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사건이 국제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세계 각국에서는 연일 찬·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해외 주권 국가에 대한 무력 개입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자정·견제 기능을 상실한 독재정권 몰락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국제법 위반과 주권 침해, 베네수엘라 국민의 인권 보호 등 전부 굵직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국제사회에 상당한 여운을 남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태의 단면 보단 그 이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전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타국의 주권 개입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사례이자 선의에 의존해 온 국제사회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는 이유에서다. 국내 전문가들 역시 정치적 관점을 배제한 객관적이고 냉철한 베네수엘라 붕괴 원인 분석과 이를 국정 운영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만약 러시아나 중국이었다면…자국에서 외국 군대에 체포당한 세계 1위 산유국 대통령
미국 아틀란틱카운슬·전략문제연구소, 영국 채텀하우스 등 세계 각국 싱크탱크들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마두로 대통령 체포·연행의 표면적인 이유는 '마약 혐의'이지만 더욱 본질적인 이유는 국가 붕괴 수준의 '국력 약화'에 가깝다. 베네수엘라의 외교 역량과 정부에 대한 강력한 국민적 지지가 있다면 타국에서 그 나라의 대통령을 체포·압송하는 작전 자체가 결코 불가능한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상대가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의 국가 원수라고 상상해보면 모든 사태의 원인이 '국력 약화'에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한 사실이다.
베네수엘라는 이미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최빈국이다. 전체 인구의 82%가 빈곤층이고 그 중 35%는 기본적인 식료품조차 사기 힘든 최빈곤층이다. 물론 비슷한 경제 수준을 보이는 나라는 더러 존재하지만 베네수엘라 경제는 유독 악명이 높다. 단순히 조건만 놓고 보면 경제 강국으로 불려도 무방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 규모는 확인된 양만 무려 3030억 배럴에 달한다. 전 세계 매장량의 17%로 2위인 사우디(2975억 배럴)를 상회하는 수준이자 세계 1위 수준이다. 현재 전 세계 산유국 대부분이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국제사회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이런 어마어마한 원유 매장량이 오히려 재앙이 된 케이스다. 2010년대 초반 3300억달러에 달했던 베네수엘라 GDP(국내총생산)는 지난 2018년 1000억달러 미만으로 쪼그라들었다. 재정수입 약 50%, GDP 약 30%를 원유에 의존하는 과도한 쏠림이 원인이었다. 2010년대 이후 줄곧 배럴 당 100달러 안팎에 거래되던 원유가 2010년 중반을 기점으로 반토막 수준으로 급감했고 2016년엔 25달러 수준까지 추락했다. 원유에만 의존해 온 국가 경제가 국제유가 급락으로 한 순간에 망가져 버린 것이다.
"석유만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 되겠지" 권력의 안일함이 부른 재앙 '최악의 우범국가'
막대한 원유 매장량의 저주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원유 만능주의'에서 비롯된 정부의 안일한 대처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석유를 통제하기 위해 국유화를 시도하면서 외국 기업들이 하나 둘 빠져나갔고 그 결과 석유 생산성이 확 떨어졌다. 하루 300만 배럴에 육박하던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량은 현재 140만 배럴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럼에도 고유가 시절 펼쳤던 복지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이면서 나라 곳간은 빠르게 비어갔다. 베네수엘라의 GDP 대비 정부지출은 2000년 28% 수준에서 2018년 41%까지 증가했고 재정수지 역시 2007년 마이너스를 기록한 후 매 년 적자 규모가 커졌다.
원유 가격 하락과 생산량 감소로 재정수입이 급감한 상황에서도 복지 정책 관련 지출을 늘린 것 역시 막대한 원유 매장량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정부는 늘어난 재정 부담을 메우기 위해 미래의 원유수익금을 담보로 정부 차입을 늘렸다. 국제 원유 가격이 오르면 곧장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정부채무 대비 GDP 비율은 유가가 정점을 찍었던 2016년 5.1%에 불과했으나 불과 5년 만인 2020년에는 336.50%까지 폭증했다.
더욱 심각한 사태는 그 이후에 벌어졌다. 원유 가격 회복이 더디게 진행돼 국고가 바닥을 드러냈음에도 베네수엘라 정부는 재정지출 축소 등 근본적인 해결책 보단 돈을 더 찍어내는 '미봉책'을 꺼내 들었다. 돈을 찍어내 빚을 갚는 최악의 판단을 내린 것인데 이로 인해 베네수엘라 물가는 '살인적'인 수준까지 치솟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8년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6만5370%, 2019년엔 1만9910% 등에 달했다. 화폐 가치도 뚝 떨어져 현금이 거의 휴지조각이나 다름없게 됐다. 2021년 기준 달러-볼리바르 환율은 달러 당 324만2264볼리바르로 1년 전에 비해 무려 15배 가까이 상승했다.
원유에 의존한 방만한 국정 운영의 최종 피해자는 선량한 국민들이었다. 국가 경제 붕괴로 국민 대다수가 빈곤에 시달렸고 그 중 상당수는 살길을 찾아 해외로 떠났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해외로 떠난 베네수엘라 이민자 수는 무려 770만명에 달했으며 지금도 매일 2000명 안팎의 사람들이 국경을 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 월급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니 치안에도 공백이 생겼다. 마약·약탈·경찰범죄·살인·총기범죄 등 각종 범죄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독차지했다. 세계 각국에서도 자국민의 베네수엘라 여행을 금지할 정도였다. 우리나라 역시 2019년 12월부터 베네수엘라 전 지역에 출국권고(여행경보 3단계)를 내렸으며 지난해 말엔 일부 접경 지역에 여행금지(여행경보 4단계)를 발령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몰락은 국가 경제에 대한 안일한 인식, 권력 유지를 위한 도덕적 해이 등 무능한 권력이 낳은 '권력형 재앙'에 가깝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소재 대학교 한 국제외교학과 교수는 "세계 각국에서 베네수엘라 몰락의 원인을 두고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는데 대부분 정치적 해석이 가미된 경우가 많아 여전히 갑론을박 또한 극심한 게 사실이다"며 "그럼에도 한 가지 이견이 없는 주장은 모든 사태의 원인이 막대한 원유에 의존해 정치, 경제 등의 부문에서 방만하게 대처를 해왔다는 점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결국 외국 군대에 의해 대통령 체포되는 초유의 사태를 낳은 근본 원인은 권력층의 무능함과 안일함이라고 볼 수 있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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