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이야기가 세계적 보편성을 얻는 게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의 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공감을 만들고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느 시대에 머물러 있는가. 여전히 70, 80년대 경제개발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는 성인지감수성, 인권감수성 교육을 통해 부족한 인식을 개선해 왔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은? 필자는 ‘문화예술인지감수성’이라는 말을 제안하고자 한다. 예술을 장식이나 시혜가 아니라 제작의 노동과 과정으로 이해하는 인식이다. 결과물만 보지 않고 문화예술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과 경제적 효과를 미래지향적으로 파악하는 방향이다.
현실에서는 예술이 ‘전시성 행사’의 동원 수단이 되곤 한다. 성과는 기사 노출, 화려한 건축, 축제 인파 같은 숫자로 환원된다. 예술은 ‘관광’의 하위로 배치되며 사람과 시간은 사라진다. 관광과의 결합이 부정적인 건 아니다. 문제는 ‘보여주기’가 ‘만들기’를 삼키면 제작 현장이 황폐해진다. 이런 수단적 문화예술 접근은 작품과 예술가를 소모시키고 지속가능성과 콘텐츠의 질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격변의 인공지능(AI) 시대. 반복 업무가 줄어들수록 한 도시의 경쟁력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의 감각’에서 나온다. 문화예술은 파편화된 도시에서 시민의 언어를 확장하고 공동체의 관계에 품격을 더하는 필수적인 정신적 인프라다. 문화예술 콘텐츠는 그 도시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유·무형의 경제 가치를 창조한다. 하루 행사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 제작의 일상화는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당당히 역할을 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이는 특정 행정가나 정치인들만의 숙제가 아니다. 우리 지역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문화예술인지감수성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예술가의 창작 고통을 헤아리는 온정주의가 아니다. 문화예술이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과 더불어 AI 시대에 도시의 생존을 결정지을 핵심 자산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예술적 노동이 그 가치에 걸맞은 사회적 대우와 존중을 받을 때 비로소 외부 지원에만 기대지 않는 건강하고 자생적인 문화예술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이제 질문의 방향을 바꾸면 무엇을 더 지을지가 아니라 누가 어떤 시간표로 어디에서 계속 만들 수 있는가다. 인식이 바뀌어야 생태계가 살고 생태계가 살아야 지역의 미래가 풍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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