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은 모든 조언과 평가를 성실히 듣는 태도가 성숙함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정보와 의견이 과잉된 환경에서 거의 모든 말에 반응하는 습관은 생각보다 빠르게 마음을 소모하는데요. 문제는 ‘듣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말에 에너지를 쓰는지가 관건입니다. 어떤 말은 흘려보내도 괜찮은지, 그리고 나에게 중요한 목소리를 가려내는 기준은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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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정성껏’ 듣고 있어요
요즘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평가를 받습니다. 회의에서, 단톡방에서, 댓글에서, DM에서. 심지어 말 한마디 없이 던져진 이모지 하나로도요.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나라면 그렇게 안 할 듯.” “요즘엔 다 이렇게 하던데?” 대부분은 가볍게 던진 말들입니다. 하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죠. 우리는 이 말들을 곧장 의미 있는 피드백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악의가 아니라 조언이나 걱정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혹시 내가 틀렸는데, 괜히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닐까?’ 그 순간부터 모든 말은 검토 대상이 되고, 어느새 모든 의견에 반응해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마음이 쉽게 지치는 이유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많은 판단을 동시에 처리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모든 말을 곱씹고, 비교하고, 선택을 재검토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질문은 뒤로 밀리게 됩니다. “나는 이 선택이 어떤데?” 대신 머릿속에는 이런 문장들이 쌓일 거예요. ‘저 사람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고’ ‘다른 사람은 또 이렇게 말했고’ 결국 선택 기준은 흐려지고, 확신은 줄어듭니다. 무엇이든 명확하지 않은 채 이유 없이 작아진 기분만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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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함은 ‘다 듣는 것’이 아니라 ‘걸러 듣는 것’
우리는 흔히 이렇게 배웁니다. “남의 말도 들어볼 줄 알아야지.”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빠진 문장이 하나 있어요. “누구의 말을 들을지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의 말은 동일한 무게를 가지지 않아요. 경험도 다르고, 맥락도 다르며, 그 말에 따르는 책임의 크기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의견을 마음에 들이는 순간 마음은 회의실이 됩니다. 누구나 들어와 한마디씩 던지고 나가는 공간. 존중은 듣는 데서 끝나도 됩니다. 다 반영해야 할 의무는 없어요.
@haileybieber
이런 사람의 말은 귀담아 듣는 게 좋아요
내 상황을 끝까지 알고 있는 사람의 말. 내 선택의 결과를 함께 감당해줄 사람의 말. 넘어졌을 때 “그래도 다시 해보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의 말. 그런 말들은 나를 흔들기보다 단단하게 만듭니다. 방향을 대신 정해주기보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먼저 이해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은 흘려보내도 괜찮아요
나의 한 장면만 보고 판단하는 말. 개인의 기준을 ‘정답’처럼 제시하는 조언. 책임지지 않는 걱정. 이 말들은 대부분 상대의 불안이나 취향에 더 가깝습니다. 굳이 내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아도 됩니다.
@kendaljenner
결국 필요한 건 ‘기준’
이 질문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 말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작아지게 만드는가?” 듣고 나서 숨이 트이면 남겨두고, 괜히 위축된다면 흘려 보내도 됩니다. 그건 예민함이 아니라 자기 보호에 가까운데요. 모든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에너지와 확신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그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는 스스로 선택하더라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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