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위성 시험동 한쪽에는 3700억 원짜리 국가 전략 자산이 적막 속에 잠들어 있다. 밤낮과 기상 상황에 관계없이 지상의 50cm 물체까지 식별해내는 최첨단 영상레이더(SAR) 위성, 아리랑 6호다. 2022년 모든 조립과 시험을 마친 이 위성은 벌써 4년째 우주 대신 질소 가스가 흐르는 보관 상자 안을 지키고 있다. 당초 올해 초로 예정됐던 발사 일정은 최근 유럽 아리안스페이스로부터 올 하반기로 또다시 미뤄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벌써 네 번째 연기다.
이 기막힌 지연의 이면에는 세계 우주 시장의 냉혹한 위계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위성 제조 기술에서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으나, 그 위성을 우주로 실어 나를 사다리인 발사체 기술에서는 철저한 후발 주자다.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갈 열쇠가 없으니, 남의 집 차 차례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이번 연기 사유는 더욱 뼈아프다. 함께 발사하기로 한 이탈리아 우주청의 위성 플라티노-1의 개발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유럽 발사체 기업인 아리안스페이스 입장에서는 자국 위성이나 유럽 연합 위성의 일정이 최우선이다. 한국의 아리랑 6호는 그들의 우선순위표에서 언제든 뒤로 밀릴 수 있는 손님에 불과한 셈이다.
이 경제적 손실과 안보 공백의 책임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완주 의원은 과기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러시아 측에 미리 지급한 계약금 반환이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전쟁과 같은 불가항력적 사유 시 러시아가 배상 없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독소 조항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현재의 상황은 이와 관련이 있다. 이미 집행된 472억 원의 예산 외에도 미국과 유럽의 대체 발사체를 구하기 위해 추가로 472억 7000만 원의 예산이 더 편성됐다. 돈도 돈이지만, 안보 핵심 자산의 기술 노후화가 더 큰 문제다. 위성 수명은 지상 보관 중에도 미세하게 소모되며, 2022년의 최첨단 기술은 2026년에 이르면 이미 구형이 된다.
타국의 사정에 저당 잡힌 국가 안보의 핵심 자산
한국이 처음부터 유럽에 매달린 것은 아니었다. 원래 아리랑 6호는 러시아의 안가라 로켓을 타고 우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국제 사회의 대러 제재에 한국이 동참하자 러시아는 발사 중단으로 응수했다. 국회 이인영 의원은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비해 계약 내용을 재조정하고 방지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한국은 급히 유럽의 베가-C로 발사체를 변경했지만, 이번엔 기체 결함이 발목을 잡았다. 2022년 12월 베가-C가 비행 도중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성 점검을 위해 모든 일정이 중단됐다.
왜 한국은 굳이 남의 나라 로켓을 빌려 써야만 하는가.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있지 않으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누리호는 1.5톤급 위성을 저궤도에 올리는 성능 검증 단계에 있으며, 1.75톤에 달하는 아리랑 6호를 태양동기궤도라는 까다로운 지점으로 정확히 운반하기에는 아직 체급과 신뢰성 모두 부족하다. 우주항공청 김진희 인공위성부문장은 위성 기술 고도화와 산업 생태계 육성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발사체라는 물리적 수단 없이는 반쪽짜리 우주 강국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이번 사례가 증명한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을 우주 주권의 상실로 규정한다.
우주항공 전문가들은 "차세대 발사체가 운용되는 2035년까지 약 10년간 한국 우주 발사체에 공백기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SpaceX와 같은 거대 기업이나 아리안스페이스 같은 일부 독점 기업의 사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전 세계 우주 로켓 발사 시장은 2022년 80억 달러(약 10조 7000억 원)에서 2025년 130억 달러(약 17조 4000억 원) 규모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이 거대한 시장에서 한국은 공급자가 아닌, 가장 불리한 조건을 감내해야 하는 소비자로 남아 있다.
엔진 폭발의 악몽을 넘어 자력 궤도 진입을 향한 기술적 사투
발사체 개발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현대 공학이 도달할 수 있는 극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로켓 엔진의 심장이라 불리는 터보펌프는 분당 3만 회(30,000 rpm)의 초고속으로 회전하며 영하 183도의 액체 산소와 3000도 이상의 초고온 가스를 동시에 다뤄야 한다.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발사를 앞두고 매일 밤 엔진이 폭발하는 꿈을 꿨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2020년 실제 시험 중 연소기가 폭발했던 트라우마가 엔지니어들의 밤을 지배할 만큼, 우주로 가는 길은 가혹하다.
한국은 이제 누리호의 가스발생기 방식에서 한 단계 진화한 다단연소사이클 엔진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이는 버려지는 가스 없이 모든 연료를 다시 태워 효율을 극대화하는 폐쇄형 구조다. 전 세계적으로도 미국, 러시아 등 소수 국가만이 보유한 기술이다. 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기술검증시제(TDM0) 시험을 통해 이 기술의 국산화 가능성을 확인했다. 2032년까지 개발될 차세대 발사체(KSLV-III)는 바로 이 엔진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재사용 기술이다. SpaceX의 팰컨 9처럼 엔진을 다시 회수해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지 못하면, 발사체 주권을 찾아도 경제성이라는 또 다른 벽에 부딪히게 된다.
정부는 2035년까지 재사용 기술을 확보하고, 달 착륙선까지 우리 손으로 직접 쏘아 올리겠다는 로드맵을 세웠다. 총 사업비만 2조 2920억 9000만 원이 투입되는 거대 국책 사업이다. 2021년 한미 미사일 지침이 완전히 폐지되면서 고체 연료 사용과 사거리 제한의 족쇄가 풀린 것도 큰 기회다. 하지만 기술 수준은 여전히 선진국 대비 60% 미만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우주 분야 기술 자립도는 10대 국방 전략 기술 중 꼴찌를 기록했다.
아리랑 6호의 4년 대기는 대한민국 우주 산업에 던지는 마지막 경고장과 같다. 위성을 만드는 기술만큼이나, 그 위성을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 있는 힘이 곧 국가 경쟁력이며 안보다. 발사체 주권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는 우주라는 새로운 대항해 시대에서 영원히 타인의 배에 몸을 싣고 눈치를 봐야 하는 승객으로 남을 뿐이다. 엔진 폭발의 두려움을 뚫고 자력 궤도 진입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대한민국이 우주 영토의 주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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