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소멸 시한폭탄 ‘수도권 편중’ 임계점, 이재명정부 ‘5극3특’ 박차
이재명 정부가 출범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지방 예산을 확대하고 지자체 명칭을 변경하는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하며 균형발전 속도를 높이고 있다. 2006년 이후 20년째 동결된 지방교부세 법정률(19.24%)을 22~23%로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각각 8대2에서 7대3으로 조정하는 등 재정 분권 강화를 위한 세제 개편도 논의되고 있다.
이 같은 정책 기조는 올해 예산에도 반영됐다. 국회는 지난 12월 2일 본회의에서 2026년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을 지난해 대비 58% 늘어난 3조7325억원으로 확정했다. 정부의 지역균형 정책 추진 의지가 재정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아 강도 높게 추진하는 이유는 국가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판단에서다. 역대 정부와 국회, 지자체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왔지만 지역 불균형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제·인구 등의 격차가 확대되면서 기존 균형발전 정책이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 역시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이 ‘수도권 편중 국가’라는 표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강현수 중부대학교 교수(전 국토연구원 원장)는 “수도권 집중이 이미 임계점에 이른 상황”이라며 “그 결과 수도권의 주택 가격 불안, 출산율 하락, 지역 인구 감소 등 복합적 국가 위기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수도권으로 인구가 모여드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3월 발표한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5175만 명 가운데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거주 인구는 2630만 명으로, 전체의 50.8%를 차지했다. 국민 두 명 중 한 명이 수도권에 사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50%를 넘은 수도권 인구 비율은 2020년 50.2%, 2021년 50.4%, 2022년 50.5%, 2023년 50.7%로 꾸준히 상승했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52년에는 전체 인구의 53.4%가 수도권에 거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방은 소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소멸위험지역은 2024년 3월 기준 228개 시군구 중 130곳(57%)으로 늘어났다. 지역별로는 전남과 경북이 각각 20곳으로 가장 많았고 △강원 16곳 △전북 13곳 △경남 13곳 △충남 12곳 △부산 11곳 △충북 9곳 △경기 6곳 △대구 4곳 △인천 3곳 △대전 2곳 △ 울산 1곳 등 순이었다.
수도권 쏠림 현상을 이끈 건 청년 세대다. 통계청이 지난해 9월 17일 발표한 ‘최근 20년간 수도권 인구이동’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19~34세 청년층은 해마다 수도권으로 순유입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경기·인천의 20대 순이동 인구는 59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순이동 인구는 지역의 전입 인구에서 전출 인구를 뺀 값을 의미한다.
말로만 ‘지역발전’…‘선거용’이었나 역대 정부 역시 균형발전 정책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았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설치하고 혁신도시 조성을 시행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방의 재정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방소득세·지방소비세를 신설하고 포괄보조금 제도를 도입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역행복생활권 구상과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문재인 정부는 지역균형뉴딜과 메가시티 구축·초광역 공유대학 설립 등을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방시대위원회를 출범해 비수도권 공약과 지역 발전 정책을 총괄하는 조직을 마련했다.
‘지역균형발전’이 주요 국정 과제가 되자 선거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공약이 되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도 주요 후보들은 다양한 지역 발전 전략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해 대선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을 묶는 ‘5대 초광역권’ 구상과 함께 제주·강원·전북을 ‘3대 특별자치도’로 육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기존 특구 제도를 일원화해 미래첨단산업 기반의 ‘메가프리존’ 구축을 제안했다. 이준석 후보는 지방정부에 법인세율 결정권과 최저임금 최종 결정권을 넘기는 방안을 내놓았고, 권영국 후보는 지방분권 개헌과 함께 지방자치단체의 명칭을 ‘지방정부’로 바꾸는 개편안을 제시했다.
이렇듯 역대 정부와 정치권은 다양한 정책을 통해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난 20년간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가 오히려 확대됐다. 역대 정부에서 진행한 정책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비판이 커지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수도권 집중 흐름이 정책 효과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수도권 지역에 자본과 인력이 몰리는 흐름이 워낙 강하다 보니 정책으로 이를 분산시키려는 힘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동시에 역대 정부가 실제로는 균형발전을 거스르는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며 “과거에는 영남권에도 대형 주력 산업이 많았지만 현재 반도체 등 국가 핵심 산업이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된 것도 지역균형발전을 해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일자리뿐 아니라 복지·교육·의료·문화·교통 등 기본 생활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수도권에 몰려 있는 점도 지적됐다. 하혜수 경북대학교 교수는 “지금의 상황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일자리와 각종 기회, 인프라 등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효과가 누적되고 결국 지역 간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중요한 건 예산”…자치분권 이뤄져야 일선의 지자체장들은 수도권 집중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권한을 지방으로 넘기는 ‘분권’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역이 스스로 정책을 설계하고 재정을 운용할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재원 배분 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것에 의견이 모인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지난해 지자체 협의체가 공동으로 ‘지방분권 개헌안’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논의로 이어졌다. 해당 개헌안에는 지방정부가 국가 의존 구조를 벗어나 ‘자치재정’을 확립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행정안전부 지방세통계연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세와 지방세 비중이 각각 75.4%와 24.6%로, 재정 운용의 주도권이 여전히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다. 이 같은 구조가 지자체의 복지 정책 추진, 인프라 설계 등을 어렵게 만든다는 게 지자체장들의 입장이다. 수도권 등은 자체 재원만으로도 사업을 진행할 수 있지만, 기초단위의 지자체는 재정이 상대적으로 열악해 재원을 스스로 확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 자료를 보면 2021년 일반회계 기준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 대부분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는 2023년 기준 48.6%로 나타났지만, 수도권은 평균 50%를 웃돌고 비수도권은 36%에 머물렀다. 기초지자체만 놓고 보면 평균 자립도가 11.6%에 불과해 지역 간 재정 격차가 더욱 두드러졌다.
“5극3특 중심으로 성장 동력 확보해야” 앞으로 이재명 정부에서는 ‘5극3특’으로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방침이다. ‘5극3특’은 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 등 5대 초광역권과 제주·강원·전북 등 3대 특별자치도로 나눠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성장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2437개로 난립한 특구도 5극3특과 연계해 단계적으로 정비할 계획이다. 특구란 경제 발전을 목표로 예외적으로 권한·혜택을 부여한 지역이다.
아울러 정부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구조적으로 확대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대규모 데이터 심층 분석에 착수할 예정이다. 확보된 데이터를 통해 지역 불균형에 미치는 요인을 찾아 ‘5극3특’에 녹여낸다는 방침이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지역불균형 심화요인 분석과 국가균형발전 전략 평가 및 정책적 시사점’ 용역에 착수할 계획이다. 기존 균형발전 정책의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는 판단 아래, 새로운 성장전략 수립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지역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각 지역의 산업적 특성과 여건에 맞는 기업을 전략적으로 유치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행정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자체 통합 등 구조적인 개선책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강 교수는 “핵심은 결국 양질의 일자리”라며 “정부가 선도적으로 공공기관을 지방에 이전하고, 주요 기업들도 지역으로 분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를테면 동남권에는 해양수산 기업이, 서남권에는 AI 기업이 자리 잡는 등 각 지역의 산업 특성과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기반이 지역에서도 구축돼야 한다”고 했다.
하 교수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광역 단위의 시도 통합이 지역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우선 5극3특 구도로 권역별 연합체를 구성하면 행정 통합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한층 수월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중앙정부가 통합된 지자체에 권한과 재원을 과감히 이양한다면 지역의 자생력이 자연스럽게 강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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