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1500원을 향해 치솟던 원·환율은 정부의 구두 개입과 처방전으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나 환율은 ‘한 번 뛰었다가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체력과 자본의 이동 경로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가격이다. 진정 국면은 종종 더 큰 파동의 전조가 되기도 한다. 이에 <투데이신문> 은 3편에 걸쳐 원화 약세가 구조적으로 어떻게 진행됐는지 톺아보고, 향후 환율 방향을 탐색해 본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문영서·최예진 기자】 지난해 외환 거래 마감을 앞두고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하자 정부가 적극적인 진화에 나서며 소강 국면에 들어선 모습이다. 다만 국내외 자금 흐름에서 달러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등 근본적인 불씨가 남아 향후 환율 상승 압력의 불안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3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장중 1485원을 돌파하며 연내 최고점인 1487원에 가까워지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24일 외환당국의 구두개입 이후 하루 만에 30원가량 떨어진 뒤 현재 1440원 선을 유지 중이다.
12.3 비상계엄 선언(오후 10시 20분) 직후 새벽 환율은 1442원(2년 만의 고점)으로 치솟아 종가 1466원으로 마감됐으며, 전월 말(1370원대) 대비 급등했다. 국회 계엄 해제 투표와 탄핵 논의로 정국 불안이 완화되자 직후 일주일 간 환율은 1430~1440원대로 소폭 안정됐고, 지난해 정권이 교체되며 6월 평균 1365.15원을 기록하는 등 안정세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로 분위기는 급변했다. 기본 관세 10%에 협상 이전 25%에 달하던 상호관세 부담이 다가오자 시장에서는 발효 전부터 수출 위축 우려로 원화 약세가 진행됐다.
상호관세율을 15%로 조정하는 무역합의가 이루어진 뒤에도 안정을 찾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환율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쟁점이었던 3500억달러 투자를 2000억달러 현금 투자로 조정한 뒤에도 환율은 1470원 안팎에서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12월 들어 연일 고점을 경신하기까지 했다.
고환율이 장기화되는 핵심 배경은 국내외 자금 흐름에서 달러 수급 불균형이 심화된 데 있다.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쏠림과 외국인 코스피 매도로 달러가 대규모로 유출되는 가운데, 글로벌 위험회피 국면에서 미국 국채와 달러 자산 수요가 급증하며 환율 안정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최근 1480원에 달하는 원화 약세의 가장 큰 원인은 국내 달러 수급 부족”이라며 “서학개미 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달러 보유가 늘어나면서 수급 불안 자체가 장기화되는 심리 자체가 원·달러 환율 급등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 투자한 서학개미 순매수량은 2019년에 24억달러 수준에 그쳤으나,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국내 증시의 급락과 신속한 반등, 저금리 기조 강화의 영향으로 2020년(77억달러), 2021년(207억달러)에 꾸준히 증가했다.
2024년 들어서는 수익률 차이, 환율 요인 등으로 국내 증시보다 미국 증시 매수량이 더 높아지며 105억달러를 기록했고, 지난해는 약 세 배인 326억달러까지 급등했다.
금융당국은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를 촉진하고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해외주식 매각 후 환전할 경우 양도소득세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등 대처에 나선 상황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원화 약세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아니라는 점에서 환율 상단 레벨업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평가다.
신영증권 조용구 연구원은 “정부에서 종가 관리를 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제도적으로도 세제 개편 등 여러 요소가 동원되며 달러 심리가 한 번 꺾인 것 같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달러 저점에서 다시 회수하겠다는 경향이 남아있다”고 분석했다.
수출 대기업이 연말 실적 관리를 위해 보유 달러를 적극적으로 매도하기보다는 환율 추가 상승에 대비해 ‘달러 쌓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화된 영향도 있다.
결산을 앞두고 기업이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는 ‘자금 리패트리에이션(본국 송환)’ 속도도 예년보다 더딘 탓에 외환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되는 달러 공급이 줄어들고, 환율 역시 따라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지난해 11월 구윤철 부총리는 기업 간담회에서 “수출 이익을 국내에 환류·투자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인공지능(AI) 거품론이 확산되면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해지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코스피 중심으로 매도세를 이어갔다. 11월 한 달 동안에만 14조4561억원 규모의 순매도가 쏟아졌고, 12월에도 AI 버블 우려 재점화로 반도체·IT 대형주가 직격탄을 맞으며 코스피가 4000선 아래로 급락하며 외화 유출이 발생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 국채는 11월 셋째 주 동안 4월 이후 최대 규모인 88억달러 유입을 기록하는 등 안전자산 수요가 급증했고, 글로벌 투자자들이 현금성 자산과 달러 표시 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달러 강세 압력이 강화됐다. 이로 인해 매도 대가로 받은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는 수요가 더해지면서 환율 고점 갱신 우려를 키운 바 있다.
국민은행 이민혁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많이 빠져나간 수급적 문제와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증가로 인한 달러 수요 증가가 영향을 미쳤다”며 “여기에 환율 추가 상승 불안감에 기업들이 달러를 매도하지 않고 보유하며 달러 수급이 꼬여 환율 상승에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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