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직장인들이 고민 없이 선택하는 메뉴 중 하나는 단연 '돈가스'다. 바삭한 튀김옷 속에 가득 찬 고소한 육즙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즐기는 이 음식에는 동서양의 식문화가 절묘하게 만난 100년의 세월이 담겨 있다.
얇고 넓은 경양식 돈가스부터 고기의 결과 육즙이 그대로 살아있는 두툼한 일식 카츠까지, 이제는 입맛에 맞춰 골라 먹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소스를 넉넉히 부어 먹는 예전 방식이나 소금과 고추냉이를 곁들여 먹는 깔끔한 방식 등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맛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렇듯 선택지가 넓어지면서 돈가스는 한국인 99%가 좋아하는 국민 음식으로서 그 자리를 더욱 단단히 굳혔다.
서양의 조리법과 일본의 식습관이 만나다
돈가스의 뿌리는 유럽의 '커틀릿'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일본 메이지 유신 시절,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고기를 먹지 않던 금령이 해제되자 서양의 비프커틀릿이 도입되었다. 당시 일본인들에게 기름에 고기를 튀기는 방식은 낯선 문화였으나, 이를 일본식 튀김 공법인 ‘덴푸라’ 제작 방식과 접목해 '가쓰레쓰'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만들어 냈다.
이 과정에서 일본만의 독창적인 조리법이 완성되었다. 서양식 커틀릿은 고기를 얇게 펴서 버터에 굽듯이 요리하지만, 일본식은 깊은 솥에 기름을 가득 채워 튀겨내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숟가락과 포크 대신 젓가락을 사용하는 문화를 고려해 고기를 미리 썰어 내놓기 시작했다. 소고기 대신 값싸고 구하기 쉬운 돼지고기를 쓰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돈가스의 기틀이 마련된 셈이다.
한국형 ‘경양식’에서 ‘일식 돈카츠’까지
한국에 돈가스가 널리 퍼진 시기는 1960~70년대 경양식 집을 통해서다. 얇게 두드린 고기에 소스를 듬뿍 부어 먹는 ‘경양식 돈가스’는 당시 각별한 날에만 맛볼 수 있는 고급 외식의 대명사였다. 수프와 샐러드, 빵이나 밥이 곁들여지는 이 구성은 한국인들에게 서양 요리를 처음 접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돈가스 시장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바삭한 식감을 강조한 ‘일본식 돈카츠’ 전문점들이 늘어나며 시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얇고 넓은 고기에 소스를 끼얹어 부드럽게 먹는 방식과, 두꺼운 고기를 소스에 찍어 먹는 방식이 공존하게 된 것이다. 요즘은 부드러운 안심(히레카츠)과 지방의 고소함이 살아있는 등심(로스카츠) 등 부위별 특징을 살린 조리법이 퍼지면서 소비자들의 선택지는 더욱 넓어졌다.
평범한 튀김을 넘어 '고급화'의 단계로
요즘 돈가스 시장의 중심은 ‘고급화’에 있다. 그저 배를 채우는 한 끼를 넘어, 제주 흑돼지나 품질이 보증된 품종을 골라 사용하는 매장들이 줄을 잇고 있다. 수십 시간 동안 고기를 낮은 온도에서 숙성해 부드러운 맛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방식이 기본으로 통한다. 소금, 고추냉이, 송로버섯 기름 등 곁들이는 양념까지 세심하게 골라 손님에게 내놓는다.
이러한 고급 돈가스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홍빛 고기'는 덜 익은 것이 아니라, 열을 가했을 때 나타나는 단백질 반응인 '미오글로빈' 현상이다. 이처럼 정교한 조리 과정을 거친 돈가스는 이제 흔한 분식 메뉴를 넘어 요리사의 철학이 담긴 전문 요리로 거듭나고 있다. 단순히 튀긴 고기를 먹는 행위를 넘어, 고기 본연의 맛을 탐구하는 미식의 즐거움이 돈가스 한 접시에 오롯이 담겨 있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