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의료진은 생명 유지를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데 더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 살리는 의술과 인술을 펼치기 위해 최소한 지켜내야 할 의사들의 자긍심은 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하고 화두였고 이제 막 산업화를 일구던 1970년대 초반에도 최전방에서 목소리를 내던 의사는 존재했다.
정형외과 전문의로 백성병원장과 안중백병원 이사장을 지낸 故백성길 원장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삶을 담은 책 ‘의사목수 백성길’에선 의료진을 대변해 목소리를 내던 한 사람의 치열함과 가족을 위해 헌신하던 한 가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아내이자 산부인과 전문의로 평생을 함께한 최보원 백성병원장이 기록했기에 이 책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최보원 백성병원장과 백씨는 대학시절 인턴과 레지던트로 만나 반세기를 함께했다. 남편을 아는 사람들이 그를 좀더 오래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냈지만 최씨는 “남편의 삶을 기록한 책이지만 그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니 수원 지역의 역사, 의료계의 변화와 발전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1970년대 수원은 산업화·도시화로 크게 성장하는 도시였지만 그 이면엔 산업재해와 교통사고 급증이 뒤따랐다.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의사수는 턱없이 부족했던 당시 수원 내 두 번째 정형외과 전문의였던 백씨는 1975년 군의관을 마친 다음날부터 수원 제일병원 정형외과 과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수많은 산업재해·교통사고 환자를 돌보며 여러 도구를 이용해 부러진 뼈를 고정하고 단단히 잇는 과정이 목수와 닮아 백씨는 스스로를 ‘의사목수’라고 불렀다.
1992년 백성의원을 개원한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백씨는 수원 인근 지역의 수많은 생명을 상대했다. 최씨는 “1997년 수원시의사회장 선출 이후 ‘수원시의사회사'를 발간하는 등 의료인으로서 외부 활동을 이어갔다”며 “현장을 지키던 의사에서 의료인의 위상과 단합을 챙기며 제2의 삶을 살았다”고 전했다.
백씨는 축적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병원 운영과 의료산업 제도 개선, 의료인 친목 도모와 권익 신장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중소병원협회, 경기도병원회, 대한병원협회에서 활동하며 병원과 국가 의료정책에 대해 발전 방안을 연구하고 회원간 친목을 도모했다. 특히 대형병원 환자 집중 현상에 목소리를 내며 중소병원 지원육성법 제정을 촉구하는 등 중소병원·의원의 입장을 대변했다.
최씨는 “남편은 의료인 못지 않게 수원에 대한 자긍심이 컸다”며 “모교인 매산초 총동문회장으로서 개교 100주년을 맞아 출간한 ‘매산 100년사'는 그가 모교와 수원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깅조했다.
비용과 자료 확보 등 모든 면에 앞장서서 지원했던 백씨는 훗날 “아내가 반대했으면 하지 못했을 일”이라며 “산부인과 전문의로 환자를 돌보며 두 딸을 훌륭히 키워낸 아내가 참 고맙다”며 모든 공을 최씨에게 돌렸다. 최씨 역시 “참 열심히, 바쁘게 살던 남편이지만 그만큼 자신과 가정에도 충실했다”고 회상했다.
백씨는 암 진단 이후 수술과 항암, 회복을 반복했고 2021년 패혈증으로 조금은 급하게 세상을 떠났다. 최씨는 백씨를 아는 사람들과 무엇보다 아직 어린 외손주들이 할아버지를 잊지 않고 기억하길 바라며 1년 여에 걸쳐 남편의 일생을 기록했다.
최씨는 “바쁜 와중에도 밖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던 자상한 남편 덕에 그의 삶을 대신 쓸 수 있었다”며 “남편이 곁을 떠난지 어느새 5년째가 되어 간다. 대학 시절에 만나 50여년을 함께 했지만 언제나 자랑스럽고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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