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쿠팡의 대관업무 담당자가 청와대에도 손길을 뻗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일 년 동안 무려 28명의 퇴직공무원이 쿠팡의 대관 업무팀으로 이직했으며, 5년 간 영입한 정부 관련 인사는 62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고위공직자들의 수만 합산한 것이어서 실제 쿠팡에 근무하는 정치계 인사들의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쿠팡은 공식적으로는 '대관팀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표면적으로 '대외협력팀' 또는 'CRCorporate Relation)팀' 등의 이름을 빌려 활동한다. 대관은 국회 혹은 정부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 종사자를 통칭하는 말로, 기업이 정부 정책이나 국회 등의 이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기업에 유리한 정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활동하는 조직이다.
대관팀은 국정감사 등에서 증인·참고인 출석 요청에 대응하거나 출석을 막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며 기업의 이해관계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국회를 설득하는 역할을 해 대기업을 포함, 유통계, 제약계 등 산업계 전반에 대관팀이 존재한다.
강훈식, 쿠팡 측 '만남' 제안에 "전방위 로비" 우려
지난달 26일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쿠팡을 겨냥해 내부 직원들에게 '접촉 자제령'을 내렸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전 직원에게 쿠팡 관계자와의 개별 접촉을 금지하고 기존 접촉 사례가 있을 경우 이를 자진 신고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정부의 이 같은 지시 배경엔 쿠팡 측이 강훈식 비서실장에게 접촉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7일 시사저널 단독보도에 따르면 쿠팡은 국회 청문회 전 기업을 향한 전방위 압박 움직임이 보이자 강훈식 비서실장과 가까운 인사를 통해 '강 실장과의 만남을 제안한다'는 취지의 연락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강 비서실장은 해당 내용을 전달받은 뒤 '(쿠팡 대관이) 나한테까지 이럴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시도하는 것인가'라며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 일을 계기로 '쿠팡 접촉 자제령'을 지시하며 기존 접촉자들이 있다면 자진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당시 청와대는 쿠팡이 실질적인 피해 회복보다 사건 축소를 위한 정치계 로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 크리스마스 당일 쿠팡 사태 대책 마련을 위한 관계 부처 장관급 회의를 긴급 소집하기도 했다.
쿠팡, 지난해만 퇴직공무원 28명 영입…유통업 평균 5~10명
쿠팡은 올해에만 국회와 정부 기관 퇴직 공무원 28명을 영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6년간 쿠팡에 재취업한 정부 기관 공무원은 62명으로 국내 온라인 유통업계 규모 중 가장 큰 규모다.
문제는 유통업의 평균 대관팀 인력은 임원급 1~2명과 직원 전체를 포함해도 최대 5~10명에 그친다는 점이다. 쿠팡의 경우 본사와 자회사 등 대관 인력만 1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쿠팡이 보안 강화 등 내실 경영보다는 대관 조직을 동원한 정치권 로비와 규제 회피 에 집중했다는 논란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3일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연도별 해킹 사건 대응 기관 퇴직 공무원의 이커머스 기업 재취업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해킹 대응 정부 기관 퇴직 공무원 2명과 국회 퇴직 공무원 26명이 쿠팡에 재취업했다.
해킹 대응 정부 기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한국인터넷진흥원, 경찰청,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금융보안원, 금융정보분석원 등이다. 조사 기간을 2020년부터 2025년까지 6년으로 넓히면 쿠팡으로 재취업한 정부 기관 인력은 무려 62명에 달한다.
쿠팡이 영입한 퇴직 공무원 수는 다른 기업보다 월등히 많다. 같은 기간 국내 이커머스 6대 기업을 기준으로 한 재취업한 퇴직 공무원은 모두 107명(국회 82명, 해킹 대응 기관 25명)으로 이 중 57.9%가 쿠팡에 들어간 것이다.
쿠팡 62명에 이어 카카오 23명,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11명, 네이버 9명, 신세계그룹(G마켓·SSG닷컴·옥션) 2명이었다. 소비자 중심 사업인 이커머스 업체에서 쿠팡의 대관 조직은 기형적으로 많은 셈이다.
국회사무처 감사관실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해 정부와 국회 출신 퇴직 공직자 18명을 부사장, 정책협력실 전무 등 대관 업무 고위직에 대거 영입했다. 이들은 검찰, 경찰, 공정거래위원회, 고용노동부 등 쿠팡이 직면한 각종 리스크와 관련한 정부 부처 출신들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퇴직한 고위공직자는 퇴직일로부터 3년 이내 재취업 시 취업심사를 받아야 한다. 퇴직 전 5년간 수행한 업무와 재취업 기관 간의 '밀접한 관련성'이 핵심 판단 기준이다.
재산 등록 의무자인 공무원(통상 4급 이상)과 공직유관단체 임원 등이 대상이다. 경찰·소방·국세 공무원 등 특정 업무 담당자의 경우 5급(상당)~7급(상당)도 심사 대상에 포함된다.
취업 심사 공개 의무가 없는 정부와 지자체 5급 이하 공무원과 국회 의원실 선임비서관(5급 상당), 비서관(6~9급) 등을 감안할 경우 훨씬 더 많은 인원이 쿠팡으로 옮겼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쿠팡이 과로사, 물류현장 안전사고, 입점업체 수수료 논란 등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까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대관 인력을 앞세워 각종 규제와 과징금 등을 피하는 방어 수단으로 삼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범석 쿠팡 의장과 함께 국회 청문회 불출석을 통보한 쿠팡의 박대준·강한승 전직 대표 모두 대관 분야 출신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 3명, 이명박·문재인·박근혜 정부 인사도 쿠팡행
쿠팡은 논란과 이슈가 생길 때마다 정관계 출신 인사들을 영입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지난 1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쿠팡은 2024년 윤석열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2명과 국가안보실 행정관 1명 등 총 3명을 임원급으로 영입했다. 이명박, 문재인,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일했던 인사들 중 현재까지 확인된 사람만 9명이 쿠팡으로 이직했다.
정 의원에 따르면 국회 출신 인사들도 곳곳에 포진했다. 기동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보좌관을 지낸 추경민 전 서울시 정무수석은 2020년 쿠팡 대관담당 부사장으로 영입됐고 2021년엔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를 지낸 김종석 전 자유한국당 의원 보좌관을 서비스 정책실장으로 고용했다. 이 외에도 여야 국회의원실에서 일한 보좌진 채용만 8명이 넘는다.
로비 확산에 노동부 "패가망신" 인사처 "퇴직경찰 쿠팡行 불허"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후폭풍이 계속되는 가운데 쿠팡 부장급으로 재취업하려던 퇴직 경찰이 '취업 제한' 결정을 받았다.
인사혁신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지난해 11월 경찰청에서 퇴직한 경위급 경찰의 쿠팡 취업 신청에 대해 취업 제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인사처는 "해당 인물은 이전 소속 기관에서 쿠팡의 재산상 권리에 직접적이고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판단됐다"며 취업 제한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취업 제한은 퇴직 전 5년간 수행한 업무가 취업 예정 기관의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맞물려 공정한 직무 수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내려지며 결정을 위반할 경우 과태료 부과 등 행정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쿠팡의 접촉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은 정부 부처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청문회에서 "쿠팡으로 이직한 전직 공무원들과의 접촉 관리 방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노동부 공무원들에게) 쿠팡으로 이직한 이들과 접촉하면 패가망신할 줄 알라고 지시했다"고 답했다.
쿠팡은 지난 대선 직전 노동부 출신의 5·6급을 대거 영입한 것으로 알려져 노동부 차원에서 '경고'를 내렸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사건을 담당의 주무부처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이하 개보위)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쿠팡 관계자와 접촉을 금지하며 내부 단속에 나섰다.
개보위는 지난 5일 최근 쿠팡과 KT 등 정보유출 조사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엄정한 직무수행과 공직기강 확립을 지시하는 위원장 특별 서신을 전 직원에게 보내 조사나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과 관련해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외부 관계자와 직원의 사적 개별 접촉을 일체 금지했다.
송경희 개보위원장은 "조사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업무수행 과정에서 외부의 영향력 행사와 정보획득 시도가 있을 수 있다"며 부당한 알선 및 청탁에 대한 신고 체계를 강화하고 직원들에게 조사과정에서 확인하거나 취득한 정보에 대한 보안을 당부했다.
경찰, '86명 규모' 쿠팡TF 꾸렸다…모든 의혹 동시 수사
경찰은 쿠팡 관련 의혹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한 TF를 편송하고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산업재해 은폐 의혹 등 쿠팡에 관한 의혹 일체를 수사할 예정이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경무관급 수사부장을 팀장으로, 쿠팡과 관련된 의혹을 집중적으로 수사할 TF팀을 지난 1일 꾸렸다. TF팀은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청 사이버수사과를 비롯해 수사과,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형사기동대·공공범죄수사대 등 86명으로 구성됐다.
국회가 김범석 쿠팡 의장과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 등 쿠팡 전·현직 임원을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도 경찰TF에서 수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문회 태도 논란과 자료 미제출 등으로 논란이 된 쿠팡에 대해 제재 수단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면서 민주당은 쿠팡 사태를 계기로 개인정보·소비자 피해를 포괄하는 집단소송제 도입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는 쿠팡에 대한 노동·산업안전 분야 조사도 강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산재 은폐 및 불법 파견 등 의혹을 전담할 TF를 구성해 조사에 착수한 상태이며 김영훈 장관은 위법이 확인될 경우 관용 없는 조치를 예고했다.
사태 심각성에 여야 모두 공감, 국힘도 8일 국조요구서 제출예정
337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로 논란이 된 쿠팡이 국회 연석 청문회에 이어 '국정조사' 문턱에 섰다. 지난달 31일 국회에 쿠팡의 불법행위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쿠팡의 부실한 답변과 핵심 쟁점에 대해 같은 답변으로 일관하거나 주요 증인들이 출석하지 않으면서 강도 높은 후속 조치를 취한 것이다.
국민의힘도 오는 8일 '국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공식 제출해 쿠팡 국정조사에 힘을 더할 예정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쿠팡의 개인 정보 유출 사태, 통신 3사 해킹 사태, 행안부 온나라시스템 해킹 사건, 알리·테무 등 외국 플랫폼 기업의 개인정보 보호 정책 전반 등에 대한 국조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7일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쿠팡 국정조사가 안건으로 올라오지 않았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어 여야가 국정조사에 대해 빠르게 합의한다면 설 이전에 열릴 예정인 본회의에서 합의를 통해 국정조사 안건이 상정될 가능성이 높다.
여야 모두 개인정보 유출 사안의 중대성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본회의 문턱을 넘을 경우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구성까지는 비교적 수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쿠팡 대관 출입기록 '비공개'…국조서 의결하면 공개 가능
337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빚었지만 정작 쿠팡의 대관 정보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국회 사무처는 청문회 과정에서 국회 본청과 의원회관 등에 출입한 쿠팡 직원의 신원과 총 인원수, 총 방문 횟수 등을 알려달라는 요구를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거부했으며 개인정보를 익명 처리해 제출할 것을 요구했지만 답하지 않은 상태다.
국정조사에서 국회 의결 사항으로 쿠팡 직원들의 국회 출입기록을 요구한다면 제출 의무가 생기게 돼 국정조사 위원회의 구성에 따라 쿠팡 수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폴리뉴스 김성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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