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사진공동취재단 =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배우 안성기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2026.01.05. photo@newsis.com
“영화란 내게 삶 그 자체이자 꿈, 그리고 행복이다.”
‘국민 배우’ 안성기가 5일 새벽 영면에 들었다. 항년 74세. 1957년 데뷔 후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스크린을 지키며 우리 영화 발전을 이끌어왔다. 대 한 민 국 영화사 와 궤를 같이 하며 시대의 페이소스를 연기로 풀어낸 고인의 인생은 충무로의 상징이자 자부심 그 자체였다.
안성기 주연작 스틸
고(故) 안성기는 흑백 영화 시대에 아역 배우로 출발해 ‘충무로 르네상스’를 견인한 선구자다.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고인은 아역 스타의 한계를 넘어 성인 배우로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확립하며 160편이 넘는 필모그래피를 쌓아 올렸다.
1980년대에는 ‘바람불어 좋은 날’, ‘고래사냥’, ‘칠수와 만수’ 등을 통해 암울한 시대상과 소외된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안성기가 곧 한국 영화’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이후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거머쥐었고, 2003년 ‘실미도’를 통해 한국 영화 최초 ‘1000만 관객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6년에는 4편의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영혼의 파트너’ 박중훈과 재회한 ‘라디오 스타’로 독보적 콤비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영화계 공로를 인정 받아 2013년에는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대배우가 영면에 든 이날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혈액암 투병 중에도 그는 연기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조선 최초의 가톨릭 사제 김대건 신부의 삶을 그린 2022년 영화 ‘탄생’에 출연해 깊은 울림을 남겼고, 202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공식 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내며 영화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책임감을 보였다.
사진제공|유니세프
연기 밖의 삶에서도 고인은 늘 ‘시대의 어른’으로 존재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온화한 인품, 지속적인 선행은 동료와 후배들에게 굳건한 나침반이 됐다.
1990년대 후반 스크린쿼터 축소 움직임이 일며 한국 영화의 존립이 위협받자 삭발까지 감행하며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의 선봉에 섰다. 별세 직전까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으로서 후배 영화인 양성과 열악한 제작 환경 개선에 헌신했다.
생전 ‘국민 배우’라는 “호칭을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듯 고인은 늘 선행에도 앞장 섰다.
1992년부터 20년 넘게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해외 10여 개국의 구호 현장을 찾았고, 자살 예방 캠페인 ‘365 생명사랑운동’ 공동대표로도 이웃의 아픔을 보듬었다. 병마의 고비를 넘겼던 2021년에는 “환자들이 친구처럼 다가왔다”며 치료를 받았던 강남성모병원에 1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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