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자립 가속’ 美 ‘규제 관리’···AI 반도체 호황에 韓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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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자립 가속’ 美 ‘규제 관리’···AI 반도체 호황에 韓 ‘시험대’

이뉴스투데이 2026-01-05 08: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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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디파짓포토스, 그래픽=김진영 기자]
[사진=디파짓포토스, 그래픽=김진영 기자]

[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회복세가 이어지며 무역수지 흑자 기조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겉으로는 글로벌 AI 반도체 호황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로 평가받을 만한 성적표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중국 자립 가속과 미국 수출 규제 관리가 맞물린 환경에서, 이 같은 호황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두고는 신중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연간 수출액은 전년보다 3.8% 증가한 7097억달러로, 사상 처음 7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은 22.2% 늘어난 1734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12월 수출액도 695억7000만달러로 13.4% 늘며 월간 기준 최고치를 경신, 반도체 수출은 207억7000만달러로 43.2% 급증했다.

이 같은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반도체 질서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중국은 제재를 계기로 자립을 제도화하고 있고, 미국은 전면 봉쇄 대신 정교한 관리 체계로 방향을 틀었다. 이로 인해 한국 역시 기술·생산·외교 전략 전반에서 복합적인 과제에 직면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의 변화는 선언 단계를 넘어 집행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반도체 가치사슬 가운데 칩 연구·개발, 완제품 생산, 서비스, 자국 수요 등에서 이미 한국과 대등하거나 일부 영역에서는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공지능(AI) 칩을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설계와 인프라 부문에서는 중국이 기술·가격·생태계 전반에서 우위를 보인다는 진단이 나왔다. 화웨이와 캠브리콘 등 자국 기업을 중심으로 AI 칩 내수 생태계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배경이다.

중국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공장 신·증설 시 장비의 50% 이상을 국산으로 사용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공식 규정은 아니지만 사실상 허가 조건으로 작동한다. 빅 펀드 3단계에만 3400억위안 이상을 투입, 장비·소재·설계까지 자립을 밀어붙이고 있다. 데이터센터에 외산 AI 칩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까지 병행하면서 중국의 전략은 ‘기술 경쟁’이 아닌 ‘시장 강제’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접근법은 다르다. 미국은 중국산 반도체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2027년까지 유예하는 한편, AI 칩과 고성능 컴퓨팅,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장비를 중심으로 관리 범위를 넓히고 있다. 중국 내 공장을 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에는 연간 단위 장비 반입 허가를 부여해 공급망 충격은 피하면서도 기술 확산 속도는 통제하는 방식이다.

HBM의 위상 변화는 이를 상징한다. 미국은 AI 성능을 개별 칩이 아닌 연산 칩·메모리·인터커넥트가 결합된 ‘시스템 단위’로 관리하고 있다. HBM이 규제 대상에 포함된 것은 메모리가 범용 부품에서 전략 자산으로 격상됐음을 의미한다. 단기적으로는 한국 기업의 수요 안정에 도움이 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지정학적 관리 대상 산업에 편입됐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한국 대응은 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1조5000억원을 투입해 화성에 국내 최대 규모 고성능컴퓨팅(HPC) 센터를 구축하고, AI 기반 설계·검증·제조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설계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커스텀 HBM과 CXL 등 맞춤형 메모리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소부장 기업들도 하이브리드 본딩, EUV 소재·장비를 중심으로 대규모 증설에 나섰다.

다만 이 같은 대응 전략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를 두고는 신중한 시각도 나온다. 반도체 기술 인력은 증가 추세지만 부족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설계 생태계의 두께 역시 중국과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이 규정·자금·수요를 결합해 생태계를 확대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초대형 기업의 투자 역량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한계로 거론된다. 여기에 중국의 국산 장비 사용 기조가 본격화될 경우 한국 소부장 기업의 최대 시장이 구조적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외교와 산업 전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국면에 놓여 있다. 4대 그룹 총수를 포함한 약 200명 규모 경제사절단이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에 동행하는 것은 중국 시장을 둘러싼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여전히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각각 낸드플래시와 D램을 생산,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물량이 전체 생산의 약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중국과의 반도체 거래를 전면적으로 차단하기보다 연간 단위 승인 방식으로 관리 강도를 높이는 접근을 택하고 있다. 거래 자체를 막지는 않되 장비 반입과 물량, 공정 고도화 여부를 매년 점검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들의 중장기 전략 수립 환경 역시 한층 복합적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인이 통제하는 기업이라는 이유로 이미 성사된 미국 내 반도체 기업 간 인수 거래를 사후에 무효로 한 사례가 나왔다. 거래 규모가 300만달러 안팎의 소규모였고, 바이든 행정부 시절 승인된 사안이었음에도 국가안보를 근거로 행정명령이 발동됐다.

이는 첨단 기술과 관련된 사안에서는 거래 시점이나 금액,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중국 자본 개입 여부’ 자체를 리스크로 본다는 미국의 인식을 분명히 드러낸 조치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미국 반도체 규제가 특정 품목이나 성능을 넘어 지분 구조와 소유관계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은 자립을 가속하고 미국은 규제를 관리하는 쪽으로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AI 반도체 호황 속에서 한국은 어느 한쪽의 수혜자라기보다 기술·생산·외교 전략이 동시에 시험받는 위치에 서 있다는 관측이다. 조은교 산업연구원 중국연구팀장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제조 강국인 중국의 기술 생태계와 첨단 시장을 어떻게 활용할지 협력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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