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1500원을 향해 치솟던 원·환율은 정부의 구두 개입과 처방전으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나 환율은 ‘한 번 뛰었다가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체력과 자본의 이동 경로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가격이다. 진정 국면은 종종 더 큰 파동의 전조가 되기도 한다. 이에 <투데이신문> 은 3편에 걸쳐 원화 약세가 구조적으로 어떻게 진행됐는지 톺아보고, 향후 환율 방향을 탐색해 본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문영서·최예진 기자】 원·달러 환율 급등이 수입물가와 기업 원가를 끌어올리며 한국 경제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환율 여파에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압박까지 겹치면서 수출물가가 급등하고, 그 충격이 기름값과 장바구니 물가로 전이되며 서민 체감 경기 악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환율이 끌어올린 수입·수출 물가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5년 11월 수입물가는 국제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환율 상승 영향으로 전월 대비 2.6%,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오르며 광산품 등 원재료 가격이 전월보다 2.4% 올랐고, 컴퓨터·전자·화학·1차 금속 등 중간재 수입 단가도 3.3% 증가했다.
여기에 지난해 8월 1일부터 도입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상호관세까지 더해지며 기업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대미 직접 수출품에는 관세 부담이, 중국 및 제3국을 경유하는 부품·원재료에는 우회적인 비용 상승 압박이 동시에 작용하는 구조다.
기업들은 늘어난 원가 부담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기업들이 결국 가격 인상을 단행하며 수출물가까지 급등했다. 지난 11월 수출물가는 전월 대비 3.7%, 전년 동월보다는 7% 각각 상승했다. 환율 상승으로 인한 중간재 수입 비용 증가와 관세 압박이 동시에 작용하며 한국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수출·수입 중소기업 635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환변동 관련 중소기업 실태조사’에서 중소기업의 55.0%는 환율 상승으로 증가한 원가를 판매가격에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상위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기업 경영 환경 인식 조사’ 결과에서 기업 절반 이상(50.3%)이 ‘내년 경영 어려움’을 예상하며 고환율을 1위 리스크(26.7%)로 꼽기도 했다.
산업연구원의 ‘환율 변동이 국내 제조업 기업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환율이 10% 오를 경우 영업이익률은 대기업 0.29%포인트, 중소기업 0.36%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름값·장바구니 물가 ‘직격탄’
환율 충격은 서민 체감 물가에도 전이되고 있다. 지난 2일 기준 경질 원유 선물은 배럴당 57.46달러로 여전히 60달러를 하회하고 있지만, 국내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32달러(약 1741원)로 세계 평균(1.18달러)을 웃돌았다. 이는 정부가 올해 2월 말까지 유류세 인하 폭을 축소(휘발유 10%→7%, 경유·LPG 15%→10%)한 데다, 고환율에 따른 수입 원가 상승분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한국석유공사(KNOC)는 작년 11월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리터당 1800원을 넘어서며 지난 2월 이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iM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국제 유가 대비 국내 휘발유 가격이 높은 것은 고환율의 영향이 크다”며 “정부의 유류세 정책까지 두 가지 요인을 겪으며 국내 휘발유 가격이 많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도 오름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과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두 달 연속 2%대를 기록했다. 석유류와 생활물가가 3% 가까이 오르는 가운데, 환율이 1470원을 돌파하며 물가 상승 폭은 1년 4개월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농축수산물(5.6%), 공업제품(2.3%), 유류(5.9%)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으며, 쌀(18.6%), 귤(26.5%), 사과(21%), 돼지고기(5.1%) 등 밥상 물가가 크게 뛰었다.
신영증권 조용구 연구원은 “환율이 1300원대로 안정돼야 물가 압력이 완화될 수 있다”며 “환율이 연평균 1450원 선을 지속적으로 웃돌 경우 기준금리 인상까지 검토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금리 인상은 내수 경기를 더욱 위축시키고 가계 대출 연체율을 높인다. 예대금리차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인상 시 월 상환 부담이 늘어 가처분소득 감소를 야기하며, 연체율 또한 치솟을 수밖에 없다. 이는 경기 둔화 리스크를 키우고 결국 환율 안정과 경기 부양의 딜레마 속에서 한국은행이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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