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가봉 축구 국가대표팀이 정부 차원에서 해체됐다. 실제 이행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 제재가 들어갈 만한 사안이다.
지난 1일(한국시간) 심플리스데지레 맘불라 가봉 스포츠부 장관은 공식 성명을 통해 “네이션스컵에서 가봉의 수치스러운 경기력에 비춰 정부는 가봉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를 해산하고,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대표팀을 활동 정지시키며, 브루노 에켈레 망가와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을 대표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현재 가봉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공개됐던 맘불라 장관의 발표 영상 등은 삭제됐다.
가봉은 2025 아프리카축구연맹 네이션스컵에서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모잠비크와 F조에 속했다. 당초 코트디부아르, 카메룬과 함께 16강 진출을 다툴 걸로 예상됐던 가봉은 부진 끝에 3전 전패로 조별리그 탈락을 맛봤다. 가봉은 카메룬과 1차전에서 0-1로 패했고, 모잠비크와 2차전에서는 난타전 끝에 2-3 패배를 맛봤다. 모잠비크는 가봉에 승리하기 전까지 네이션스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아프리카 약체였다.
코트디부아르와 3차전에도 기적은 없었다. 전반 7분 겔로르 캉가, 전반 21분 드니 부앙가의 잇단 득점으로 앞서던 가봉은 전반 44분 장필리프 크라소에게 실점을 내주며 2-1 불안한 리드를 지켰다. 그러다 후반 막바지에 집중력이 떨어져 후반 39분 에반 게상에게 동점골을 허용한 데 이어 후반 추가시간 1분 바주마나 투레에게 통한의 역전골을 헌납하며 2-3으로 대역전패를 당했다. 만약 2-0에서 탄력을 받아 더 큰 점수 차로 이겼다면 조 3위로 올라서 16강 진출도 기대해볼 수 있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봉은 보츠와나, 적도기니와 함께 조별리그에서 승점 1점도 얻지 못한 국가로 남았다.
가봉 축구는 이번 네이션스컵뿐 아니라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에서도 탈락을 맛봤다. 8승 1무 1패 호성적에도 8승 2무 무실점이었던 코트디부아르에 밀려 조 2위로 아프리카 플레이오프에 가게 됐고,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연장 혈투 끝에 나이지리아 1-4로 지면서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최근 악재가 겹치다 보니 가봉은 정부 차원에서 칼을 빼들었다. 티에리 무유마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 전원이 경질됐고, 가봉 대표팀에는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무기한 활동 정지 처분을 내렸다. 가봉 대표 공격수이자 A매치 41골로 역대 최다 득점자인 오바메양과 가봉 A매치 105경기로 최다 출장자이자 주장 망가는 아예 대표팀에서 제명됐다.
콕 집어 두 선수를 언급한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다만 오바메양의 경우 대표팀 출전과 관련해 가봉 대표팀과 현 소속팀인 올랭피크마르세유 사이에 갈등이 있던 걸로 알려졌다. 마르세유는 오바메양의 허벅지 부상을 이유로 소속팀 복귀를 요청했고, 가봉 대표팀은 자신들의 진단과 치료를 믿어달라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오바메양은 결국 치료를 위해 마르세유로 복귀했고, 가봉의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르지 않았다.
관련해 오바메양은 “대표팀 문제는 내 개인의 문제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라며 지금 사안이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암시했다.
과거 아프리카에서는 정부가 대표팀을 해체하거나 활동을 정지시키는 일이 그렇게 드물지 않았다. 독재 정권도 많았을뿐더러 국가에 실망을 안긴 대표팀에 징벌을 내리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아프리카 국가가 많았다. 다만 FIFA가 축구와 관련한 정치적 개입에 직접적으로 제재를 가한 이후에는 아프리카 내에서도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줄어들었다.
가봉은 독재 정권에 이어 군부 쿠데타 정권이 나온 어지러운 현대사를 가진 나라다. 1967년부터 가봉을 지배한 오마르 봉고는 자신이 물러난 뒤에도 아들 알리 봉고 온딤바를 내세워 세습 독재를 이어갔다. 56년 동안 이어진 독재는 2023년 브리스 클로테르 올리기 응게마 사령관이 이끄는 쿠데타군이 봉고 대통령을 축출하면서 끝났다. 응게마는 임시 대통령에 오른 다음 국회를 장악하고 지난해 4월 투표를 통해 공식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 임기는 7년 단기로 못박았으나 이것이 독재의 끝일지, 또다른 독재의 시작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적어도 가봉 정부가 이번에 가봉 대표팀에 보인 행보는 수많은 아프리카 독재 정권이 보였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는 가봉 정부가 공식 성명을 슬그머니 내리면서 광폭 행보를 멈췄는데, 성명에 있던 내용이 실제로 이행될 경우에는 FIFA에서도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갈 걸로 예상된다.
사진= 아프리카축구연맹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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