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CES 2026에서 개최한 '삼성 기술 포럼(Samsung Tech Forum)'은 단순한 기술 발표의 장을 넘어, AI 시대 삼성의 기술 철학과 기업 정체성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 자리였다. '기술의 인간적인 면모(The Human Side of Tech: Designing a Future Worth Loving)'라는 주제는 삼성전자가 AI 경쟁의 핵심을 성능이나 속도, 기능의 확장에 두기보다, 기술이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와 감정을 남길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옮기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번 포럼에서 가장 두드러진 메시지는 기술 차별화의 출발점이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가전 연결 경험, TV 서비스, 보안, 디자인 등 네 개 세션으로 구성된 포럼 전반을 관통한 키워드는 연결·신뢰·경험이었다. 이는 AI가 일상 깊숙이 스며들수록 기술 자체의 복잡성은 사용자에게 보이지 않게 감춰지고, 대신 사용자가 체감하는 경험의 질과 정서적 만족도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는 삼성의 인식을 반영한다. 특히 디자인 세션에서 제기된 "기술은 이제 사용성을 넘어 개성과 정체성을 담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지난 20여 년간 이어져 온 미니멀리즘 중심의 IT 디자인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선언에 가깝다.
마지막 패널 토론에서 삼성전자 최고디자인책임자(CDO) 마우로 포르치니 사장이 강조한 '사람 중심 디자인'은 미학적 접근을 넘어 전략적·경제적 필수 요소로 제시됐다. 이는 디자인을 제품의 외피나 부가 가치가 아닌, 기술 전략의 핵심 축으로 격상시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형태와 기능은 의미를 따른다(Form and function follow meaning)'는 원칙 역시, 하드웨어 중심 사고에서 경험 중심 사고로의 전환을 공식화한 표현이다. 삼성의 디자인이 더 이상 제품 단위가 아니라 사용자가 기술을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의 '경험 설계'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 대목이다.
AI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인상적이다. 패널들은 AI를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성지능과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도구로 규정했다. 포르치니 사장이 제시한 'AI × (EI + HI)'라는 공식은 삼성의 AI 전략이 효율과 자동화를 넘어 감정과 의미의 확장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AI가 디자인 과정에서는 인간의 감성과 상상력을 강화하고, 사용 단계에서는 다시 사용자의 감정과 자기 표현을 확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는 선언이다. 기술이 인간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통해 더 인간다워질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러한 철학은 앞선 세션들에서도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첫 번째 세션에서 논의된 홈 AI 생태계는 단순한 기기 간 연결을 넘어, 안전·에너지·편의가 자연스럽게 통합된 생활 경험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기술'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 강조된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 역시 기술적 대응을 넘어 '신뢰의 설계'라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신뢰는 선언이나 약속이 아니라,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는 투명한 작동 방식과 일관된 경험을 통해 구축된다는 점에서, 삼성은 AI 시대의 신뢰를 디자인과 경험의 문제로 끌어올렸다.
세 번째 세션에서 다뤄진 TV와 스트리밍 서비스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삼성 TV 플러스를 중심으로 한 논의는 콘텐츠 경쟁을 넘어, 시청자가 부담 없이 접근하고 맥락에 맞는 콘텐츠를 경험하도록 돕는 플랫폼 전략에 방점을 찍었다. 이는 TV를 단순한 디스플레이 기기가 아니라, 일상의 리듬과 감정에 맞춰 작동하는 미디어 허브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종합하면, 이번 삼성 기술 포럼은 삼성전자가 AI 시대의 경쟁력을 '더 똑똑한 기술'이 아니라 '더 인간적인 기술'에서 찾고 있음을 분명히 한 자리였다. 기술·보안·플랫폼·디자인을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사람의 삶을 중심에 두고 의미와 감정을 설계하겠다는 방향성이다. 이는 AI가 범용화될수록 기술 자체의 우위는 빠르게 평준화되고, 결국 기업의 철학과 경험 설계 역량이 차별화를 결정할 것이라는 삼성의 전략적 판단을 보여준다. CES 2026에서 삼성전자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AI 시대의 기술 경쟁은 이제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람을 이해하는가'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