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錄조조] 소설 연재 안내
본 소설은 현 정세의 사건들을 조조, 손권 등의 인물과 탁류파, 청류파 등의 가상 정치 세력으로 치환하여 재구성한 팩션(Faction)물입니다.
서라, 짐짓 '대의를 앞세우나' 실은 사사로운 이익과 권력을 좇는 자들을 탁류파(濁流派)라 칭하고, 그 반대편에서 '청명한 정치를 부르짖으나' 실은 권문세족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들을 청류파(淸流派)라 부르노라. 현재 탁류파는 여당인 주민당, 청류파는 야당인 민국의힘이니라. 조조(曹操)는 탁류파의 우두머리이자 대선을 통하여 대권을 잡은 당대 제일의 웅걸 명재이 대통령이다. 조조의 대적이자 청류파가 밀던 인물은 곧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던 손권(孫權, 열석윤 전 대통령)이었다.
서기 2026년 정월, 천하의 기운이 북방의 연경(베이징)에서 동방의 대해(상하이)로 흘러들 무렵이었다. 탁류파(濁流派)의 수장이자 대권을 거머쥔 맹주 조조(명재이 대통령)는 3박 4일간의 강행군을 마치고 상하이에 당도했다. 그는 취임 이래 G7과 APEC, G20이라는 거대한 전장을 누비며 서방의 제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왔다. 그 기세는 마치 관도에서 원소를 격파하고 북방을 평정한 후, 남방으로 말머리를 돌리던 시절의 위엄과 같았다.
국빈 방중 일정의 마지막 날인 7일, 조조는 예고 없이 세작들과 문객들이 모인 프레스센터를 찾았다. 이는 참모들의 서면 보고에 의존하지 않고 현장의 생생한 기운을 직접 살피려는 조조 특유의 임기응변이자, 민심의 향배를 직접 가늠하려는 간웅(奸雄)의 소통술이었다.
식전 간담회장에 들어선 조조는 피로가 서린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좌중을 향해 입을 뗐다.
"6개월 넘도록 짐짝처럼 실려 다니다가, 이제야 동지들과 마주 앉아 밥 한 끼 나누는구려. 나도 이리 힘들어서야 어디 살겠소?"
이는 단순한 불평이 아니었다. 조조는 과거 적벽에서 패하고 돌아올 때나, 험준한 산맥을 넘어 오환을 정벌할 때도 이처럼 농담 섞인 진담으로 장수들의 마음을 흔들곤 했다. 자신의 고단함을 내비쳐 상대의 경계심을 허물고, '우리'라는 동질감을 심어주는 고단수의 심리전이었다.
이때 좌중에서 감탄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조조는 손을 들어 이를 제지하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박수치지 마시오. 여기서 박수 치면 청류파(淸流派) 놈들에게 '레기'(기레기)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오. 그들의 붓끝은 독이 든 화살보다 무서운 법이니, 박수는 안 치셔도 상관없소."
조조는 명분과 허명에 집착하는 청류파와 그들의 지지를 받는 강동의 손권(열석윤 전 대통령) 세력이 자신을 어떻게 폄훼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스스로를 탁류파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조조답게, 그는 도덕적 결벽증을 내세우는 언론 지형을 풍자하며 세작들의 입지를 오히려 넓혀주는 여유를 보였다.
간담회가 무르익자 한 유튜브 채널의 세작이 질문권을 얻었다. 조조는 그를 보며 껄껄 웃었다.
"길거리에서 소식을 전하다가 제재를 당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내 귀가 워낙 밝아 별걸 다 듣고 있소."
이는 과거 조조가 허소에게 "난세의 간웅"이라는 평을 듣고 크게 웃었던 일화를 떠올리게 했다.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음을 과시함으로써, 하급 문객들조차 승상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경외심을 갖게 만든 것이다.
이윽고 쿠팡의 정보 유출 용의자가 중국인이라는 소식에 민심이 들끓고 있다는 질문이 나왔다. 조조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과거 '구현령(求賢令)'을 내려 "불효하고 불인해도 좋으니 오직 재능 있는 자를 천거하라"고 했던 실용주의자였다. "용의자가 중국인이라 하여 반중 정서를 키우라는 말이오? 어쩌라는 것이오. 그가 일본 사람이면 그때부터 일본을 미워할 것이오? 이는 아무런 근거 없는 감정적 대응일 뿐이오."
조조는 범죄의 책임을 국가나 민족 전체로 돌리는 청류파의 감상적 외교론을 일갈했다. 국익 앞에서는 어제의 적도 장수로 등용했던 조조다운 일침이었다.
정유강 대변인이 예정된 시간이 다 되었다며 간담회를 접으려 하자, 조조는 오히려 대변인을 만류하며 호기를 부렸다.
"이게 무슨 법으로 정해진 시간도 아닌데, 기회를 더 주시구려."
조조는 20분간 질문을 더 받으며 시진핑과의 '샤오미 셀카' 뒷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사실 그 셀카는 조조가 작년 경주 APEC에서 받은 선물을 잊지 않고 미리 개통해 가져간, 치밀하게 계산된 '감동 정략'이었다. 조조는 상대가 준 작은 배려를 기억해 큰 신뢰를 사는 데 귀신같은 재주가 있었다.
"선물이 적다고들 말하는데, 외교에서 물량이 무엇이 중하오?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그는 중국 측의 대접이 박하다는 지적을 유머로 넘기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서해의 평화와 수평적 호혜 관계라는 실리를 챙겼음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오찬이 시작되자 조조는 기자들과 식기를 부딪치며 담소를 이어갔다. 그는 영부인 경혜김 여사가 회담을 도왔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않는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는 권력의 핵심부에서도 인간적인 여유를 잃지 않는 조조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상하이의 차가운 겨울바람을 뒤로하고 프레스센터를 나서는 조조의 뒷모습은, 헌제를 옹립하고 천하를 호령하면서도 끊임없이 인재들과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마음을 훔쳤던 옛 위무제(魏武帝)의 환생 그 자체였다. 탁류파의 물결은 거셌으나, 그 안에서 국익이라는 큰 고기를 낚아 올리는 조조의 낚싯대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로써 조조의 상하이 횡보는 천하에 다시 한번 그의 실용적 리더십과 간교할 정도로 영민한 소통력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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