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스 명가 삼천리의 '성경 김' 인수 전략적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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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스 명가 삼천리의 '성경 김' 인수 전략적 수수께끼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6-01-06 05: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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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창립 70주년을 맞은 '도시가스 명가' 삼천리가 성경식품을 인수한 것은 단순한 외도를 넘어선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본업의 정체를 돌파하려는 사투이자, 이만득(69) 명예회장의 셋째딸 이은선(42·오너 3세) 부사장의 경영 능력을 시험할 무대가 될 전망이다. 검은 반도체라는 김의 글로벌 확장성과 기존 외식 사업의 시너지를 결합해 종합 생활문화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삼천리의 전략적 수수께끼'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삼천리의 검은 반도체 도박: 도시가스 명가가 식탁 위에 사활을 건 이유

반세기 넘게 한국의 안방에 따뜻한 온기를 공급해온 삼천리가 돌연 김을 굽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도시가스 공급 기업인 삼천리그룹이 지도표 성경김으로 유명한 성경식품의 지분 100%를 약 1,195억 원에서 1,200억 원(약 8,600만 달러) 규모에 인수하기로 한 결정은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이는 단순한 사업 다각화 차원을 넘어선다. 탄소중립이라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 앞에서 화석 연료 기반의 사업 구조를 뿌리째 바꾸겠다는 전통 기업의 절박한 생존 전략이다.

도시가스 사업은 그동안 삼천리에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제공해왔다. 하지만 국내 도시가스 보급률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글로벌 에너지 패러다임이 신재생 에너지로 급격히 기울면서 성장의 벽에 부딪혔다. 삼천리의 연결 매출액은 2024년 기준 5조 1,207억 원 수준이지만, 영업이익은 2023년 1,745억 원에서 2024년 1,143억 원으로 34.5%나 급감했다. 이만득 삼천리 명예회장은 일찍이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내부 혁신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신규 먹거리를 찾으며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영속하는 기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번 성경식품 인수는 그 뼈를 깎는 혁신의 결과물이다.

불 꺼지는 가스 렌지 대신 불붙는 K-푸드 스낵에 눈길

시장이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은 왜 하필 김인가라는 점이다. 답은 글로벌 시장의 폭발적인 수요에 있다. 김은 이제 한국인의 밥반찬을 넘어 전 세계인의 '웰빙 스낵'으로 거듭났다. 이른바 검은 반도체라 불리는 김의 수출액은 2025년 역대 최초로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를 돌파했다. 식품군 내에서는 라면과 담배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수출 규모다. 특히 성경식품의 최대 수출국인 미국은 건강 스낵으로서 김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이다. 2025년 11월 기준 대미 김 수출액은 2억 4,500만 달러(약 3,43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25.2% 급증했다.

삼천리그룹 관계자는 "K-푸드의 세계적 확산에 따른 글로벌 김 시장의 성장성과 잠재력에 주목해 이번 인수를 결정했다"며 "지도표 성경식품의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해 그룹의 핵심 축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성경식품은 2025년 매출액이 약 1,3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전체 매출의 40%가 해외에서 발생한다. 사모펀드인 어펄마캐피탈이 2017년 인수한 이후 해외 비중을 1%에서 40%까지 끌어올린 덕분이다.

삼천리는 이번 인수를 통해 기존 외식 사업 계열사인 SL&C와의 수직 계열화를 노린다. SL&C는 차이797, 호우섬, 서리재 등 유명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며 2022년 매출 659억 원을 기록, 전년 대비 50%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성경식품의 제조 역량이 더해지면 SL&C의 가정간편식(HMR) 사업은 날개를 달게 된다. 특히 삼천리가 최근 미국 LA에 런칭한 한식 브랜드 KSC(Kalbi Social Club) 매장은 성경김의 현지 전초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성경식품 매출이 합산되면 삼천리의 비에너지 부문 매출은 단숨에 2,000억 원대로 뛰어오른다.

3세 경영의 시험대이자 글로벌 시장을 향한 수직 계열화

이번 인수의 이면에는 오너 3세들의 경영 승계와 능력 입증이라는 복잡한 방정식이 얽혀 있다. 삼천리그룹은 이장균, 유성연 공동 창업주 가문이 70년째 동업 체제를 유지해온 독특한 구조다. 이씨 가문의 이은백(51) 사장이 에너지 본업을 총괄한다면, 이만득 명예회장의 막내딸인 이은선 부사장은 미래사업본부를 맡아 외식과 신사업을 주도해왔다.

재계에서는 이번 성경식품 인수를 이은선 부사장의 경영권 강화와 연관 지어 해석한다. 이은선 부사장은 성경식품 주식매매계약 체결 현장에 직접 참석하며 사업 확장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은선 부사장의 지분율은 0.67%로 이은백 사장(9.18%)에 비해 현저히 낮지만, 외식과 식품 제조라는 독자적인 사업 영역에서 괄목할 성과를 낸다면 향후 계열 분리나 승계 과정에서 유의미한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삼천리 관계자는 "창립 7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에 성경식품을 인수하며 그룹 생활문화 부문 포트폴리오를 한층 강화하게 됐다"며 "앞으로 성경식품이 생활문화 사업의 한 축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원재료인 원초 가격의 변동성은 가장 큰 리스크다. 글로벌 수요 폭증과 기후 변화로 인한 생산량 감소가 맞물리면서 원초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성경식품의 영업이익률은 2023년 10.4%에서 2024년 6.7%로 하락했다. 삼천리는 대규모 자본력을 바탕으로 원재료 공급망을 안정시키고 고부가가치 스낵 제품을 개발해 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

 다만 사모펀드 관리하에 재무 구조가 깨끗해진 점은 긍정적이다. 성경식품은 자회사 개미식품을 매각한 대금으로 단기차입금 450억 원을 상환해 부채비율을 27.7%까지 낮췄다. 2025년 6월 완공 예정인 제3공장은 연간 5,700만 봉의 추가 생산 능력을 제공한다. 삼천리는 에너지 기업 특유의 보수적인 관리 역량을 식품 제조에 이식해 수익성을 회복해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도시가스라는 안정적인 울타리를 넘어 글로벌 식탁이라는 거친 바다로 나선 삼천리의 모험은 이제 막 시작됐다. 삼천리가 70년 동업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산업의 체질을 바꾸려는 이들의 도전이 성공할지, 아니면 이질적인 업종 간 결합의 한계에 부딪힐지는 향후 3년 내 성경식품의 해외 매출 그래프가 말해줄 것이다. 에너지를 공급하던 손으로 김을 굽는 삼천리의 변신이 한국 장수 기업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지 시장이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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