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대통령 업무보고 직후 브리핑에서 “최소 올해 연말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으나, 보훈부 내부에선 올해 1월을 목표 시한으로 관련 규정과 법리 검토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훈부는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위가 1950년 국방부로부터 받은 무공훈장을 근거로 자동 부여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국가유공자법 제4조에 따르면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본인이나 유가족의 신청이 있을 경우 별도 심사 없이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게 된다. 박 대령 역시 유가족의 신청에 따라 지난해 추가 검토 절차 없이 국가유공자 증서가 발급됐다.
이를 두고 유공자 지정 과정에서 위원회 심의 등 인적 검토가 이뤄졌다면 논란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6·25전쟁 전후 수여된 훈장 수훈자 가운데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국가유공자 증서의 ‘자동 발급’을 보완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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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부는 당초 박 대령의 무공훈장 공적이 담긴 원본 자료를 확보해 4·3사건 당시 민간인 진압 작전에 깊이 관여했는지를 확인한 뒤 훈장 및 유공자 지위 취소 여부를 판단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그러나 국방부가 공적서 원본을 찾지 못하면서 해당 방안은 사실상 추진이 어려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유공자법 제9조는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등록 결정이 이뤄졌거나, 유공자 요건 사실에 중대한 흠결이 있는 경우 국가유공자 권리가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박 대령의 4·3사건 개입 수준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공자 지위를 취소할 경우, 여론에 떠밀린 성급한 결정이라는 비판과 이념 논쟁이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을 보훈부는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훈부는 유공자 증서 발급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에 초점을 맞춰 법률 검토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령은 1948년 5월 제주 4·3 진압작전에 투입돼 그해 6월 부하에 의해 암살될 때까지 약 한 달간 진압작전을 지휘했다. 박 대령을 살해한 부하들은 북한에 동조한 좌익세력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박 대령은 사망 2년 뒤인 1950년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가 주도한 진압작전의 성격을 둘러싼 평가는 지금도 엇갈린다. 정부의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박 대령은 폭도와 양민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전개했다. 부임 후 약 한 달 사이 수천 명의 제주도민이 체포됐다. 일부 기록과 언론 보도에서는 최대 5000~6000명에 이르렀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가 확대됐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하지만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그를 국가 수립 초기 혼란 속에서 공산 세력을 진압하고 질서 회복 임무를 수행한 ‘창군 영웅’으로 치켜세운다. 제주 충혼묘지의 추도비와 고향인 경남 남해군에 설치된 동상 등이 이를 반증한다. 지난 9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에서 그는 ‘자유의 투사’로 묘사됐다.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정 사실이 알려진 이후 제주 4·3 유족과 시민사회는 반발하며 지정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방법을 잘 찾아보라”며 재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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