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지음 2층에 위치한 옷공방의 이경선 방장.
옛것의 재현을 넘어
이경선
온지음 옷공방 방장
2013년 설립된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은 ‘옛것을 바탕으로 바르고 온전하게 지금을 짓는다’는 사명 아래 의식주 문화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중 온지음 옷공방은 전통 복식 문화를 탐구하는 기관이다. 옛 문헌과 사료를 기반으로 당대 의복을 연구하고 재현하는 한편, 전통 소재에 현대적 기법을 접목해 현대화 가능성을 모색하고 제시한다. 지난 2025년 11월에는 10여 년간의 연구 기록을 모아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2000년의 복식사를 망라한 책 <자연을 여미다>를 펴냈다. 서울 서촌에 위치한 온지음 옷공방을 찾아 의복 연구를 지휘하는 이경선 방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친숙한 조선시대 한복뿐 아니라 박물관에서 본 고대 사료를 통해 한복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시간이었다.
1 국립대구박물관이 소장한 고려 금직물을 토대로 재현한 저고리. 2 2000년 한국 복식사를 망라한 서적 <자연을 여미다>. 3 온지음 옷공방이 개발한 라 직물로 제작한 고려 불상화 속 여성 복식.
최근 온지음 옷공방이 발간한 <자연을 여미다> 에 따르면, 성별에 관계없이 바지를 입고 말을 탔던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복의 형태와 미학이 시대마다 다르다. 복식을 연구하려면 한국과 주변국의 문헌을 통해 생활상과 문화를 살핀다. 당시 미감에는 종교가 큰 영향을 미쳤다. 자연을 숭배하는 도교 사상이 바탕인 고대 삼국시대에는 고분 벽화 ‘수렵도’에서 보듯 역동성과 실용성이 드러난다. 불교와 귀족 문화가 융성한 고려 복식은 우아함의 극치다. 여러 문화권과 교류가 잦아 개방적이고 화려하다. 나전칠기, 고려청자 등 한국 역사의 대표 명품이 이때 등장했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과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사치를 금했다. 그런 배경으로 단순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한복’으로 한데 묶을 수 있는 연속성은 어떤 면에서 드러나나? 한반도에서 입은 모든 옷을 한복이라 할 수 있는데, 시대별로 문화와 종교의 영향이 크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바탕은 자연주의다. 예컨대 한반도 의복은 공통적으로 저고리를 앞으로 여미는 카프탄 양식이 특징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도 등장한 양식이지만, 한복은 비정형적 구조가 몸을 편안하게 감싸 공간감과 자연스러운 실루엣이 드러난다.
고구려 벽화 속 의복을 재현했다. 체크무늬는 지금 입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트렌디한데. 당시 고분 벽화의 남성복 실루엣을 바탕으로 하되, 원단은 삼국지 기록을 참고했다. 기록에 따르면 부여 사람들은 외국에 갈 때 ‘증수금계’ 원단의 옷을 입었다고 한다. 이때 ‘증’은 비단, ‘수’는 수놓은 원단, ‘금’은 요즘의 자카드 원단 같은 금직물, ‘계’는 모직물이다. 그중 당대 주변국에서 모직 직물이 발견된 기록에 의거해 이를 모직으로 해석했다. 변형이나 재해석 없이 기록에 기반하여 최대한 당대의 복식을 재현하고자 2019년 모사를 수직기로 직접 제직했다. 흥미롭게도 이 패턴은 2019년 출시된 구찌 의상과도 비슷했다. 2000년 전 의상과 현대의 옷이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더라.
전통 견직물인 ‘라’를 현대적으로 개발했다. 다양한 직물 가운데 ‘라’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려시대 패브릭 가운데 가장 섬세한 것이 라 직물이다. ‘그물 라(羅)’를 쓴 데서 보듯 그물 조직이 특징인데, 직물의 경사(세로 방향 실) 2~4올을 교차해 투공 효과를 냈다. 원단이 얇고 반투명하게 비친다. 당시 송나라 사신이 남긴 <고려도경>에 고려의 라 제직 기술이 훌륭하다는 기록이 있고, 원나라 때도 고려에서 라 직물을 들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직물을 짜는 장인들 중에서도 라 직물 장인의 녹봉이 가장 높았다. 그만큼 최고난도의 직조 기술임을 알 수 있다.
재현한 직물을 ‘라 라이크’라고 했다.온지음은 2015년부터 라 직물을 개발했다. 수직기가 아닌 현대 직기로 만들었기에 ‘라’와 유사하다는 뜻으로 ‘라 라이크’라 부른다. 고려시대 불상에서 발굴한 불복장품 그림의 여성 복식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직물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3차까지 발전했고, 미흡한 점을 보완하여 4차, 5차까지 더 흡사하게 제직하려 한다. 보통 한복에 사용되는 실크는 견직물이라 구김이 많이 가는 단점이 있는데, 라는 신축성이 뛰어나고 염색이 용이해 현대 옷에 적합하다. 2025년 초에 현대 디자이너와 협업해 라 직물로 만든 옷을 전시하기도 했다.
완성도는 어느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나? 조직은 근접하게 구현했다. 하지만 자동 기계는 수직기의 완성도에 미치지 못해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하다. 평직물이라면 현대 직기로 얼마든지 짤 수 있지만, 경사에 꼬임을 더하는 기계가 국내에는 없다.
이후 라 직물을 상용화할 계획인가? 그렇다. 지금껏 40~50종의 전통 직물을 개발했는데, 사람들이 사서 입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옷공방은 원단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기에 협력 업체인 광장시장 세마실크에 일부 원단 기술을 이전하여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도 개발을 거쳐 검증된 전통 소재를 많은 사람이 활용할 수 있도록 알리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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