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불행하면 시인이 행복하다'(國家不幸詩人幸)
청나라 조익(趙翼)의 문집 '제원유산집'(齊園遺稿)에 나오는 말이다. 나라의 불행이 시인에게 창작의 원천이 되어, 시대의 고통을 기록하고 뛰어난 문학을 남길 수 있다는 역설적 표현이다.
그는 중국 금나라의 망국을 지켜본 시인 원호문(元好問, 1190~1257)의 절창에서 그와 같은 사례를 발견했다.
道旁僵臥滿纍囚, 過去旃車似水流 (도방강와만류수, 과거전거사수류)
紅紛哭隨回鶻馬, 爲誰一步一廻頭 (홍분곡수회골마, 위수일보일회두)
白骨縱橫似亂麻, 幾年桑梓變龍沙 (백골종횡사난마, 기년상재변용사)
"길가에는 포박된 죄수들이 쓰러져 있고, 지나가는 수레는 강물처럼 이어진다.
젊은 여인들이 울며 몽골군의 말을 따라가면서, 누구를 그리워해 걸음마다 뒤돌아보는가.
백골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고향은 몇 해 사이에 사막으로 변했다"
조익은 원호문을 금나라와 원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나라가 망해도 꺾이지 않는 충절과 분노가 시 속에 살아 있다고 평가했다. 원호문은 단순히 슬픔을 읊은 것이 아니라, 망국의 비극을 자연스럽고 진솔하게 표현하여 그의 시를 읽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시인이 절창을 만드는데 굳이 나라가 망해야 하는 법은 없다. 그러니 조익의 주장은 일종의 역설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교과서에 나오는 두보(杜甫, 712~770)의 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두보는 '춘망'(春望)이라는 시에서 안록산과 사사명의 반란으로 당나라가 9년간 전란에 휩싸여 나라가 쪼개지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國破山河在 (국파산하재)
城春草木深 (성춘초목심)
感時花濺淚 (감시화천루)
恨別鳥驚心 (한별조경심)
烽火連三月 (봉화연삼월)
家書抵萬金 (가서저만금)
白頭搔更短 (백두소갱단)
渾欲不勝簪 (혼욕불승잠)
"나라는 무너졌으나 산과 강은 남아 있고,
봄이 와 성 안에는 초목이 무성하다.
시절을 슬퍼하니 꽃에도 눈물이 맺히고,
이별의 한이 깊어 새 소리에도 가슴이 놀란다.
봉화가 석 달째 이어지고,
집에서 온 편지는 천금보다 귀하다.
흰 머리를 긁으니 더욱 빠져,
비녀조차 꽂을 수 없구나"
특히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라는 시구는 어린 시절 깊은 밤 창문 밖에서 술취한 과객의 구슬픈 읇조림으로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일제강점기 시인 윤동주의 대표작 '서시'를 통해서도 우리는 나라의 불행이 시인에게 절창을 안겨준 사례를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Fortuna Vitam Meam Mutavit Oppido'라는 라틴어 문구를 인용해서 자신의 문학적 성취를 강조했는데 "행운이 이 도시에서 나의 인생을 변하게 했다"는 뜻이다. 푸시킨은 러시아 제국의 억압과 검열, 그리고 유배라는 개인적 불행과 고생을 겪었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대표적인 문학작품들을 창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뜻에서 '행운'이라는 단어를 역설적으로 선택했다.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와 같은 시구는 바로 그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푸시킨은 정권의 억압이 곧 자신에게 행운으로 작용했다는 뜻을 그렇게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2025년은 사상 유례없는 계엄과 탄핵 시국을 끝내고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굳이 '국파산하재'라는 시구를 떠올릴 필요까지는 없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래도 난세는 난세여서 대통령이 다시 한 번 구속이 되고 나라를 두쪽으로 만든 진영갈등의 여진은 이어지고 있다. 또 경제는 겉으로는 활기를 띠는 듯 보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불안한 균형 위에 놓여 있었다.
2025년 코스피지수 상승폭은 75.62%에 달해 3저 호황기의 1987년(93%)과 닷컴버블기인 1999년(83%)에 이어 역대 상승률 3위를 기록했다.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수 상승을 이끌었지만 서학개미들의 미국 주식 사냥도 여전해 환율을 밀어올리는 부작용도 있었다.
폭등장세는 불편하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에서도 연출됐다. 한국부동산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 누적 상승률은 8.71%에 달했다. 2006년의 23.46% 이후 19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일부 지역은 20%대 상승률을 보였는데 특히 서울 송파구(20.5%)와 경기 과천(20.1%)이 대표적인 급등지역이다. 반면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아파트값은 오히려 1.13% 하락했고 전국 아파트값은 1.02%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같은 상황에서 2025년 한국 경제 성장률은 약 1.0% 내외로 최근 수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할 것 같다. 반도체 업황 회복 덕분에 수출은 일부 개선됐지만, 내수 부진과 환율 불안, 건설 투자 감소가 발목을 잡았다.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으로 '푸른 뱀띠의 해'이고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으로 '붉은 말띠의 해'이다. 충고를 들어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은 마이동풍(馬耳東風)에서 벗어나 "경험을 바탕으로 더 현명해지는 한 해"를 의미하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슴이나 염소가 해마다 뿔을 떨어뜨리고 새 뿔을 돋아내는 자연 현상을 해각(解角)이라고 한다. 해각은 뿔을 벗고 새 뿔을 돋아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새롭게 출발한다는 상징을 은유하는 말이다.
새해 경제가 풀어야 할 과제는 분명하다. 금융 안정, 성장 회복, 부동산 정상화, 구조 혁신 등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는 해각의 자세가 필요하다. 역설적이지만 시인이 행복해지는 국가의 불행이 더 이상 지속되면 안 된다. 그래서 시인이 불행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가해지는 그런 시절을 희망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길이 결코 평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와의 싸움 그리고 미래와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쯤해서 박노해의 시 '미래에서 온 사람'을 음미하면서 우리 앞으로 질주해오는 붉은 말의 거친 숨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세상에서 쫒겨나는 사람은 오직 둘뿐입니다
미래를 가로막는 과거의 사람이거나
오늘이 받아들이기 두려운 미래의 사람
과거의 사람을 쫓아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안다
하지만 미래의 사람을 추방하는 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미래에서 온 사람은 언제나
낯설고 불편하고 불온해 보이기에"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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