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65) SK회장이 이끄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이 자금 유용과 예산 방만 지출 의혹으로 산업통상자원부의 특별 감사를 받게 됐다. 28억 5,000만 원의 계약이 120억 원대로 폭증하고 실무자가 리베이트를 요구한 정황이 드러나며 법정 경제단체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임이 밝혀졌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개인 일탈을 넘어 인사 시스템 실패와 조직적 유착 의혹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APEC CEO 서밋 뒤 숨겨진 비리 의혹
대한상의, '부패와 무너진 신뢰의 위기'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 CEO 서밋은 한국 경제의 혁신 역량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화려한 무대였다. 대한상공회의소 최태원 회장은 개회사에서 '연결(Bridge), 실행(Business), 미래(Beyond)'라는 3B 비전을 제시하며, 분열된 세계를 하나로 묶는 실행의 플랫폼을 강조했다. 최태원 회장은 경주를 '동양의 실리콘밸리'라 칭송하며 인류 공영을 위한 경제계의 연대를 촉구했으나, 정작 그 무대를 준비한 조직의 내부는 부패의 습기로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행사가 막을 내린 뒤 들려온 소식은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실무자의 리베이트 요구와 수백억 원대 예산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팽창이었다.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법정 단체인 대한상의가 국가적 행사를 개인과 특정 업체의 돈잔치로 전락시켰다는 의혹은 한국 자본주의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번 사태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서밋 추진단 소속 팀장급 실무자 A씨의 대담한 요구였다. 그는 행사 숙소로 지정된 호텔 측에 실제 4,500만 원인 비용을 4,850만 원으로 부풀려 청구하라고 압박한 뒤, 그 차액 350만 원을 자신의 개인 계좌로 송금하라고 요구했다. 다행히 실제 입금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는 단순한 우발적 사고가 아니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 사건을 두고 실제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형법 제359조에 따른 횡령 및 배임 미수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특히 외부 제보로 인해 범행이 중단된 만큼 자발적 중단이 아닌 장애미수에 해당하며, 범죄 의사가 명확하고 구체적인 실행 행위가 있었기에 정상참작의 여지가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마법처럼 불어난 120억 원의 청구서와 사라진 수요 예측
하지만 350만 원이라는 숫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오는 8일부터 본격적인 감사를 벌이기로 한 진짜 배경에는 400%가 넘는 비정상적인 사업비 증액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한상의는 당초 입찰을 통해 대행사와 약 28억 5,000만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행사가 종료된 뒤 대행사가 청구한 금액은 120억 원을 훌쩍 넘겼으며, 일각에서는 128억 원에 달한다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됐다. 대한상의 측은 국제 행사의 특수성에 따른 추가 사업 반영 결과라고 해명하며 최종 금액을 100억 원대 초반으로 조정하려 시도 중이지만, 입찰 당시 기초 예산이 30억 원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이는 시장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결과다.
이러한 예산 팽창의 이면에는 입찰 과정에서부터 특정 업체를 염두에 둔 독소 조항이 있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대한상의는 참가 자격을 최근 3년 이내의 해외 개최 행사 용역 실적 10억 원 이상으로 제한했는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외 행사가 전무했던 시기를 포함하고 있어 특정 소수 업체에만 유리한 조건이었다. 또한 공식 입찰 전 대한상의 관계자들이 특정 업체와 함께 행사장인 부산 기장의 호텔 등을 합동 답사했다는 정황은 유착 의혹에 기름을 부었다. 폴 크루그먼이 지적했듯 시장의 공정성이 무너진 자리에는 언제나 부패가 기생하기 마련이다.
방만한 예산 지출의 정점은 숙박 시설 운영에서 드러났다. 대한상의는 경주의 숙박 시설 부족을 이유로 포항 영일만항에 크루즈 2척을 띄웠고, 정박료로만 6,500만 원을 지불했다. 당초 각국 CEO 1,000여 명의 숙소로 활용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으나, 실제 투숙객은 40여 명(일부 집계 200여 명)에 그쳤다. 결국 거액을 들여 임차한 호화 크루즈는 대한상의 직원들의 숙소로 활용되는 촌극을 빚었다. 뿐만 아니라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해 특정 호텔에 지급해야 할 최소이용보증금(MG) 위약금만 약 3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초기 총 계약금보다 많은 액수를 앉아서 날린 셈이다.
징계자가 장악한 추진단과 무너진 내부 통제의 시스템
이 모든 사태가 예견된 인재였다는 비판은 대한상의의 인사 시스템을 향한다. 이번 행사를 총괄한 추진단장 B씨는 과거 코로나19 기간 중 베트남 특별입국 지원사업 당시 54만 달러(약 7억 2,000만 원) 상당의 대금을 연체하고 보고를 누락하는 등 물의를 일으켜 2023년 감봉 중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다. 당시 대한상의는 공익사업에서의 책임을 시인하며 징계를 내렸으나, 불과 1년 만에 국가적 행사의 전권을 다시 그에게 맡겼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행사에 참여한 업체들이 B씨와 사적 관계가 있거나, 베트남 사건 당시 문제를 일으킨 업체가 사명만 바꿔 차명으로 참여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상태다.
대한상의 내부 관계자는 리베이트 의혹 제보 직후 해당 직원을 대기발령하고 자체 감사에 들어갔으며 비위 사실 확인 시 엄중 문책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대한상의 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이 사태를 조직의 신뢰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기로 규정했다. 노조는 회원사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행위라며 추진단 전체에 대한 철저한 감사와 법적 책임, 그리고 단호한 인적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내부 유보금을 사용해 구멍 난 예산을 우선 메우려 했다는 의혹은 조직적 사건 은폐 시도라는 비판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특별 감사를 통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자금 운용의 적정성과 위법성 여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위법성이 드러날 경우 즉각 수사기관에 고발할 방침이다. APEC CEO 서밋의 성공은 화려한 조명 아래서가 아니라 투명한 정산서 위에서 완성되어야 했다. 최태원 회장이 강조한 연결과 실행의 가치는 부패한 실무진의 계좌 요구와 텅 빈 크루즈 선실 속에서 빛이 바랬다. 법정 경제단체라는 권위 뒤에 숨어 국가 예산을 쌈짓돈처럼 여긴 이들에 대한 엄중한 심판만이 무너진 경제계의 신뢰를 회복할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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