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무대로 온전히 옮겨놓은 국민드라마
LED 바닥 활용한 기발한 무대 연출…배우들의 혼신 연기 인상적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서울 동작역 5번 출구를 나서면 하얀 천막으로 둘러싸인 임시 공연장 컨버스 스테이지 아레나(Converse Stage Arena) '여명'이 나타난다. 현충원 앞 근린공원 공터에 지어진 이 공연장에서는 지난달 4일부터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가 공연되고 있다.
1991년 최고 시청률 58.4%를 기록한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일제의 폭압, 독립단체 내 좌우 대립, 해방 후 혼란, 제주 4·3까지 한국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위안부로 끌려간 '윤여옥'과 강제징병 된 '최대치'의 애달픈 사랑을 다룬다. 무려 36부작에 달하는 원작 드라마의 내용을 6막으로 구성해 3시간 가까이 공연한다.
앞서 2019년과 2020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등에서 두 차례 공연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원작 드라마의 탄탄한 시나리오를 무대 위에서 제대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후반부 제주 4·3 민중 봉기 장면은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이승만 정부와 미군정의 이간질로 좌우로 나뉜 제주 도민들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장면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드라마 방영 당시 전 국민에 회자했던 윤여옥과 최대치의 철조망 키스 장면과 눈 쌓인 한라산에서의 엔딩신도 무대 위에서 완벽하게 구현했다. 드라마를 시청했던 관객에게는 35년 전 기억을 소환하고, 드라마를 시청하지 못한 젊은 관객에게는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기존의 프로시니엄 무대(Proscenium Stage)에서 벗어나 새로 지은 빈야드 형태(Vineyard Style) 공연장을 선택한 것도 주효했다. 마치 마당놀이처럼 무대를 360도 둘러싼 객석에서 내려다보는 식으로 공연이 진행되면서 관객이 극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든다. 또 무대 곳곳에서 펼쳐지는 장면을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 복잡한 서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무엇보다도 객석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는 점에 착안해 기획한 무대 연출이 압권이다. 무대 바닥을 가득 채운 LED 연출로 밀림 속 전쟁터와 독립운동가가 활동하던 상하이, 제주 4·3의 현장을 효과적으로 구현해냈다. 시시각각 변하는 작품의 배경을 LED 바닥으로 빠르게 전환해 극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특히 설산(雪山) 위에서 총탄에 스러지는 윤여옥과 최대치의 모습을 LED 바닥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기발하다. 눈 위에 흩뿌려지는 핏자국이나 눈에 스며드는 핏물을 LED로 실감 나게 구현했다.
배우들의 연기와 가창도 인상적이었다. 비록 스타급 배우는 없지만 35명의 출연진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무대 위에서 혼신을 다해 연기한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윤여옥 역의 정명은과 최대치의 김준현 등 실력파 뮤지컬 배우들의 열연과 노래가 작품의 진지함과 맞닿아 감동을 배가시킨다. 또 최대치와 함께 강제징병 된 권동진의 모친 역으로 출연한 유보영의 수준 높은 연기와 가창도 관객의 눈길을 끌었다.
'여명의 눈동자'는 이번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는 물론 해외 공연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공연장의 이동 설치가 자유로운 만큼 적절한 부지가 확보되는 대로 다양한 곳에서 공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제작사인 넥스트스케치의 정종희 총괄책임자는 "2019년, 2020년과는 다른 형태의 공연장에서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작품을 제작했다"며 "해외 라이선스가 아니라 순수 국내 창작 작품인 만큼 K-뮤지컬의 주목받는 IP로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공연은 1월 31일까지 이어진다.
hyun@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