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令秘史: 명성왕후의 재림 ⑮』 주술의 외피를 두른 욕망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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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令秘史: 명성왕후의 재림 ⑮』 주술의 외피를 두른 욕망의 제국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6-01-05 21:28:01 신고

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ai화백

제1장: 취한 무사의 긴 밤

용산 궁궐의 밤은 늘 안개보다 짙은 소주 냄새로 시작되었다. 황제 대윤은 집무실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이미 여러 병의 소주와 맥주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제국을 통치하는 법치(法治)의 수장이자 공민왕의 환생이라 칭송받던 자의 모습은 간데없었다. 오직 술기운을 빌려 현실을 외면하려는 한 고독한 남자의 그림자만이 일렁일 뿐이었다.

"황제라는 자리는 말이야... 결국 잔을 채우는 일이지."

대윤은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는 퇴근길에도 정장 차림 그대로 단골 식당에 들러 '막잔'을 마셔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내였다. 때로는 경호관들에게 업혀 관저로 돌아갈 정도로 인사불성이 되었으나, 그는 그것을 '소통'이라 불렀고 '폭탄주 정치'라 자화사찬했다. 하지만 그가 취해 있는 동안 제국의 시스템은 마비되었고, 보좌관들은 황제의 59분간 이어지는 일방적인 주정을 견뎌내야만 했다. 

그의 곁에서 잔을 채우던 참모들은 침묵했다. 황제가 취기에 젖어 "비상대권만이 이 나라를 살릴 길"이라며 허황된 소리를 내뱉을 때도 그들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대윤은 자신이 휘두르는 칼이 누구를 향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술기운이 이끄는 대로 '어퍼컷'을 날리며 제국의 법도를 흔들고 있었다.   

제2장: 앉은뱅이 주술사의 밀실

같은 시각, 황비 희건김의 거처인 관저 깊숙한 곳에서는 정체불명의 향불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녀의 방 한복판에는 현대적인 제단이 차려져 있었다. 그 제단의 중심에는 프랑스산 푸른색 가죽 파우치, 일명 '디올백'이 기이한 영기를 뿜으며 놓여 있었다.

황비에게 그 가방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영성적 매개체'이자 흑마술의 제물이었다. 그녀가 추구하는 영성은 전통적인 샤머니즘의 상생(相生)이 아니었다. 타인을 저주하고, 자신의 부정을 가리며, 남편의 권력을 휘두르기 위한 '영성적 타락'의 결정체였다.  

"내게 오는 기운은 누구도 막을 수 없어. 검찰의 칼날도, 백성의 함성도 말이야."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가방을 쓰다듬었다. 한때 "포장도 뜯지 않았다"던 가방은, 실제로는 이미 그녀의 손길에 의해 주술의 외피를 두른 지 오래였다. 그녀는 자신을 '영적인 감이 뛰어난 주술사'로 믿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앉은뱅이 주술사'였지만, 그녀는 남편인 '장님 무사'의 어깨 위에 올라타 제국의 모든 인사를 조종하고 있었다.  

 명리학자 류 씨와 무속인 천공, 그리고 운명의 중개자 명태(明太)까지. 그녀의 주변에는 늘 어두운 예언자들이 들끓었다. 대변인이 임명 열흘 만에 사퇴한 것도, 국가의 기틀인 관저 부지가 하룻밤 새 바뀐 것도 모두 이 밀실의 주술적 조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제3장: 중개자 명태와 뒤틀린 예언

궁궐의 뒷문으로 그림자 하나가 스며들었다. 운명의 중개자이자 정치 브로커인 명태였다. 그는 여론조사라는 현대적인 숫자와 주술적인 영감을 섞어 황제 부부를 현혹해 온 자였다. 그는 황제 대윤의 칼날을 어디로 휘둘러야 할지, 황비의 욕망을 어떤 숫자로 포장해야 할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여사님, 장님 무사는 이미 칼을 뽑았습니다. 이제 그 칼에 영(靈)을 불어넣으시면 됩니다."

명태의 낮은 목소리가 밀실을 울렸다. 그는 황제 대윤을 '눈은 멀었으나 힘은 장사인 무사'로 조롱하면서도, 그 무사의 칼날 위에서 권력을 탐했다. 희건김은 명태의 보고를 들으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명태는 자신의 앉은뱅이 신세를 대신해 광장을 누비는 발이었고, 주술의 언어를 정치적 명령으로 바꾸어주는 통역사였다.

이들의 기묘한 공생 관계는 제국의 공적 시스템을 철저히 파괴했다. 공식적인 회의체 대신 주술사들의 '기운'이 인사를 결정했고, 국가의 중대사는 황제의 폭탄주 자리에서 농담처럼 오갔다. 이는 조선 말기 무녀 진령군이 명성황후의 곁에서 관직을 팔고 국고를 탕진했던 비극의 재판이었다.

제4장: 12.3, 광기의 밤

파국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황제의 알코올 의존도가 극에 달하고 황비의 스캔들이 제국을 뒤흔들던 그해 12월 3일 밤, 대윤은 만취한 상태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대권 아니면 방법이 없어! 저들을 다 잡아넣어!"

황제의 외침은 술기운에 섞여 비릿한 공포를 자아냈다. 그날 밤, 군홧발이 민의의 전당을 짓밟았고 헬기 소리가 제국의 하늘을 갈랐다. 하지만 그것은 주술에 취한 자들이 내린 '심한 오판'이었다. 시민들은 당황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제국을 이끄는 것은 황제의 법도가 아니라, 술잔 속의 광기와 주술사의 속삭임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국회 안으로 난입한 군인들은 장갑차로 입구를 막았으나, 깨어 있는 백성들은 맨몸으로 그들을 막아섰다. 황비의 밀실에서 나온 주술의 힘은 차가운 법 집행의 현실 앞에서 무력하게 깨져나갔다. 황제 대윤이 믿었던 "군대의 명령 체계"는 그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몰랐던 상식 밖의 환상에 불과했다.   

제5장: 파국과 폐인의 비극

서사의 마지막 장인 제5막 '폐인의 비극'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선고를 기다리는 대윤은 이제 술 없이는 단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는 폐인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내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억울해했지만, 이미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그는 죽은 황제였다.

황비 희건김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주술이 통하지 않는 현실을 부정했다. 그녀는 감옥에 갈까 두려워 점괘를 쳤으나, 명리학자의 조언조차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녀가 '언니'라 부르며 신뢰했던 무속인들은 이미 검찰의 수사망에 걸려들거나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그녀를 배신했다.

제국의 황혼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주술의 연기가 걷힌 자리에는 오직 차가운 진실의 빛만이 남았다. 황제 대윤의 붉게 충혈된 눈과 황비 희건김의 일그러진 욕망은 제국이 치러야 했던 혹독한 대가였다.

"술 좀 가져와... 더 센 걸로..."

폐허가 된 궁궐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대윤의 마지막 부르짖음은, 주술과 광기로 세운 제국이 맞이하는 가장 비참한 조종(弔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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