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인공지능(AI)을 둘러싸고 본격적인 선택의 기로에 섰다. 새해를 맞아 주요 기업들이 잇달아 AI 활용 전략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기대만큼이나 냉정한 시선도 동시에 나온다. 기술 도입 자체보다 "어디까지, 얼마나 바꿀 수 있느냐"가 진짜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5dlf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제약·바이오 기업 내부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는 'AI 도입 여부'가 아니라 'AI로 무엇을 바꿀 것인가'다. 연구개발 효율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AI는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닌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신약 개발을 둘러싼 환경 변화가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후보 물질 발굴부터 임상, 허가까지 이어지는 긴 개발 주기와 낮은 성공 확률은 이미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글로벌 빅파마와의 기술·자본 격차까지 겹치면서, 기존 방식으로는 경쟁이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AI는 시간과 비용을 동시에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방대한 연구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고, 실패 가능성이 높은 후보 물질을 조기에 걸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 글로벌 제약사들은 AI를 활용해 신약 후보 탐색과 임상 설계 과정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방향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부 기업은 AI를 연구개발의 보조 수단이 아닌 핵심 도구로 삼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신약 후보 발굴, 임상 전략 수립, 생산 공정 관리 등 기존에 사람의 경험에 의존하던 영역을 데이터와 알고리즘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연구개발 중심의 제약사는 AI를 '신약 성공 확률을 높이는 도구'로 바라보는 반면, 생산과 위탁개발생산(CDMO)에 강점을 가진 기업들은 공정 안정성과 품질 경쟁력 강화에 AI를 활용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의료·헬스케어 분야를 아우르는 기업들은 서비스 확장과 플랫폼 구축을 AI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AI 활용이 아직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신약 개발 핵심 영역보다는 의료 데이터 분석이나 건강관리 서비스에 활용이 집중돼 있고, 실제 신약 파이프라인 성과로 이어진 사례는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데이터 환경 역시 과제로 꼽힌다. AI 성능은 데이터의 양과 질에 크게 좌우되지만, 국내에서는 임상 데이터 축적과 활용에 제약이 많다. 여기에 AI 전문 인력 부족, 연구 현장과 IT 조직 간의 간극, 규제 불확실성도 현실적인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 분위기는 분명 달라졌다. 과거에는 AI가 '있으면 좋은 기술'이었다면, 이제는 '없으면 뒤처지는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한 중견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AI를 도입하지 않으면 신약 개발 경쟁에서 출발선에 서기도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시장 성장 가능성도 업계의 결정을 재촉하고 있다. 글로벌 AI 신약 개발 시장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으며, 기술 성숙과 함께 성공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 기업들로서는 더 늦기 전에 경쟁에 합류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
2025년은 그래서 중요하다. AI 전략을 내세운 기업들이 실제로 연구개발 성과, 파이프라인 진전, 비용 절감이라는 가시적인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해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단순한 기술 도입 선언이 아니라, 사업 구조와 연구 방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가 평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AI가 K-바이오의 판을 바꿀 수 있을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방향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2025년은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AI를 '도구'로 끝낼지, '경쟁력'으로 만들지 판가름 나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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