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2026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기운이 내달리는 해지만, 한국 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다. 보호무역의 귀환을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기술 패권을 국가 전략으로 밀어붙이는 중국, 그리고 고금리·고물가의 구조화까지. 글로벌 경제는 단일 위기가 아닌 복합위기(poly-crisis) 국면에 진입했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재계가 새해 첫 메시지로 선택한 키워드는 명확하다. 'AI 전환'과 '본원적 경쟁력', 그리고 '실행'. CEONEWS는 경제 5단체와 4대 그룹을 중심으로 주요 경영진의 신년사를 교차 분석해, 2026년 한국 재계의 경영 방향과 중·단기 전략을 입체적으로 진단했다.
■경제 5단체, "대전환의 골든타임, 제도 혁신이 답이다"
지난해 12월 29일 일제히 발표된 경제 5단체장들의 신년사는 이례적으로 한 방향을 가리킨다. 규제 개혁, 노동 구조 개편, 기업가 정신의 복원. 이는 저성장 시대를 돌파하기 위한 기반 마련으로, 정부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공통된 톤이다.
대한상공회의소를 이끄는 최태원 회장은 기업가정신의 복원을 한국 경제 재도약의 출발점으로 제시했다. 그는 "오늘의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은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온 도전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라며, 성장 친화적 제도 환경 구축을 촉구했다.
한국경제인협회의 류진 회장은 2026년을 '한국 경제 대전환의 시기'로 규정했다. 그는 '뉴 K-인더스트리' 시대를 화두로 내걸며 "낡은 제도는 과감히 버리고 민간의 역동성을 되살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메이드 인 코리아'를 뛰어넘어 '이노베이티드 인 코리아'의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며 혁신 중심의 산업 재편을 주문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손경식 회장은 2026년을 "경제가 위기를 넘어 대전환을 이루는 골든타임"으로 정의했다. 그는 경직된 노동시장 규제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꼽으며 "다양한 생산방식을 폭넓게 인정하고, 근로시간도 업무별 특성에 맞게 유연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김기문 회장은 중소기업의 AI 전환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AI를 활용한 스마트공장 고도화 등 중소기업도 AI 대전환을 통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며, 200억원 규모의 'AX-Sprint' 사업을 통한 실질적 지원을 약속했다.
결론적으로 2026년 경제단체들은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 리스크를 '시장'이 아닌 '제도와 구조'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단기 실적보다 중장기 체질 개선에 초점을 맞춘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4대 그룹 신년사, 선언적 구호대신 구체적 실행 초점
4대 그룹의 신년사는 선언적 구호 대신 구체적 실행 계획에 초점을 맞췄다. 복합위기 속에서 생존과 도약을 위한 실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태도가 뚜렷하다.
▲삼성전자 – "근원적 경쟁력으로 AI 시대를 선도하라"
삼성전자는 2일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과 노태문 DX부문장(사장)이 각각 신년사를 발표했다. 반도체와 완제품 사업의 본질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한 이례적 행보다. 전영현 부회장은 "삼성전자는 로직부터 메모리, 파운드리, 선단 패키징까지 '원스톱 솔루션'이 가능한 세계 유일의 반도체 회사"라며 근원적 기술 경쟁력 회복을 주문했다. 노태문 사장은 "AX(AI 전환)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우리의 생각과 업무 프로세스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과정"이라며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실행력과 도전 문화를 정착시키자"고 강조했다.
HBM과 AI 반도체 시장에서의 주도권 탈환이 2026년 삼성의 핵심 과제다. R&D 집중과 비핵심 사업 정리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SK그룹 – "승풍파랑, AI라는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라"
최태원 회장은 1일 신년사에서 '승풍파랑(乘風破浪)'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을 화두로 던졌다.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 나가되, 옛것을 본받아 새로움을 창조하자는 의미다.
최 회장은 "AI는 이미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온 현실이 됐다"며 2026년을 SK그룹의 'AI 원년'으로 규정했다. 그는 "메모리, ICT, 에너지솔루션, 배터리에 이르기까지 SK가 수십 년간 걸어온 길은 결국 오늘의 AI 시대를 준비해 온 여정이었다"고 평가하며, 그룹 전체 역량을 결집한 'AI 통합 솔루션' 제공을 주문했다. 포트폴리오 리밸런싱과 운영개선을 통해 기초체력을 회복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2026년은 SK의 확장기가 아닌 체질 재편의 완결 원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HBM 독주 속에서 AI 서비스 사업화가 관건이다.
▲현대자동차그룹 – "피지컬 AI 플랫폼으로의 확장"
정의선 회장은 오는 5일경 신년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CES 2026을 통해 그룹의 방향성은 이미 뚜렷하게 드러났다. 핵심은 AI 로보틱스의 일상화다. 현대차그룹은 CES 2026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차세대 모델을 첫 실물 시연한다. 단순 로봇 제조를 넘어 AI 로보틱스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다.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전환과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통한 자율주행 고도화도 핵심 축이다.
자동차 제조를 넘어 AI·로봇·모빌리티를 아우르는 '피지컬 AI 플랫폼'으로의 확장이 본격화된다. 미국·유럽 시장 공략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LG그룹 – "변곡점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혁신하라"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12월 22일 신년사를 통해 '선택과 집중'을 화두로 제시했다. LG는 2022년부터 구성원들이 새해를 차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연말에 신년사를 전하고 있다.
구 회장은 "우리는 지금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변곡점에 서 있다"며 "기술의 패러다임과 경쟁의 룰이 바뀌고 고객의 기대는 더욱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성공방식을 넘어 새로운 혁신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0년 후 고객을 미소 짓게 할 가치를 선택하고 여기에 오늘을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LG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ABC(AI·Bio·Clean-tech) 전략을 중심으로 핵심 가치에 대한 집중이 강화된다. AI 기반 생활공간 재정의가 LG전자의 차별화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2026 재계 3대 경영 키워드: A·C·E
재계 신년사를 분석한 결과, 2026년 경영 키워드는 'A·C·E'로 요약된다.
① AI Transformation
AI는 더 이상 실험이 아니다. 제조·바이오·소재·서비스 전반에서 ROI 중심의 AI 투자가 본격화된다. 삼성과 LG는 AI를 사업 전반에 적용하며, SK는 그룹 차원의 'AI 통합 솔루션'을 추진한다. 2026년은 'AI 실험기'가 아닌 '사업화 전환기'다.
② Core Competitiveness
문어발 확장은 퇴조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구조조정과 선택적 투자가 늘어난다. SK의 리밸런싱, LG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 대표적이다. 본원적 경쟁력 회복이 생존의 전제 조건이 됐다.
③ Efficiency & Resilience
원가 절감과 공급망 다변화가 동시에 요구되는 이중 압박의 시대다. 미·중 기술 갈등 속에서 재계는 대체 공급망 구축과 효율성 제고를 병행하고 있다.
■2026년은 '선택의 해'다
2026년 재계 신년사는 희망보다 냉정함이 앞선다. 그러나 이는 비관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에 올인할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결단에 가깝다.
단기적으로는 현금 흐름과 재무 안정, 중장기적으로는 AI·로보틱스·바이오에 대한 투자를 병행하는 양손잡이 전략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의 1월 4~7일 중국 국빈 방문과 200여 명 규모의 경제사절단 동행은 공급망과 시장 접근성 측면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4대 그룹 총수가 모두 참여하는 이번 방중은 6년여 만의 대규모 경제사절단으로, 미·중 갈등 속 한국 기업의 균형 외교를 시험할 기회가 될 것이다.
결국 2026년은 한국 기업들이 복합위기를 '기술 격차'로 전환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정부의 제도 혁신, 기업의 실행력, 노사의 협력이 동시에 작동하지 않는다면 '초격차'는 구호로 끝날 수밖에 없다. 재계는 이미 답을 정했다. AI를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 그리고 실행. 이제 남은 것은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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