 보정해 듣기 좋은 리메이크 앨범처럼 포장한다. 심지어 어떤 무대는 피치가 나간 목소리까지 보정해 기괴한 느낌이 들 정도다. 분명히 목소리가 고꾸라지며 음을 이탈했는데 피치는 정확하다. 거친 질감, 튀는 개성, 튜닝되지 않은 날것의 매력은 ‘불안정함’으로 규정되어 탈락의 사유가 된다. 그 개성이 먹히는 건 본선부터다. 김현식의 ‘어느 비오는 저녁’을 국악 퓨전의 독특한 리듬감으로 재해석한 26호 가수가 라이즈의 ‘Boom Boom Bass’를 고른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보이그룹 NCT 드림의 ‘Skateboard’를 불렀던 37호 가수가 윤상의 ‘너에게’를 노래한 것은 결국 회귀의 과정이다.

61호 가수의 활약을 바라보는 시선도 복잡하다. 본래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슈게이징 아티스트 파란노을의 프로듀싱을 받아 데뷔 앨범을 발표한 한국 인디 로커다. 꿈결 같은 노이즈에 달콤한 팝 선율을 얹는 그가, 오디션 합격을 위해서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와 신승훈의 ‘나비효과’를 부르는 모습은 미묘했다. 인디 신에서의 61호가 찢어질 듯 볼륨을 높인 소리의 폭풍 가운데 사뿐사뿐 비행하는 나비였다면, ‘싱어게인’에서의 61호는 백예린이나 권진아 류의 싱어송라이터 분류로 묶여 예쁘게 다듬어진 인공 호수 위로 잔잔한 물결을 타고 다닌다. “‘목소리’ 하나로 무대를 가득 채운”이라는 방송국의 수식이 ‘싱어게인’의 지향을 대표한다.

그들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입버릇처럼 “요즘 노래는 들을 게 없다”고 불평하는, 나를 포함한 〈싱어게인〉 시청자들의 태도가 음악을 즐기거나 기억하지 않고 트렌드로 ‘소비’하는 풍토를 낳았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정작 새로운 가수가 등장하면 그들에게 익숙한 과거의 잣대를 들이댄다. “노래는 잘하는데 감동이 없네” “옛날 발라드가 그립네” “진정한 발라더는 성시경이 마지막”. 미디어는 익숙함을 찾는 관객들의 향수 지향성을 적극적인 수요로 전환하려 노력한다. 음악 자체보다 개인에 집중하고, 그를 중심으로 서사를 만들어 팬덤 중심의 음악 소비 행태를 만들어낸다. 〈미스터 트롯〉을 그냥 꺼낸 게 아니다. 매년 죽지도 않고 돌아오는 트로트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 권력은 이미 이 공식을 증명했다. 이제는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서 트로트 곡을 듣는 게 더 어렵다. 경쟁을 뚫고 든든한 팬덤을 확보한 가수들은 ‘새로운 도전’이라는 근사한 목표를 앞세워 트로트를 버린다. 음악은 입신양명의 수단이지 더는 자기표현의 수단이나 사회 무의식의 표출이 아니다. 대중은 사람을 좋아하며 음악을 좋아한다고 착각한다.

이 거대한 ‘회고의 흐름’은 최근 케이팝 산업 관계자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십수 년간 주류 차트를 호령하던 아이돌 음악에 대중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케이팝이 지배하던 시대에 태어난 Z세대는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 아이돌 세계관과 서사, 챌린지 댄스, 대부분 같은 취향을 가진 A&R 기술자들이 조립해서 만드는 일렉트로 팝과 힙합에 지쳤다. 케이팝 음반 판매량이 나날이 줄어들고, 광고 수익도 시원찮아진 건 건 세계를 호령하는 케이팝이 숫자와 친해졌을지언정 대중과는 멀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대규모 관중을 동원하는 팀은 2000년대의 상징과 2010년대 초중반 전성기를 누렸던 ‘장수 아이돌’들인데, 그들의 전성기를 체험한 세대는 이제 영포티에 근접한 나이가 됐다.

이제 Z세대 친구들은 기성의 논리에서 탈주하고 있다. 방송국이 쥐어주는 ‘보정된 감동’이 아니라, 진짜 ‘내가 듣는 음악’을 찾아 떠난다. 이태원의 클럽으로, 홍대의 작은 라이브 홀로 숨어들고 있다. 소셜미디어 채널은 파편화된 취향의 분리에 기여하며, 입증된 성공의 공식을 인디 음악가에게 적용하여 흐름을 만들고 있다. 진짜 ‘무명 가수’들의 반란은 그곳에 있다. 61호의 프로듀서 파란노을은 방구석에서 홀로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 조악한 음질의 노래를 통해 전 세계 인디 팬들의 영웅으로 거듭났다. 〈뉴욕 타임스〉의 음악 평론가 존 카라마니카가 올해의 앨범으로 소개한 ‘에피’, 그와 함께 한국 하이퍼팝의 신세대를 이끄는 프로듀서 ‘킴제이’는 가요는 물론 한국 힙합 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단아다. 에피의 대표곡 ‘2025기침’은 이렇게 시작한다. “20세기 출생들은 이제 좀 꺼져봐”

다시 서두의 상상으로 돌아가보자. 노바 킴은 카더가든을 선택하려다 올디로 갈 거면 아예 반세기 전으로 돌아가보자는 생각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애창곡인 김광석 선배님의 ‘서른 즈음에’를 골랐다. 심사위원인 윤종신이 살아생전 김광석 선배님께 받았던 신인 시절의 응원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친다. 이제는 늙은이들만 남은 네이버 댓글 창엔 “캬, 역시 ‘서른 즈음에’라니. 49호 역시 ‘음잘알’이야”라는 댓글이 달린다. 미디어 고령화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고, 이대로라면 내가 그린 상상은 반드시 현실이 될 것이다. 음악은 ‘다시(again)’ 부르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새로 불러야 하는 것이다. 2025년의 한국 음악계에 일어난 지각변동, 그 과정에서 성장함과 동시에 제도화되고 있는 인디 신의 역동적인 변화에 비해, 이들을 대하는 기성의 음악 취향과 이를 투영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태도는 전혀 변한 게 없다. 연말에 더욱 절감하는, 2026년의 한국 대중음악이 전혀 새로울 것 같지 않다는 불길한 예감. 낯설고 생경한 음악을 찾는 젊은 세대의 수요를 발 빠르게 적용할 ‘영포티’는 없는 걸까. 내년에는 ‘숨듣명’을 조금 덜 듣기를, 그리고 다시 부르는 노래 말고 새롭고 신선한 음악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기를 바란다. 2045년에도 ‘먼지가 되어’를 부르는 20대를 보고 싶지는 않다.


김도헌은 음악 웹진 ‘IZM’의 에디터부터 편집장까지 맡았던 대중음악 평론가로, 음악 웹진 ‘제너레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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