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여성들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 '샤넬(CHANEL)'이 경기 침체로 인한 글로벌 명품 시장의 부진 속에서도 나 홀로 실적 상승을 기록하며 마침내 명품 브랜드 가치 1위에 등극했다. 높은 가격과 노(NO)세일 정책의 한계를 딛고 일궈낸 갚진 성과다. 그 배경에는 한결 같은 희소성 전략, 외부의 입김을 최소화하기 위한 비상장·독립 경영 체제 등 샤넬 가문 특유의 경영 철학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불황에도 비싸게, 남으면 전량 폐기…글로벌 패션 1위 브랜드 일군 '샤넬만의 명품 철학'
영국의 브랜드 전문 평가기관인 브랜드 파이낸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샤넬의 브랜드 가치는 379억 달러(약 54조 6000억)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무려 45% 증가한 수치다. 덕분에 샤넬은 패션 부분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3위에서 2계단 상승한 것이다. 이어 루이비통(329억 달러), 에르메스(199억 달러), 디올(173억 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브랜드 파이낸스는 "좋은 품질, 정통성, 장기적인 브랜드 자산 구축이 브랜드의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샤넬의 실적은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다. 한국만 보더라도 2020년 9296억원, 2021년 1조2238억원, 2022년 1조5913억원, 2023년 1조7083억원, 2024년 1조8446억원 등으로 5년 연속 올랐다. 패션 부문에서 레디투웨어(기성복)와 오뜨 꾸뛰르(맞춤복) 컬렉션이 큰 호응을 얻었으며 워치와 화인 주얼리(시계·고급장신구) 부문의 성장세도 두드러졌다는 게 샤넬코리아의 분석이다. 또 아직 발표하지 않은 지난해 매출액 역시 예년과 비슷한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됐다.
글로벌 패션업계 등에 따르면 전 세계적인 샤넬 열풍의 배경에는 오너 일가 특유의 경영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샤넬은 매 시즌 한정된 물량만을 생산하고 유통망을 직접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재고가 남아도 절대 할인 판매를 하지 않고 소각하거나 재활용하고 있다. 또 비상장 형태를 유지하며 외부 투자를 철저히 막고 있다. 주주 이익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생산량, 유통 채널, 가격 정책 등을 철저히 통제하기 위함이다. 샤넬 오너 일가는 "우리는 패션 기업이 아니라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곳이다"는 브랜드 철학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현재 샤넬은 창업주인 코코 샤넬 후손이 아닌 베르트하이머 가문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샤넬 브랜드의 최상위 법인인 '샤넬 리미티드(Chanel Limited)'의 최대주주는 베르트하이머 일가 소유 투자회사인 '베르트하이머 홀딩스'(100%)다. 베르트하이머 홀딩스 내부의 구체적인 지분 구성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알랭 베르트하이머와 제라르 베르트하이머 형제가 대부분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샤넬 리미티드는 프랑스 현지 법인 '샤넬 S.A.S.'와 해외 투자 법인 '샤넬 인터내셔널 B.V.'를 각각 100% 자회사로 두고 있다. 샤넬 S.A.S.는 의류, 가방, 신발, 시계, 주얼리 등 패션 사업을 담당하는 동시에 장인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공방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샤넬 인터내셔널 B.V.는 아시아·미주·유럽 등 해외 법인을 관리하며 샤넬의 국제 사업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베르트하이머 가문은 경영에 있어서 만큼은 철저히 전문경영인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시대적 흐름에 어울리는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보장해주기 위함이다. 현재 샤넬의 최고경영자(CEO)는 인도 출신의 영국인 리나 나이르(Leena Nair)다. 2022년부터 샤넬을 이끌고 있는 리나 나이르는 영국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 최초의 여성·아시아인이자 최연소 이사회 임원에 오른 이력을 갖고 있다. 샤넬 제품 디자인을 담당하는 디렉터는 보테가 베네타 출신의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다. 그는 보테가 베네타 디렉터 시절 기존 인트레치아토(격자무늬로 가죽을 엮어내는 방식)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브랜드 부흥을 이끌었다.
창업주도 아닌데 무려 100년 지배…베르트하이머 가문의 '샤넬 왕국' 점령 스토리
베르트하이머 가문의 샤넬 지배 역사는 180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활동한 유대계 사업가 에르네스트 베르트하이머(Ernest Wertheimer)로부터 시작됐다. 에르네스트는 연극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뒤 1900년대 초반 화장품 회사 부르주아의 주요 투자자로 참여하며 경영권 일부를 확보했다. 이후 그의 두 아들 장남 폴 베르트하이머(Paul Wertheimer)와 차남 피에르 베르트하이머(Pierre Wertheimer)는 부르주아의 경영에 참여하며 회사를 프랑스 최대 화장품·향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열렬한 승마 애호가였던 차남 피에르는 1920년대 초 프랑스의 한 경마장에서 우연히 샤넬의 창업주인 코코 샤넬을 만났다.
당시 코코 샤넬은 향수 샤넬 No.5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금과 유통망 부족으로 사업 확장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당시에 샤넬의 향수는 소수의 엘리트 고객들에게 판매됐지만 향수를 전문적으로 마케팅하기 위해서는 유통 분야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막대한 자본을 보유한 파트너가 필요했다. 1924년 코코 샤넬은 베르트하이머 형제(피에르·폴)와 백화점 라파예트 설립자인 테오필 바데르와 함께 향수 전문 법인 '파르퓸 샤넬(Parfums Chanel)'을 설립했다. 회사의 지분 구조는 베르트하이머 가문 70%, 바데르 20%, 코코 샤넬 10% 등이었다. 코코 샤넬은 자신의 이름과 제품 판매권을 파르퓸 샤넬에 라이선스 형태로 제공하고 회사 경영은 피에르·폴 형제가 맡았다.
이후 베르트하이머 가문은 글로벌 생산·유통망을 바탕으로 향수 사업을 급성장켰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테오필 바데르와 코코 샤넬이 보유한 잔여 지분을 단계적으로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코코 샤넬은 지분 구조에 강한 불만을 품고 여러 차례 소송을 제기했으나 끝내 패소했다. 이후 베르트하이머 가문은 샤넬의 향수 사업뿐 아니라 패션 부문까지 지배력을 넓혔고 끝내 샤넬을 통째로 거머쥐게 됐다.
피에르가 세상을 떠난 후 샤넬 지분은 아들 자크 베르트하이머에게 상속됐고 현재는 그의 장남 알랭 베르트하이머(Alain Wertheimer)와 차남 제라르 베르트하이머(Alain Wertheimer) 형제에게 넘어갔다. 두 사람은 언론 노출이 거의 없으며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극히 드문 것으로 유명하다. 또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경마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골디코바, 솔레미아 등 세계경마대회에서 다수 수상 이력이 있는 명마를 다수 소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베르트하이머 성씨를 쓰는 인물 중 대외적으로 가장 알려진 인물은 제라르의 장남 데이비드 베르트하이머다. 데이비드는 벤처캐피털(VC) 및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1686파트너스'를 설립해 활발한 투자 활동을 펼치고 있다. 1686파트너스는 지난 2023년 1000만달러 규모의 펀드를 결성했으며 주요 포트폴리오에는 프랑스의 프리미엄 의류 브랜드 '퓨잡', 미국의 명품시계 거래 플랫폼 '1916컴퍼니', YG엔터테인먼트 출신 프로듀서 테디(본명 박홍준)가 설립한 '더블랙레이블' 등이 포함됐다. 더블랙레이블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과 소다 팝 등을 제작한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샤넬이 국내에서 꾸준한 실적 상승세를 보이는 배경에는 주주의 압박에서 벗어나 생산량, 유통 채널, 가격 정책 등을 철저히 통제하는 오너 일가의 잘기적 브랜드 가치 관리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며 "공급을 제한하고 제품 가격을 지속적으로 인상하는 등 희소성을 유지하는 전략은 전 세계 소비자에게 특별함을 전달하는 동시에 샤넬을 '갖고 싶은 제품'으로 만드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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