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신년 특별기획] 친절한 금융의 배신, 신용은 말없이 깎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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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락 신년 특별기획] 친절한 금융의 배신, 신용은 말없이 깎였다

뉴스락 2026-01-03 14:42:18 신고

3줄요약

[뉴스락] 금융이 일상의 언어로 세탁될 때 부채는 권리로 오인된다.

고금리 이월 결제가 '부담 완화'로 단기 레버리지 투자가 '외상'으로 호명되는 순간,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선은 해체된다.

기술은 금융의 문턱을 낮췄으나 동시에 리스크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켰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5년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 결과'는 이 '친절함'의 이면을 실증한다.

평가 대상 29개사 중 8개사가 '미흡' 판정을 받았으며 여기에는 '혁신'을 앞세운 금융사들이 있었다.

특히 상품 개발 단계에서 소비자 보호 부서의 의견이 오타 정정이나 단순 자구 수정 수준의 형식적 절차에 그치고 있다는 당국의 지적은 금융권이 '언어'를 리스크 관리가 아닌 '마케팅의 도구'로만 소비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뉴스락>은 합법의 울타리 안에서 UX(사용자 경험)와 마케팅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금융 언어의 오염'을 추적하고, 금융사가 설계한 매끄러운 화면 위에서 소비자가 인지하지 못한 채 '신용'이라는 자산을 소진하게 만드는 구조를 해부하고자 한다.

 AI 생성 이미지. [뉴스락]
 AI 생성 이미지. [뉴스락]

결제금액 낮추기라는 감언이설, 빚이 된 '언어의 세탁'

소비자를 현혹하는 금융 앱 속 실제 문구들. 뉴스락 편집 [뉴스락]
소비자를 현혹하는 금융 앱 속 실제 문구들. 뉴스락 편집 [뉴스락]

사을 강서구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A씨는 2022년 처음 리볼빙(일부결제금액이월약정) 서비스를 이용했다.

당시 그가 이해한 서비스의 실체는 '이번 달 결제 금액을 다음 달에 나눠 갚는 편리한 기능'에 불과했다.

금융 앱 어디에도 이것이 연 15~19%의 고금리가 붙는 대출성 계약이라는 경고는 선명하게 인식하기 어려웠다.

A씨는 "리볼빙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했고, 정확한 설명보다 결제 부담을 덜어준다는 문구에만 신경을 썼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2~3차례 결제를 미룬 적은 있으나, 한 달 이내에 모두 상환했던 그는 스스로 심각한 연체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한 그의 신용점수는 이미 하락해 있었고, 그 원인이 리볼빙에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금융사가 '편의'라 부르는 행위가 신용평가 시스템에서는 ‘부실 신호’로 읽힌 결과다.

이러한 '인식의 왜곡'은 전 금융권에 만연한 언어 오염의 결과물이다. 

최근 주거래 은행으로부터 "내부신용등급 상승이 예상되는 고객 대상"이라며 금리인하요구권 신청을 안내하는 알림톡을 받은 직장인 B씨는 실제 신청 결과 '불수용' 통보를 받았다. 

메시지는 마치 금리인하가 확실시된 것처럼 소비자를 설득했으나, 실제 수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애매모호한 기준과 혜택이 확정된 것처럼 꾸며낸 마케팅 용어 사이의 간극이 금융 소비자의 불신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4대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은 최근 오히려 낮아지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는 금융사의 내부 통제 시스템이 '언어의 리스크'를 걸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실태 점검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 금융사에서 상품 개발 시 소비자보호부서와의 사전협의는 관련 의견을 무시하거나 광고물 속 오타를 정정하는 식의 형식적 절차에 머물러 있다. 

무엇보다 판매 직원의 성과평가체계(KPI) 내에서 소비자 보호 지표는 배점이 낮거나 감점 기준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현장의 언어가 위험을 경고하기보다 ‘혜택’을 강조하는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강제성이 존재하는 셈이다.

금융사가 설계한 매끄러운 화면 위에서 부채는 권리로 둔갑하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비가시적인 신용 자산 소진으로 이어진다.

신용은 어떻게 조용히 깎이는가, 점수 산정의 블랙박스

AI 생성 이미지. [뉴스락]
AI 생성 이미지. [뉴스락]

신용점수는 현대 금융 사회에서 개인의 경제적 신분을 규정하는 성적표지만, 그 산정 기준은 철저히 금융 리스크 관리의 블랙박스 안에 갇혀 있다.

앞선 사례의 A씨가 겪은 '연체 없는 신용 하락'은 이 블랙박스가 작동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금융 소비자들은 흔히 연체만 없으면 신용에 문제가 없다고 믿지만, 개인신용평가회사(CB)의 알고리즘은 소비자의 기대를 배신한다.

리볼빙이나 미수거래 같은 서비스는 이용자가 단 한 번도 결제를 미루지 않았더라도, 그 서비스를 선택했다는 행위 자체를 '현금 흐름의 경고 신호'로 인식한다.

당장의 결제 능력이 부족해 고금리 대출성 계약에 손을 뻗었다는 통계적 판단이 하락의 도화선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신용의 침식은 비가시적으로 진행된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불리는 한도 대출의 경우, 실제 돈을 인출해 쓰지 않더라도 설정된 한도 금액 자체가 잠재적 부채로 간주되어 신용 평가에 반영된다.

신용카드 한도 사용률 역시 중요한 변수다.

금융사는 소비자가 한도에 가깝게 카드를 사용할수록 이를 재무적 불안정성으로 해석한다.

금융사가 앱 화면 전면에 '결제 부담 완화'나 '비상금 한도 부여'라는 친근한 용어를 내세우며 소비를 독려할 때, 신용평가 시스템의 이면에서는 해당 소비자의 리스크 등급을 조용히 끌어올리고 있다.

금융사가 마케팅으로 제안하는 '편의'가 신용평가사에게는 '위험'으로 번역되는 이중적 구조다.

금융권이 이른바 '깜깜이' 식으로 운영해온 정보의 비대칭성은 이러한 인식을 더욱 고착화한다.

금융 소비자들은 대출금리 변경이나 신용점수 변동의 정확한 원인을 알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으며, 이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합리적 선택권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로드맵에서 금융정보 접근권 강화와 투자판단 요소에 대한 정보공개 확대를 강조한 것도 이러한 '정보의 불투명성'이 소비자 피해의 근본 원인임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자신의 신용 자산이 어떻게 소진되는지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금융사의 유도된 언어에 노출되는 것은, 사실상 선택권이 박탈된 채 부채의 굴레로 진입하는 것과 다름없다.

결국 신용 사용의 비가시화는 금융사가 설계한 언어적 장치와 신용평가의 폐쇄적인 구조가 결합한 결과다.

소비자는 편리한 UX 뒤에서 자신의 금융 체력이 깎여나가는 속도를 체감하지 못하며, 문제가 불거진 뒤에야 회복하기 어려운 신용 하락이라는 대가를 마주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불리한 금융상품 조건 변경이 '깜깜이'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며 "금융사가 가진 주요 투자 판단 요소와 건전성 정보 등에 대한 정보 공개를 확대해 소비자의 알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사가 제공하는 정보가 혜택에만 치중되어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지 않도록, 금융 상품의 편리함 이면에 숨겨진 신용 자산 소진의 메커니즘을 투명하게 드러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소비자가 자신에게 더 유리한 상품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이번 로드맵의 핵심"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언어의 정상화, 2026년이 응답해야 할 과제

사전예방적 금융소비자보호 강화 체계도. 금감원 제공 [뉴스락]
사전예방적 금융소비자보호 강화 체계도. 금감원 제공 [뉴스락]

금융 언어의 오염이 개인의 신용을 침식하는 현상은 이제 금융당국의 핵심 규제 사안으로 부상했다.

금융감독원은 2026년을 '실질적 금융소비자 보호의 원년'으로 선포하며 그간 사후 구제에 치중했던 소비자 보호의 패러다임을 사전 예방 체계로 전면 전환할 것임을 예고했다.

홍콩H지수 ELS 사태와 같이 금융회사의 단기 성과 중심 영업 관행과 미흡한 내부통제가 낳은 소비자 피해가 반복되는 구조적 한계를 타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보여진다.

당국은 감독과 검사, 시정으로 이어지는 리스크 기반의 소비자 보호 감독 체계를 구축하고, 금융회사의 거버넌스 및 내부통제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실태 평가 체계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이는 금융사가 마케팅 수사 뒤에 숨겨왔던 '언어의 리스크'를 제도권 안에서 강제로 정상화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또한 상품 판매 후에도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와의 상호작용을 확대해 금융회사의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동시에 소비자의 금융 정보 접근권과 알 권리를 보장해 '깜깜이' 대출 금리 변경 등 불합리한 금융 상품 조건 변경을 차단하는 환경을 조성할 방침이다.

금융사가 제공하는 정보가 오직 혜택에만 치중되어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지 않도록, 금융 상품의 편리함 이면에 숨겨진 비가시적인 신용 자산 소진의 메커니즘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 임직원이 금융소비자 보호 DNA로 재무장하여 감독 행정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제고하겠다"며 "금융사 내부의 상품위원회 기능을 강화하고 제조업자와 판매업자의 책임성을 동시에 유도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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