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튜버 김겨울이 새해 일기 쓰기를 결심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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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튜버 김겨울이 새해 일기 쓰기를 결심한 이유

엘르 2026-01-07 13:37:25 신고

지난해 11월, 가을이 무르익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줄곧 12월이 되기만 기다렸다. 물론 매해 12월만 기다리는 ‘12월-러버’지만 올해는 조금 더 그랬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2024년에 겨우 사흘 즐기고 박살 난 12월의 낭만을 제대로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 산 일기장의 날짜가 12월 1일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기필코 손으로 쓰는 일기장을 꾸준히 써 보리라. 큰 마음먹고 날짜가 기재된 다이어리를 샀다. 최근 내가 쓴 일기장의 역사에 대해 말하자면 일단 한 권의 공책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이어리용으로 나온 공책은 아니고 일반 방안지 공책인데, 거기에 스티커형 달력을 붙여 일기를 썼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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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달력 스티커를 붙이고 날짜를 채울 때만 해도 패기가 넘쳤다. 2024년 1월 1일에 나는 삿포로에 있었기 때문이다. 새해를 맞아 겨울 삿포로를 혼자 여행하는데 일기를 쓰지 않을 수 없다. 달력 스티커 밑에는 챙겨야 할 짐의 목록이 빼곡하고 공항에서 받은 수하물 스티커도 붙여두었다. 글은 출발 전날인 2023년 12월 31일 일기로 시작한다. ‘올해 초의 일기를 다시 읽는다. 읽기는 순응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썼다.’ 2023년 초에도 일기장을 썼나 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는 매년 1월부터 3월까지 일기장을 가장 열심히 쓴다.


그러니까 사실 이 공책에는 2024년 1월부터 3월까지의 일기와 2025년 1월부터 3월까지의 일기가 쓰여 있다. 물론 여름 한중간의 일기와 가을 일기가 조금씩 쓰여 있기도 하지만 가장 열심히 쓴 것은 1월부터 3월까지다. 그 이전에 쓰던 일기장도 1월부터 3월까지 그리고 그 전에도…. 최근 몇 년 동안 넓게 잡아 전해 12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일기장을 가장 열심히 썼다. 손으로 일기를 쓰겠다는 마음이 가장 충만한 시점이기 때문일 테다. 일기를 포함한 대부분의 글을 노트북으로 쓰는 직업 작가로 살면서 손으로 글씨를 쓸 만한 충분한 동기를 가지지 못했다. 손으로 글씨를 쓸 때는 작품을 읽거나 보면서 공책을 정리할 때뿐이다. 가지고 있는 멋진 만년필들도 주로 그 용도로 쓰였다. 때로는 손목이 아픈 것도 한몫했다.


이렇게 써온 공책에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랄 것도 없다. 달력 스티커를 제외하고는 스티커나 스탬프도 없다. 꾸밈 요소라고는 만년필에 각각 넣어둔 서로 다른 색의 잉크뿐이다. 오로지 날짜와 그날의 일기만 썼다. 하루에 얼만큼 쓴다는 규칙도 없이, 그저 그날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썼다. 어떤 날은 한 문단, 어떤 날은 한 쪽, 어떤 날은 한 문장을 썼다. 오로지 글로만 이뤄진 일기장을 쓰다 보니 손목이 좋지 않은 날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평소에 만년필보다 키보드를 가까이 두고 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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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조금 다르다. 하루에 한 쪽을 쓰도록 돼 있는 일기장을 샀다.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포토 프린터도 샀다. 서랍 구석에 있었던 스탬프도 꺼내고, 새롭게 사용할 스탬프도 몇 개 샀다. 학창시절 혹은 20대 때로 돌아간 것 같다. 영화 티켓과 영수증을 성실히 일기장에 붙이던, 친구에게 받은 쪽지를 잘 접어 다이어리 뒤쪽 포켓에 넣어두던, 취향에 맞는 스티커를 종종 사 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서랍을 뒤지다가 완전히 잊고 있었던 스티커 꾸러미를 발견했다. 내가 이런 걸 모았단 말이지. 오랜만에 마련한 장비들로 조금씩 기록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매일은 아니어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틈틈이 기록한다. 글씨를 쓰기 부담스러운 날에는 날짜 스탬프와 사진이 자리를 채운다. 새로 산 책의 영수증을 잘라 붙이는 것도 오랜만이다. 흘러가 버린 하루가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형태로 남는다는 것이 새삼 즐겁다. 친구와 만난 날, 그 친구 사진과 함께 먹은 음식 사진을 인화해 일기장에 붙이고 나서 문득 깨달았다. 이 시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고. 기억 어딘가에 남아 있다 휘발되거나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 스마트폰 앨범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 이 페이지에 있다고. 이런 즐거움은 글로만 하루를 회고하거나 글로만 빼곡한 일기를 다시 읽을 때의 즐거움과는 좀 다른 즐거움이다. ‘실재성의 즐거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작심삼개월’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3월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아직까지는 순항 중이다. 스탬프를 골라 찍고 사진을 인화해서 붙이고, 짧은 글을 남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방에 매일 카메라를 넣고 다닌 지 오래됐는데 이걸 인화할 생각을 왜 이제 했을까. 아마도 이번에 사진집을 작업하면서 문득 다가온 깨달음일 것이다. 사라져버린 순간을 붙잡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실물 사진에 대한 바람이 내 안에서 자라났나 보다. 실물 종이에 순간을 새기는 일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만지는 일에 대해. 메모장과 블로그, 앨범 앱의 비트들은 이제 조금 지겹다. 이것들에 몸을 입혀주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올해는, 올해는 일기장을 쓰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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