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석수선의 K-디자인 이야기…고령사회 디자인, 배려넘어 삶의 새기준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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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석수선의 K-디자인 이야기…고령사회 디자인, 배려넘어 삶의 새기준①

연합뉴스 2026-01-07 14:00: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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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석수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석수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본인 제공]

◇ 학습을 강요하는 도구에서 경험을 잇는 따뜻한 인프라로

한국 사회는 고령 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고령화가 얼마나 빨라질지 예측하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불안정한 '과도기'가 아닌, 이미 확고한 '정착' 단계다.

문제는 이 정착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디자인이 여전히 과거의 관성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은퇴 시점은 앞당겨지고 생애 후반부는 길어지고 있지만, 서비스와 기술, 공간을 지배하는 디자인 문법은 여전히 '젊고, 신체적 결함이 없으며, 디지털 학습 능력이 빠른' 표준 사용자에 맞춰져 있다.

특히 문제는 고령화가 '노인의 증가'만이 아니라, 이른 은퇴와 길어진 생애 후반부 속에서 수많은 고학력·전문 인력이 사회 시스템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거대한 불일치 속에서 고령자는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존재'로 내몰리거나,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의 속도에 치여 마땅히 누려야 할 일상의 권리조차 포기하도록 강요받는다.

그저 물건을 사지 못하는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다. 키오스크가 두려워 먹고 싶은 음식을 포기하고 가게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하는 자괴감, 타인의 도움 없이는 커피 한 잔조차 온전히 주문할 수 없다는 깊은 무력감이 노년을 세상으로부터 단절시키고 초연결 사회의 '이방인'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머뭇거리는 노년의 등 뒤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은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생애주기를 세심하게 헤아리지 못한 사회 시스템과 디자인의 실패가 이들에게 부끄러움이라는 짐을 지우고 있을 뿐이다.

◇ '효도폰'이라는 이름의 사용자 차별

이러한 디자인의 실패는 필자가 부모님의 휴대폰을 바꿔드리려 할 때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시장의 선택지는 잔인할 만큼 양극화되어 있다. 이른바 '효도폰'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기기들은 성능이 낮아 사용자의 자존심을 은연중에 건드리고, 최신 플래그십 모델은 그 화려한 기능만큼이나 높은 '학습의 장벽'을 세운다. 중간 지점이 없다.

결국 고령자는 소비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선택할 권리'를 상실한다. 자신의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과 무관하게, 단지 '배우기 어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택의 여지 없이 한정된 기기 사용을 강요받게 되는 셈이다.

새 기기를 손에 쥔 부모님의 표정은 설렘보다 당혹감에 가깝다. 기존에 익숙해진 습관을 버리고, 낯선 제스처와 UI(User Interface: 사용자 환경)를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한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일종의 공포다. "이런 기능은 다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그 이면에는 "과연 내가 배워서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익숙해질 때까지 자식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해야 한다는 미안함과 부담감은 결국 부모 세대를 기술 앞에서 위축되게 만든다.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고객을 끊임없이 학습시키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시키는 것이 진정한 서비스인가? 사용자가 자신의 무능을 탓하게 만드는 디자인은, 아무리 최신 기술이라 해도 명백한 '서비스의 실패'다.

◇ 사라진 물리적 버튼, 그리고 행동 유도성(Affordance)의 부재

고령자를 위한 디자인(Silver Design)을 논할 때 가장 흔한 해법은 '큰 글씨'와 '친절한 가이드'다. 이른바 '효도폰' 식의 접근이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고령자가 디지털 기기 앞에서 당황하는 진짜 이유는 단순히 글씨 크기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직관적인 물리적 단서가 사라지고, 신체적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기술적 한계에 있다. 과거의 기계는 버튼이 튀어나와 있어 '누르면 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디자인 용어로 '행동 유도성(Affordance)'이 살아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키오스크는 모든 물리적 버튼을 삼키고 매끈한 평면의 스크린만 남겼다. 촉각적 단서가 사라진 이 '매끈한 유리 미로' 속에서 고령자는 길을 잃는다. 노화로 인해 수분이 빠져 건조해진 손가락과 희미해진 지문은 현대의 정전식 터치스크린과 끊임없이 불화한다.

분명히 화면을 눌렀음에도 기기가 반응하지 않을 때, 노인은 기계의 인식 오류가 아니라 자신의 '늙음'을 탓하며 위축된다. 확실한 '딸깍' 소리와 함께 손끝에 전해지던 입력의 확신(Tactile Feedback)이 사라진 자리에는 불안감만 남는다. 이런 상황에서 화면 속 글씨만 키우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시각적 화려함보다 시급한 것은, 사용자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여기를 누르면 작동한다'는 명확한 단서를 회복하고, 거칠어진 손끝의 미세한 전류 변화도 너그럽게 받아주는 기술적 관용성을 갖추는 일이다.

◇ 디지털에이징(Digital Aging)과 적응형 UX의 필요성

디지털 서비스 기획자들은 흔히 '튜토리얼'을 통해 사용자를 교육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인지 심리학적으로 볼 때,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는 '유동성 지능'은 감소하지만, 축적된 경험을 활용하는 '결정성 지능'은 유지되거나 강화된다. 그럼에도 현재의 디자인은 고령자의 축적된 경험(직관)을 활용하기보다, 낯선 규칙을 새로 외우게 만드는 '학습 중심' 설계를 고집한다.

진정한 혁신은 사람이 기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의 노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떨리는 손끝의 터치 오차 범위를 보정해주고, 느려진 인지 반응 속도를 시스템이 기다려주는 '적응형 UX(Adaptive User Experience)'가 필요하다. 이해하지 못하면 더 배워야 하고, 실수하면 사용자의 탓으로 돌리는 구조 속에서 디지털 격차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 윤리'의 문제가 된다.

석수선 디자인전문가

▲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박사(영상예술학 박사). ▲ 디자인 크리에이티브 기업 (주) 카우치포테이토 대표. ▲ 연세대학교 디자인센터 아트디렉터 역임. ▲ 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 한예종·경희대·한양대 겸임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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