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김병조 기자] 2026년 주요 기업 CEO들의 신년사를 종합하면 방향성은 분명하다. 인공지능, 기술 혁신, 대전환, 실행력. 거의 모든 메시지는 ‘미래’와 ‘도전’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신년사를 조금만 더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단어만큼이나 공통적으로 빠져 있는 주제들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 ‘침묵’이야말로 2026년 한국 기업 경영의 현실을 가장 솔직하게 말해준다.
▲첫째, 위기는 있지만 ‘위기’라는 단어는 없다.
글로벌 경제 환경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고금리의 장기화, 지정학적 리스크, 미·중 기술패권 경쟁, 보호무역의 확산은 이미 구조적 변수로 고착화됐다. 그럼에도 다수의 CEO들은 이를 ‘불확실성’이라는 완곡한 표현으로 정리했다. 위기를 위기라고 명명하지 않는 것은 조직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경영자의 현실 인식이 충분히 전달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위기를 직시하지 않은 혁신은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둘째, AI는 말하지만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2026년 신년사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AI다. 문제는 AI가 가져올 조직 변화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자동화로 사라질 업무, 재편될 직무, 축소될 중간관리자의 역할에 대해 CEO가 직접 언급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재교육과 리스킬링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만, 누가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는 비어 있다. 기술 전략은 넘치지만, 인재 전략은 추상적이다.
▲셋째, 성장 담론은 넘치고 생존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도전’, ‘확장’, ‘신사업’은 반복되지만, 비핵심 사업 정리나 수익성 악화 사업의 철수 같은 냉정한 판단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 CEO들이 신년사에서 비용 구조 개선,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자본 효율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과 대비된다. 한국 기업의 신년사는 여전히 ‘성장 중심 서사’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저성장 국면에서 성장만을 말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희망에 가깝다.
▲넷째, 주주와 시장은 주변부에 있다.
ESG와 지속가능성은 강조되지만, 주주가치와 자본 배분 원칙에 대한 언급은 제한적이다. 주주 환원, 자본 효율성, 시장과의 소통 강화는 일부 기업의 선택적 메시지일 뿐, 전반적 흐름은 아니다. 이는 한국 기업의 신년사가 여전히 내부 조직과 임직원을 향한 메시지에 집중돼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자본 시장을 무대로 하는 기업이라면, 이 시선은 분명 재조정이 필요하다.
▲다섯째, 정부와 제도 리스크에 대한 집단적 침묵.
규제, 세제, 노동 정책, 통상 환경은 기업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개별 기업 CEO의 신년사에서는 이러한 변수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경제단체 수장들의 발언과 달리, 기업 내부 메시지에서는 정책 리스크가 사라진다. 이는 한국 기업문화의 특성이지만, 동시에 전략적 현실 인식을 제한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결국, 2026년 한국 CEO 신년사의 가장 큰 특징은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에 있다.
AI와 혁신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그러나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어떤 고통을 감내할 것인지, 어디까지가 한계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이 공백은 우연이 아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조직을 설득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의도적으로 비워둔 결과다.
하지만 위기를 관리하는 리더십은 희망을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불편한 현실을 먼저 언어화하는 것, 그것이 진짜 전략의 출발점이다. 2026년 신년사는 그 출발선 앞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 모습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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