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이지영 기자 | 손해보험업계가 당국의 실손의료보험 제도 개편을 계기로 수익구조 전환의 갈림길에 섰다. 이 5세대 실손보험 도입과 비급여 관리 강화가 동시에 추진되면서, 실손보험이 장기 적자 상품에서 관리 가능한 핵심 상품으로 재편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올해 실손보험 보험료 인상률을 평균 7.8% 수준으로 확정했다. 이는 최근 5년간 실손 전체 인상률 평균(보험료 기준 가중평균)인 연평균 9%보다 1.2%포인트(p) 낮지만, 지난 2022년부터 5년간 누적된 인상률은 46.3%에 달한다.
가입 시기에 따라 보험료 인상 폭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2009년 9월 이전 가입한 1세대 실손보험의 인상률은 3%대에 그치고, 2017년 3월까지 가입한 2세대 역시 5%대 인상에 머물고 있다. 반면 3세대는 16%대, 4세대는 20%대로 상대적으로 인상 폭이 크다. 세대별로 보장 구조가 다른 만큼, 초기 세대일수록 보장 범위는 넓다. 하지만 그만큼 상대적으로 높은 보험료 부담을 지고 있다는 평가다.
보험료 인상 압력이 커지는 배경에는 누적된 실손보험 적자가 자리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년 실손보험 보험손익 적자는 1조6200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2021년 7월 출시된 4세대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147.9%에 달한다. 손해율이 100%보다 높다는 것은 보험사들이 실손보험에서 적자를 내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실손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5세대 실손보험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상품 출시를 예고했으며 핵심은 보험료 인하와 중증 질환 보장 강화다. 5세대 실손의 보험료는 4세대 대비 30~50% 낮아져 월 7000원대까지 내려갈 것으로 추정된다.
대신 보장 체계는 중증과 비중증으로 명확히 구분되며,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은 강화되는 한편 임신·출산 관련 급여 의료비도 새롭게 포함될 전망이다.
중증질환의 경우 암·심장·뇌혈관질환 등 산정특례 대상에 한해 현행 수준의 연간 5000만원까지 보장된다. 다만 상급종합병원 입원 시 비급여 자기부담금 한도는 연 500만원으로 설정해 중증 환자의 부담을 일정 수준에서 관리하도록 했다. 현행 4세대 실손보험에는 비급여에 대한 연간 자기부담 한도가 없다.
반면 비중증 비급여에 대한 보장은 대폭 축소된다. 연간 보장 한도는 5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줄어들며 자기부담률은 50%로 상향된다. 통원 치료 보상 한도는 하루 20만원으로 제한된다. 기존에 제한이 없던 병·의원 입원 보상에도 회당 300만원의 상한이 새롭게 적용된다.
이와 함께 보건복지부는 도수치료·경피적 경막외강 신경성형술·방사선 온열치료 등 과잉 이용 우려가 제기된 3개 항목을 관리급여로 지정했다. 관리급여로 분류될 경우 건강보험공단이 진료비의 5%를 부담하며 나머지 95%는 환자가 본인부담금으로 부담하게 된다.
정부의 통제로 총진료비는 낮아질 수 있지만, 높은 본인부담률과 실손보험 보장 축소가 맞물리며 과잉 의료 이용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 가입자 44% 쥔 1·2세대…실손 개편의 최대 변수로
실손의료보험 개혁을 둘러싼 금융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올해 초 정책토론회를 열고 5세대 실손보험의 기본 구상을 공개한 데 이어 4월에는 도입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제도의 핵심을 이루는 최종 방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당초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1·2세대 가입자를 5세대로 강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소비자 반발 등을 고려해 최종적으로는 제외한 바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보험사가 일정 보상을 지급하고 기존 계약을 해지하는 '계약 재매입’에 대한 권고 기준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 보호 강화를 위해 충분한 설명 의무·숙려기간 부여·철회 및 취소권 보장 등도 함께 검토 중이다. 재매입 이후에는 가입자가 원할 경우 신규 실손보험으로의 무심사 전환을 허용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관건은 실손보험 구조 개혁의 최대 과제는 약관 변경이 불가능한 1·2세대 가입자를 신규 세대로 어떻게 유도하느냐다. 재매입 대상은 1세대 654만명과 초기 2세대 928만명으로 총 1582만명에 달하며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의 약 44%에 달한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은 계약 재매입과 선택형 특약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선택형 특약은 기존 계약은 유지하되 도수치료 등 과잉 이용 논란이 있는 비급여 항목을 선택적으로 제외해 보험료 부담을 낮추는 방식으로, 이들 가입자의 참여 여부가 제도 개편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업계는 여전히 기존 상품의 체감 효익이 높다는 인식이 우세하다. 1·2세대 가입자의 자발적 전환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상품은 자기부담률이 0~20%로 낮으며 비급여 보장 범위가 넓은 데다 약관 변경 없이 만기까지 유지되는 구조라 보험료가 낮아진 5세대 실손보험보다 전환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계약 재매입이 추진되더라도 보험금 수령이 적거나 보험료 부담을 크게 느끼는 가입자나 일시적 유동성이 필요한 계약자를 중심으로 제한적인 참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비급여 이용이 잦은 가입자는 보험료 인상에도 기존 계약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실손보험 개편의 성패는 강제 전환이 아닌 체감 가능한 인센티브 설계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한편 보험업계도 인센티브 규모와 재원 조달 방식 등 핵심 수치가 아직 제시되지 않아 계약 재매입의 실효성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실손보험 '관리의 영역'으로…손보업계 중장기 실적 반등 신호탄
업계는 이 같은 변화가 의료 이용 행태는 물론 보험사의 손익 구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실손의료보험 제도 개편과 비급여 관리 강화가 맞물리면서 손해보험업계 전반의 중장기 수익성 회복 기대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비급여 관리가 강화될수록 실손보험 익스포저가 큰 보험사일수록 보험료 인상과 제도 변화의 수혜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도수치료가 관리급여에 포함되면서 과잉 이용에 따른 지급보험금 부담 완화도 기대된다.
대신증권의 기업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해상의 실손보험료 수입이 2025년 대비 약 6.9% 증가했으며 위험손해율은 2%p 가량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비급여 항목 관리 강화가 실적 개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비급여관리정책협의체는 도수치료 등 일부 항목을 관리급여로 지정하기로 했다. 현대해상의 경우 도수치료 관련 연간 지급보험금이 약 3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급액이 10%만 줄어들어도 연간 300억원 수준의 손실계약 비용 개선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업계 전반에서도 실손보험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저수익 대량상품으로 인식돼 온 실손보험을 위험 기반 관리상품으로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이다. 질병 이력과 의료 이용 패턴을 보험료 산출과 인수 심사에 정교하게 반영하고, 인공지능(AI) 기반 심사 시스템과 비급여 관리, 보험금 청구 자동화 등 디지털 투자가 확대되는 흐름이다.
이 같은 전환이 안착할 경우 실손보험은 손보사 실적의 부담 요인에서 점진적으로 안정적 수익원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손보험이 사후 보장을 넘어 의료 이용을 관리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가 손보업계 경쟁력을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의 수익성은 보험료 인상보다 의료 이용을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실손보험이 단순 보장 상품을 넘어 의료 이용을 관리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가 손보업계 중장기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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