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병에 가족까지 벼랑 끝…"돌봄, 개인 아닌 사회적 책임 전환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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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병에 가족까지 벼랑 끝…"돌봄, 개인 아닌 사회적 책임 전환 시급"

이데일리 2026-01-07 04:38:4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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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나이 든다는 것은 더이상 축복만은 아니다. 돌봄은 여전히 가족과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다. 이데일리는 초고령사회가 마주한 돌봄의 전환점을 총 4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이지현 송승현 기자] 경기도 안산에 사는 이중기(56·가명)씨는 거동이 어려워진 어머니(81)의 침상 곁에서 쪽잠으로 생활한 지 3년째다. 이씨의 모친이 8년 전부터 관절이 닳고 변형되기 시작해 집 밖을 나서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몇 해 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고 올해는 부정맥까지 겹치면서 침상에 누워있는 게 일상이 됐다. 장기요양보험 ‘요양등급 1등급’ 판정을 받아 노인요양시설(요양원) 입소도 가능한 상태지만 그는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고 있다. 혈압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출렁인다. 수시로 혈압계를 대다 보면 2~3시간 깊이 잠드는 건 꿈같은 일이다. 이씨는 “가끔 너무 힘들면 ‘시설로 보내겠다’고 말로는 으름장을 놓는다”며 “그런데 어머니가 질색을 하신다. 그러면 저도 차마 그 말을 이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욕창이나 천포창 같은 피부 질환은 지금까지 혼자 감당해 왔다. 그는 “그 정도는 제가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면서도 “다른 병만 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남편을 간병 중인 유경희(56·가명)씨는 재활에 매진하던 남편으로부터 “차도가 없다. 더는 자신이 없다.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좌절감을 겪었다. 어떻게든 함께 다시 살아보자며 버텨온 노력이 모두 무의미해진 것 같았다. 살아갈 힘도 삶의 가치도 없다는 생각 끝에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첫번째 시도가 무위에 그치자 결국 유씨는 남편을 살해한 뒤 다시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생명이 위독한 상태로 발견됐다.

김한수(74·가명)씨는 30년간 함께 살아온 아내의 ‘무도병’ 진단 후 생계와 돌봄을 동시에 떠안게 됐다. 온몸이 흔들리고 손발이 끊임없이 움직여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 하루 3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전적으로 김씨가 감당해야 했다.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모아둔 돈을 치료비로 쏟아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은행 대출까지 받아 치료에 매달렸으나 결국 의사로부터 “더는 처방해줄 약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김씨는 사라진 희망 앞에서 극단적 선택을 결심했다. 홀로 남겨질 아내를 떠올리며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줘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는 아내를 살해한 뒤 경찰에 자수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가족 돌봄 한계치 임박

가족에게 전가된 돌봄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노동을 넘어 ‘간병살인’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를 체계적으로 파악할 공식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5일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23년까지 간병살인은 총 228건(추산)이나 발생했다. 2011년까지는 연간 한자릿수에 그쳤던 것이 2012년 10건, 2019년 26건으로 늘었다. 여기에는 환자가 간병하는 가족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자살하는 사례는 포함되지 않아 사례는 더 많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의료·요양·돌봄 서비스가 분절돼 있고 지역 격차와 야간·응급 공적 지원이 부족해 가족은 고립된 채 돌봄을 떠안으면서 심신이 지쳐 극단적 선택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돌봄을 개인이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가족의 소진과 극단적 선택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한 관계자는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 가운데 사연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의료 서비스와 함께 생활 전반에 통합적으로 개입해 환자뿐 아니라 가족까지 회복시키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통돌 전국 시행 앞뒀지만

정부는 이 같은 사회적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3월 27일부터 기초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의료·요양 등 돌봄 지원을 통합·연계하는 통합돌봄 본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전국 229개 지자체가 시범사업에 참여했지만 현장에서는 인력과 제도적 한계가 여전히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권현정 영산대 교수(한국통합사례관리학회 전 회장)는 통합돌봄의 성패가 지자체장의 의지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지자체장의 관심 여부에 따라 지역별 통합돌봄의 질적 수준 차이가 크다”며 “일부 지자체는 담당자 2명으로 사업을 겨우 유지하는 수준에 그쳐 돌봄사업 자체의 안착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한 기초지자체의 통합돌봄 관계자는 “의사를 구하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라며 “뜻을 가지고 시작했다가도 환자를 직접 찾아다니며 진료하는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의료인력이 한 두달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인천의 한 기초지자체 관계자는 “한의원 참여는 늘고 있지만 사회복지사들은 의원급 근무 경력이 인정되지 않아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며 “재가의료팀 구성 자체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시범사업 초기부터 참여한 지역에서는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택의료서비스를 담당하는 한 의료진은 “사업 초기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진료의뢰서가 없다는 이유로 건강보험공단이 500만원의 급여삭감과 20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했다”며 “선의로 한 진료가 규정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현실을 현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환자를 직접 돌보는 간호사들의 부담도 크다. 한 돌봄센터 간호사는 “환자로부터 연락이 오면 현장을 가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수가는 월 5회 방문으로 제한돼 있다. 그 이상 방문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환자에게도, 의료진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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