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안산시 고려인 동포 10명 중 8명은 차별을 겪어도 "신고해봐야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최대 고려인 집중 거주지인 안산시의 지원 조례가 4년째 시행 중이지만, 현장에서는 제도적 실효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안산시미래연구원이 지난해 8월 25일부터 9월 26일까지 안산 거주 고려인 동포 400명을 대면 조사한 결과, 차별 경험 후 향후 신고하지 않겠다는 응답자 중 77.0%가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제 신고 경험자 중 37.6%는 "상황에 변화가 없었다"고 응답했다.
조사에 따르면 안산시 고려인 인구는 2013년 6,307명에서 2025년 22,939명으로 약 3.6배 증가했다. 하지만 차별 경험은 여전히 광범위하다. 한국어 미숙으로 인한 불이익을 겪은 비율은 34.4%, 동일 노동에도 저임금을 받은 경우는 12.6%에 달했다. 가해 주체는 직장 상사·동료(31.4%), 일반 시민(27.0%) 순이었다. 차별을 겪고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비율은 25.1%로 집계됐다.
"지원할 수 있다" vs "통합팀 신설"… 조례 설계부터 달랐다
안산시는 「안산시 고려인 등 재외동포 주민 지원 조례」(2024년 1월 개정)를 운영 중이다. 조례 제7조는 "시장은 다음 각 호의 지원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처우 개선, 한국어 교육, 차별 방지 교육·홍보, 통역·번역 지원, 문화·체육행사 등 6개 항목이 나열돼 있지만, 모두 '임의규정'이다. 의무 조항이 아니라는 뜻이다.
반면 인천 연수구는 2024년 1월 「내·외국인 사회통합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며 '사회통합팀'을 신설했다. 조례 목적부터 '내·외국인 주민 간 갈등 관리 및 상생'을 명시했다. 지원보다는 쌍방 소통과 갈등 조정을 제도화한 것이다. 함박마을을 중심으로 한 갈등 관리 컨트롤타워 역할을 전담 조직이 수행하고 있다.
광주 광산구는 2025년 10월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를 개정하며 내용을 대폭 강화했다. 고려인 정착 지원뿐 아니라 역사·정체성 보존을 조례에 명시하고, '고려인마을' 특화 시설(고려인문화관 등) 설치 근거를 마련했다. 주거환경 개선, 취·창업 지원도 구체화했다. 행정조직인 외국인주민과와 민간 사단법인 고려인마을이 거버넌스를 구성해 예산을 지속 편성하고 있다. 법률지원단 등 실행 체계도 갖췄다.
안산 '외국인주민지원본부'… 고려인 전담팀은 없다
안산시는 전국 지자체 중 유일하게 '외국인주민지원본부'를 국(局) 단위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조직은 외국인 전체를 관할하며, 고려인만을 전담하는 팀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천 연수구는 사회통합팀을 신설해 함박마을 갈등 관리에 집중하고 있고, 광주 광산구는 외국인주민과 산하에 민간과의 거버넌스를 통해 고려인 특화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조직 구조상 안산시는 '규모'는 크지만, 고려인 이슈에 대한 '전담성'은 상대적으로 약한 셈이다.
"조례는 있는데, 왜 달라지지 않나"
안산시의회는 2020년 조례 제정 당시 고려인 지원 의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현장에서는 "제도가 있어도 체감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례 제7조의 지원사업 항목 중 '차별 방지·인권옹호 교육·홍보'는 명시돼 있지만, 실제 차별 피해자가 신고 후 "상황에 변화가 없었다"고 답한 비율이 37.6%에 달한다는 점은 제도와 현실의 간극을 보여준다. "달라질 게 없다"는 인식이 77.0%에 이르는 상황에서, 조례상 '할 수 있다'는 표현이 실제 '하고 있다'로 전환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인천과 광주가 조례 제정·개정과 동시에 전담 조직 신설, 예산 편성, 민관 거버넘스 구축 등 실행 체계를 갖춘 것과 대조적이다.
안산시의회와 집행부는 조례의 '임의규정'을 실질적 지원 사업으로 전환할 구체적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2,939명의 고려인 동포가 "달라질 것"을 체감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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