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중앙은행이 보유한 외환보유고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미국 달러로 채워져 있다. 달러 비중이 점진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지만, 수치로 보면 통화 질서의 중심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외환보유액 통화 구성(COFER)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 세계 공식 외환보유고 가운데 달러화 비중은 57.79%로 나타났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6조6,300억 달러에 달한다. 전체 외환보유액 11조4,721억 달러 가운데 절반을 훌쩍 넘는 규모다.
유로화는 19.84%로 2위를 차지했다. 중앙은행이 보유한 유로화는 약 2조2,756억 달러 수준이다. 달러 다음으로 가장 널리 활용되는 준비통화라는 위치는 유지했지만, 달러와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엔화와 파운드화는 각각 5.81%, 4.73%를 기록했다. 두 통화를 합쳐도 전체 외환보유고의 11% 남짓에 그친다. 금융시장 규모와 안정성 면에서 오랜 신뢰를 쌓아왔다는 평가를 받지만, 기축통화 경쟁 구도에서 판을 바꿀 수준은 아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기타 통화’와 중견 통화의 분산 흐름이다. 캐나다 달러(2.77%), 호주 달러(2.05%), 중국 위안화(2.18%)가 비슷한 수준에서 포진했다. 위안화는 글로벌 무역과 금융 영역에서 존재감을 키워왔지만, 외환보유고 비중은 아직 2% 초반에 머물러 있다. 스위스 프랑은 0.18%로 극히 제한적인 비중을 보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되는 ‘탈달러’ 논의와 달리, 수치는 달러의 견고한 지위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 금융시장의 유동성, 국채 시장의 깊이, 국제 무역 결제에서의 활용도, 위기 국면에서의 안전자산 역할이 여전히 대체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다만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달러 비중은 과거 최고점과 비교하면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여러 통화로 외환보유고를 나누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특정 통화 의존도를 낮추려는 중앙은행의 전략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문제는 ‘달러 다음’의 명확한 선택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로는 정치·재정 통합의 한계, 엔화는 장기 저금리 구조, 위안화는 자본 통제와 금융시장 개방 수준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분산은 진행 중이지만, 중심을 대체할 통화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이번 통계는 중앙은행 외환보유고가 단순한 자산 축적이 아니라 환율 안정, 국제 결제, 금융 위기 대응을 위한 전략적 수단이라는 점도 다시 드러낸다. 숫자만 놓고 보면 통화 패권의 무게추는 여전히 달러 쪽에 실려 있다.
세계 경제 질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르지만, 외환보유고라는 가장 보수적인 지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변화는 느리게, 그리고 신중하게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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