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데몬헌터스’에서 화려한 액션과 K-POP 사운드트랙만큼이나 눈길을 끈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 헌트릭스 멤버들이 한국의 대표 소울푸드인 ‘김밥’을 먹는 모습입니다. 김밥을 자르지 않고 통째로 먹는 장면이 화제가 되면서 ‘한입에 먹기 챌린지’가 유행할 정도였는데요.
이 김밥 열풍을 현실 세계에서 더 먼저 점화시킨 곳이 있습니다. 바로 뉴요커들의 식료품 성지, 트레이더조(Trader Joe’s)입니다.
트레이더조가 출시한 ‘냉동 김밥’은 미국 전역 500여개 매장에서 연일 품절 사태를 일으켰습니다. 틱톡에서는 김밥을 먹는 영상이 수천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매장마다 “김밥 있나요?”라고 묻는 고객들로 넘쳐났습니다. 애니메이션 속 설정이 현실의 장바구니로 그대로 옮겨온 셈입니다.
“우리는 마트가 아닙니다, 탐험선입니다”
트레이더조의 역사는 1967년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창립자 조 콜롬브(Joe Coulombe)는 “소득은 높지 않지만, 취향은 분명한 대졸 고학력층”을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이곳의 직원들은 ‘크루(Crew)’라고 불리며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근무합니다. 매장 매니저는 ‘함장(Captain)’, 부매니저는 ‘항해사(Mate)’라는 직함을 가집니다. 매장을 하나의 ‘탐험선’으로, 고객을 ‘항해 파트너’로 여기는 트레이더조만의 독특한 세계관입니다.
디지털 시대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더조는 고집스럽게 아날로그를 지향합니다. 매장의 모든 가격표와 안내판은 아티스트들이 직접 손글씨로 그리며, 계산대에서는 직원이 “이 과자 정말 맛있는데, 탁월한 선택이에요!”라며 다정하게 말을 건넵니다. 아마존이 무인 계산대를 늘릴 때, 트레이더조는 사람의 온기를 늘리는 정반대의 길을 걸은 것입니다.
‘안티 마케팅’의 승리, 수집가가 된 고객들
트레이더조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제품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자체 브랜드(PB) 상품입니다. 일반 마트가 수만개의 상품을 진열할 때, 트레이더조는 단 4000여개의 엄선된 제품만 진열합니다. “우리가 직접 먹어보고 검증한 것만 판다”는 신뢰가 핵심입니다.
트레이더조는 중간 유통 과정을 없애고 직접 제조사와 계약하며 가격 거품을 뺐습니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트레이더조 물건은 믿고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저렴하기까지!”라는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게 된 것이죠.
특히 ‘케이팝데몬헌터스’의 인기와 맞물린 김밥 대란은 트레이더조의 안목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한국의 한 중소기업과 손잡고 식물성 재료로만 만든 김밥을 선보이며, ‘K-푸드’를 미국인의 입맛에 맞춘 VEGAN 메뉴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게다가 트레이더조는 TV 광고를 하지 않습니다. 할인행사도, 온라인몰도 없습니다. 대신 그들은 ‘피어리스 플라이어(Fearless Flyer)’라 불리는 종이 소식지를 발행합니다. 갱지에 펜화 스타일의 삽화를 그려 넣은 이 소식지는 신제품의 유래와 맛을 설명하며 고객의 읽는 재미를 자극합니다. 심지어 어떤 고객들은 이 소식지를 수집하기도 합니다.
정가 2.99달러, 리셀가는 500달러?
트레이더조의 팬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매장 한편에 걸린 2.99달러(약 4300원)짜리 캔버스 에코백입니다. 이 가방은 단순한 장바구니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었습니다. 최근 미니 토트백 버전이 출시됐을 때는 매장마다 오픈런이 벌어지고, 이베이(eBay) 등 리셀 사이트에서는 500달러에 거래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뉴요커들이 이 저렴한 가방에 열광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4000원 남짓한 에코백 하나로 “나는 건강한 음식을 선호하고, 합리적이며 세련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지역별로 다른 디자인을 선보여 수집욕을 자극하고, 틱톡 등 SNS에서 ‘힙한 아이템’으로 소비되는 문화가 더해졌습니다. 결국 트레이더조의 에코백을 멘다는 것은, 브랜드가 지향하는 다정한 라이프스타일에 동참한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트레이더조의 항해는 오늘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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