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N유산] 조선의 붓으로 되살린 고려 지식인의 초상, 정몽주를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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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N유산] 조선의 붓으로 되살린 고려 지식인의 초상, 정몽주를 다시 보다

뉴스컬처 2026-01-06 16:49:5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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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고려의 마지막 충신으로 기억되는 정몽주. 그러나 그의 초상 앞에 서면 ‘충절’이라는 한 단어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얼굴이 먼저 시선을 붙든다. 조선 후기 궁중 화가 이한철의 붓을 거쳐 되살아난 초상화는 고려 왕조의 끝자락에서 흐느끼고 선택했던 한 지식인의 내면을 오늘의 시간으로 불러낸다. 역사와 예술, 정치와 철학이 겹쳐지는 정몽주의 초상은 여전히 현재형의 의미를 지닌다.

작품은 종이에 그려진 세로 61.5cm, 가로 35cm의 초상화로, 외형의 크기보다 훨씬 깊은 시간의 층위를 품고 있다. 조선 후기 화가 이한철이 개성 숭양서원에 전해지던 정몽주의 초상을 옮겨 그린 이모본이라는 점에서, 그림은 고려 말 인물을 조선의 시선으로 다시 구성한 결과물이다. 초상화는 언제나 현재가 과거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이한철은 조선 후기 궁중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왕실과 국가 의례에 쓰이는 인물화를 다수 제작했다. 그의 손을 거쳤다는 사실은 이 초상이 개인적 추모의 차원을 넘어 공적 기억의 영역에 속했음을 말해준다. 조선 왕조가 정몽주를 어떤 인물로 남기고자 했는지가 이 화폭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정몽주 초상화.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정몽주 초상화.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정몽주는 고려 말의 충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그는 이미 당대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였다. 성리학의 핵심 텍스트인 '사서집주'를 깊이 이해한 학자로서, 목은 이색이 그를 ‘동방 이학의 시조’로 평가한 일화는 그의 학문적 위상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초상은 충절의 상징이 되기 이전, 정몽주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다.

정몽주의 삶은 이념과 실천이 맞닿아 있던 자리에서 전개됐다. 정몽주는 주자의 '가례'에 따라 가묘 설치를 건의했고, 스스로 삼년상을 치르며 유교적 예제의 사회적 실현에 힘썼다. 학문이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질서로 작동해야 한다는 그의 태도는 이후 조선 사회의 일상 윤리를 예고하는 움직임이었다.

이 초상이 지닌 긴장은 고려와 조선이라는 두 왕조의 경계에서 비롯된다. 정몽주는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질서의 이론적 토대를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했으나, 권력 교체의 방식에는 끝내 동의하지 않았다. 정몽주의 선택은 정치적 판단이면서 동시에 윤리적 결단이었다. 이 초상은 그 결단의 무게를 과장 없이 담아낸다.

화면 오른쪽에 남겨진 1880년의 제사는 이 초상이 조선 말기에도 다시 호출되었음을 보여준다. 고종 연간은 전통 질서와 근대적 문화가 충돌하던 시기였고, 그 속에서 정몽주는 다시 한 번 기준점이 됐다. 초상에 덧붙은 글은 과거 인물에 대한 추모이자, 동시대의 가치관을 투영한 기록이다.

왼쪽 아래에 찍힌 ‘민씨원선관심정금석서화’라는 인문은 이 초상이 거쳐온 소장과 감식의 이력을 암시한다. 영식이라는 제사자의 정체를 둘러싼 추정, 민영익과 홍영식으로 이어지는 개화기 인맥의 가능성은 이 초상이 19세기 말 지식인 사회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몽주의 이미지는 시대를 건너며 새로운 의미를 덧입었다.

작품은 조선 후기 초상화의 미학을 충실히 따른다. 절제된 필선과 담담한 색감, 인물의 외형보다 인격과 기개를 드러내려는 구성은 유교적 초상관을 반영한다. 이는 초상화가 개인의 얼굴을 넘어 도덕적 인물을 시각화하는 장르였음을 말해준다.

조선이 전 왕조의 충신을 부정하지 않고 기념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 역시 이 초상의 중요한 맥락이다. 이는 고려를 완전히 지워야 할 과거로 보지 않고, 도덕적 유산을 계승해야 할 역사로 인식했음을 뜻한다. 정몽주의 초상은 조선의 정치적 정당성과 윤리적 연속성을 함께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오늘날 이 초상은 박물관 전시 공간 속에서 다시 한 번 의미를 갱신한다. 충과 의, 학문과 정치, 개인의 신념과 시대의 요구가 교차하던 한 인물의 얼굴은 여전히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정몽주 초상은 과거의 인물을 기리는 데 머무르지 않고, 한국 사회가 축적해온 고뇌의 깊이를 응축한 시각적 기록으로 남아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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