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정부 합동단속을 피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고(故) 뚜안씨의 사망에 대한 진상 규명과 강제 단속 중단을 요구하며 이어진 농성이 지난 2일 해단식을 끝으로 종료됐다. 그러나 유족과 이주·노동·인권단체들은 합동단속 중단과 이주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7일 고 뚜안 사망사건 대응을 위한 대구·경북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등에 따르면 유족을 비롯한 이주단체들은 사망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강제단속 중단, 미등록 이주민의 안정적 체류권 보장을 촉구하며 지난달 9일부터 대통령실 앞에서 노숙농성을 펼쳐왔다.
뚜안씨는 지난 10월 28일 대구 성서공단 내 자동차부품 제조공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정부의 ‘미등록 이주민 2차 합동단속’ 과정에서 단속반을 피해 공장 3층 에어컨 실외기 창고 안쪽에 3시간가량 숨어 있다가 추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단속과정에서 뚜안씨는 좁은 공간에 숨어 있으면서 ‘무섭다’, ‘숨을 쉬기 힘들다’ 등의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지난해 2월 계명대 국제통상학과를 졸업한 뚜안씨는 대학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같은 해 10월부터 한 제조업체에서 근무해 왔다. 그는 구직비자(D-10 비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학사 이상 학위를 보유한 외국인 체류자에게 한해 제한적으로 취업 활동을 허용하는 비자다. 제조업 등 일부 업종에는 취업이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구직 비자 신분으로는 제조업체에서 근무할 수 없었고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뚜안씨 역시 단속 대상에 포함됐다.
이를 두고 이주단체에서는 이번 사건이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앞두고 추진된 정부 합동단속이자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강제단속이 초래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가 진행한 인권교육은 미흡했으며 단속 과정에서 미란다 원칙 미고지, 동의 없는 휴대전화 압수, 체류·자격의 확인 없이 수갑 채워 연행, 수갑 착용 상태로 차량 내 장시간 방치 등이 자행됐다고 주장했다.
이주단체가 농성을 이어가고 관련 논란이 확산되자 법무부는 뒤늦은 사과에 나섰다. 법무부는 지난달 31일 단속 책임자인 이상한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장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실에서 뚜안씨 유족에게 “안전과 인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외국인 단속 관련 정책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가 고개를 숙이자 대책위는 그간 이어왔던 농성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고인의 아버지는 한국 기관의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이 사과가 저희 가족만을 위한 것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농성 해단 이후에도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 위반에 대한 고소·고발 △뚜안씨 산재 승인 절차 등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아울러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강제단속 중단과 안정적 체류권 보장을 목표로 한 투쟁도 지속해 나간다.
미등록 이주민은 한국 사회에서 소위 ‘불법체류’로 낙인찍혀 정부의 가혹한 강제 단속추방의 대상이 돼 왔다. 그러나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 국제이주기구,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는 미등록 체류를 이유로 이주민을 범죄자 취급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인권 보장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2023년부터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을 추진했고 이후 법무부 출입국관리소가 실시하는 상시단속과 함께 1년에 2~3번의 정부 5개 부처 합동단속을 이어오고 있다.
이를 두고 합동단속이 예고 없이 진행되거나 퇴로가 차단되는 등 위압적인 현장 분위기를 조성해 이주민을 심리적 공포로 몰아넣고 창문이나 기계 설비 등 위험한 공간으로 내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주계는 이를 신병 확보에만 치중한 이른바 ‘토끼몰이식’ 단속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법무부는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일부를 수용해 단속계획서에 안전 확보 방안 기재란을 추가하고 단속반 인권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토끼몰이식 단속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으며 이주민 사망·부상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이주단체는 정부의 합동단속이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단속 과정에서 미등록 이주민들은 체류 자격 상실로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당국이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사실상 안전한 단속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송은정 집행위원(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본보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체류 질서 확립을 이유로 단속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미등록 체류자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진단 없이 단속만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단속 중심 정책 대신 체류 안정화 정책을 통해 미등록 체류자를 줄이는 접근이 보다 합리적”이라며 “구조적 대안 없이 단속에만 의존할 경우, 체류자 수는 줄지 않은 채 비인간적인 상황만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문제의 근원은 이주민을 사실상 잠재적 미등록 체류자로 규정하는 경직된 체류 자격 제도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로 인해 이주민의 현실을 반영해 유연하고 통합적인 체류 자격 제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송 집행위원은 “한국의 체류 자격 제도는 비자 유형별로 활동 범위와 업종이 지나치게 세분화돼 있어 이주민이 비자에 명시된 활동, 취업 등의 범위를 벗어나면 사실상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는 구조”라며 “이처럼 경직된 제도가 현장의 혼란과 갈등을 키우고 있는 만큼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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