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수백억 원대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이른바 '1세대 빌라왕'에게 1심에서 징역 10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법원은 조직적·반복적으로 이뤄진 범행이 서민 주거 안정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은 사기, 사문서 위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 혐의로 기소된 A모(54) 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은 단기간의 일탈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반복된 구조적 사기"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A씨가 임대차 보증금을 반환할 실질적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후속 임차인의 보증금이나 부동산 시세 상승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의존해 임대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해 왔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다수의 임차인이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고 주거 불안에 내몰렸다는 점을 양형에 불리하게 반영했다.
특히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되찾기 위해 직접 경매 절차에 참여하는 등 장기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과정에서 경제적 손실은 물론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며 범행의 사회적 파장을 강조했다.
A씨는 2016년 1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서울 강서구와 금천구, 인천 일대에서 임차인 227명으로부터 총 426억 원에 달하는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그는 자기 자본을 거의 투입하지 않은 채 빌라를 매수한 뒤, 매매가보다 높은 전세보증금을 받아 차액을 챙기는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범행을 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약 6년간 무려 772채의 주택을 매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보증금 반환이 어려워지자 새로운 임차인의 보증금으로 기존 임차인의 보증금을 돌려막는 방식으로 버텼고, 결국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일부 계약 과정에서는 계약서를 위조한 사실도 확인됐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법정에서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점, 벌금형을 초과하는 중한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해 양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전세사기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이후 선고된 중형 사례 중 하나로, 무자본 갭투자에 대한 사법부의 엄정한 판단 기준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빌라와 다세대주택을 중심으로 한 전세사기가 서민과 청년층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주거 취약계층 보호의 필요성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개인의 일탈을 넘어 제도적 허점을 악용한 범죄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전세보증금 규모에 비해 임대인의 재무 상태를 사전에 확인하기 어렵고, 다주택자의 임대차 계약이 사실상 무제한으로 이뤄질 수 있었던 구조가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한편 검찰과 피고인 측 모두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항소심에서는 피해 회복 여부와 범행 책임 범위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 전반에 남긴 상처가 큰 만큼, 이번 판결이 향후 유사 범죄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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