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영 선임기자
한국 사회의 정치 갈등은 소위 말하는 진보와 꼴통보수의 대립으로 요약된다.
서로를 향한 언어는 거칠고 비난은 격렬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두 집단은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공통된 문제의 핵심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기준 하나로 재단하려는 판단 방식에 있다. 진보는 고통과 피해라는 결과에 몰입한 나머지 원인과 책임을 지워버리고, 꼴통보수는 법과 원칙이라는 형식을 절대화한 나머지 인간과 맥락을 외면한다.
서로를 비난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오류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진보의 판단의 가장 큰 문제는 감정이 도덕을 대신하는 순간 발생한다. 연민과 정의감은 정치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판단의 종착지가 될 때 책임은 사라진다.
불행한 결과만을 강조하며 모든 문제를 구조와 시스템 탓으로 돌리는 사고는 개인의 선택과 행위를 지워버린다. 법과 원칙은 냉혹한 것으로 치부되고, 선의라는 이름 아래 무책임이 합리화된다.
이 과정에서 다른 해석이나 반론은 비인간적이거나 악의적인 것으로 낙인찍히고, 토론은 차단된다. 정의를 독점했다고 믿는 순간, 자기 성찰은 멈추고 판단은 굳어버린다. 반대로 꼴통보수의 판단은 규칙을 숭배하는 데서 무너진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지만 그것을 살아 있는 인간의 삶 위에 그대로 얹어놓는다.
상황과 동기, 긴급성과 회복 가능성은 고려되지 않고 “규칙은 규칙”이라는 말만 남는다. 이때 정의는 공정이 아니라 무감각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원칙의 선택적 적용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잘못에는 관대하고, 타 집단에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법치와 책임을 외치면서도 권력과 기득권 앞에서는 침묵하는 태도는 원칙 자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결국 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은 기득권을 방어하는 도구로 변질된다.
극렬진보와 꼴통보수의 공통된 결함은 정상적인 판단 구조의 붕괴다.
사실을 보는 겉면 판단, 맥락과 원인을 따지는 속면 판단, 그리고 양심과 책임을 함께 고려하는 판단이 결합돼야 온전한 판단이 완성된다. 그러나 진보는 감정과 도덕만을, 꼴통보수는 규칙과 형식만을 붙든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를 절대화한 결과, 사회는 책임 없는 연민과 맥락 없는 엄벌 사이를 오가며 소모된다. 정책은 극단으로 흔들리고 시민은 피로해지며, 민주주의는 토론의 장이 아니라 진영 싸움의 무대로 전락한다. 정상 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조건은 복잡하지 않다.
사실을 먼저 보고, 맥락을 따지고, 책임을 묻되 회복의 길을 남기는 것이다. 감정은 판단의 출발점일 수 있으나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되고, 원칙은 기준이지만 인간 위에 군림해서도 안 된다.
좌도 우도 아닌,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는 능력이 회복될 때 비로소 정치는 극단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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