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올해 해운업계는 홍해·수에즈운하 항로 재개 가능성에 따른 운임 하락과 제한적인 해상 물동량 상승, 친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선대 교체 및 연료 전환으로 인한 투자까지 3중고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주요 정기(컨테이너) 선사들이 홍해사태로 2년간 막혔던 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항로의 운항 재개를 검토 중이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휴전한 이후 해운업계에서는 홍해·수에즈운하를 경유하는 항로 운항 재개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실제 지난달 29일 덴마크 국적의 글로벌 2위 정기 선사 머스크 소속의 65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세바로크’호가 인도~미국 동안 항로에 투입돼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해 홍해로 진입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머스크만 시범 운항에 나선 것이 아니다. 세계 1위 정기 선사인 스위스의 MSC와 3위 CMA CGM(프랑스) 등은 최근 인도와 미 동안을 연결하는 노선을 개편하며 올해 수에즈운하 운항 재개를 저울질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CMA CGM이 소속된 해운 동맹 ‘오션 얼라이언스’를 비롯해 주요 해운 동맹이 올해 수에즈운하 통항을 정상화할 것이란 전망이 계속 나온다.
전 세계 컨테이너 해상운송 교역량의 25% 이상이 통과하는 수에즈운하가 정상화되면 남아프리카 희망봉 우회로 묶여 있던 선복량이 풀리면서 톤마일(화물 이동량(톤)×운송거리(마일))이 10% 정도 감소하며 공급 과잉이 심화될 전망이다. 그동안 운항 거리 증가로 묶여 있던 선박들이 정상 항로로 복귀하면서 실질적인 선복량 공급이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선복량 공급 증가는 화주 입장에선 항로 정상화라는 긍정적인 신호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운항 선사는 선박 회전율 증가로 시장에 공급되는 선복량이 빠르게 늘면서 그동안 누려왔던 우회 항로 운항 프리미엄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항로 정상화 이후에는 운임 협상력이 화주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며 “항로 선택지가 늘어나면 선사는 전반적인 운임 하방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복량 공급이 늘어날 경우 수요인 물동량이라도 뒷받침이 돼야 하지만 올해는 해운업계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확률이 높다.
수출입 물류 플랫폼 트레드링스가 지난해 말 발간한 ‘2026 글로벌 해운시장 전망 리포트’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해운 시장의 배경이 되는 거시 경제 환경은 극히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리포트는 세계무역기구(WTO) 데이터를 인용해 작년 관세 부과를 앞둔 '선행 물량' 효과가 올해 완전히 사라지면서 전 세계 상품 교역량 증가율이 사실상 정체 상태인 0.5%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수요는 정체되는 반면 선박 공급은 팬데믹 기간 발주된 1000만TEU(현존 선대의 31%)에 달하는 기록적인 신규 선박이 시장에 지속적으로 인도되며 올해도 공급 과잉 상태가 이어질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비슷한 시기 한국해양진흥공사에서 낸 보고서에서도 올해 물동량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찾아볼 수 없다. 해진공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수요 전망치는 전체 해상 물동량이 1% 정도 증가하는데 그칠 것으로 관측했다. 철광석이 16억2530만톤으로 작년 대비 0.9% 증가하고 석탄은 13억690만톤으로 오히려 1.1%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5억6520만톤의 물동량이 예상되는 곡물은 2.4%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다.
이 같은 예상은 미중 무역갈등과 주요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 확산으로 물동량이 줄고 세계 경제 성장 둔화로 물동량 상승 역시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에서 비롯된다.
운임 하락과 선박 공급 과잉 및 물동량 정체보다 해운업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이슈는 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선대 교체와 연료 전환 투자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 버린 것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작년 4월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조치(규제안)’를 승인했다. 규제안에 따르면 총톤수 5000톤 이상 국제 항해를 하는 선박은 선박 연료유의 강화된 온실가스 집약도(GFI)에 따라 감축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면 선사에 인센티브를 주고 달성하지 못하면 탄소세를 내는 '해운 탄소세' 도입 의무화를 추진 중이다.
비록 작년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한 압박과 반대로 IMO의 해운 탄소세 채택은 1년 연기됐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규제 환경이 선사들에게 업황과 무관한 대규모 투자 부담을 상시적으로 요구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단기 운임 사이클이 실적을 좌우하던 시기와 달리 앞으로 재무 안정성과 투자 지속 능력 등 친환경 규제를 버틸 수 있는 ‘체급’ 자체가 해운기업 경쟁력의 우선순위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으로 연결된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와 관련한 부담이 선사에 상수로 작용하면서 단기적인 운임 조정과 중장기적인 업황 둔화 가능성이 교차하는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며 “운임 변동성이 커지는 환경 속에서 선복량 조절 능력과 재무 체력이 선사 간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해진공은 작년 말 IMO에서 2028년부터 중기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함에 따라 가중된 국내 선사의 친환경 선반 전환 부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로 ‘한국형 조세특례제도’ 신설 필요성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당시 해진공은 해운업계에 한국형 조세특례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서 조세특례를 통한 친환경 선박 선가의 절감 효과를 설명했다. 참석한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선박 연료 전환 정책의 속도가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선사들이 자체적으로 신조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고 특히 국제 항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친환경 선박 도입을 위한 초기 투자 비용 완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업계 관계자는 “해운업이 과거에는 시황이 좋을 때만 투자해도 됐지만 이제는 친환경 전환 흐름으로 인해 불황기에도 투자를 멈출 수 없는 산업이 됐다”며 “항로 정상화 이후에는 선복량 규모와 네트워크, 친환경 대응 역량이 해운사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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