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3사가 전기차 캐즘으로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면서 배터리사 성장 전략에도 차질을 빚게 된 셈이다. 당장 완성차 업체의 공급 계약 해지로 위탁생산 중심의 구조적 리스크가 두드러졌고, 이는 어렵게 쌓아 올린 실적을 흔들었다. 여기에 중국발 저가 공세가 더해지며 생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위기를 벗어날 돌파구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 공략,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 속도전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제는 각사의 전략으로 경쟁력을 보여줄 때다. <편집자주>편집자주>
【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 삼성SDI가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많은 연구개발(R&D) 비용을 지출하며 ‘초격차’ 기술 확보 승부수를 띄웠다. 전기차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심 전략을 강화하는 한편, 전고체 배터리의 세계 최초 상용화로 차세대 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2일 삼성SDI에 따르면 최근 미주법인 ‘삼성SDI 아메리카’가 미국 에너지 관련 인프라 개발·운영 업체와 ESS용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2조원대 후반으로, 오는 2027년부터 약 3년간 공급할 예정이다.
이번 계약은 전기차 시장의 둔화 속에서 ESS를 새로운 돌파구로 삼은 삼성SDI의 전략과 맞닿아 있다. NCM(니켈·코발트·망간) 삼원계 중심 정책을 유지한 삼성SDI가 제품 포트폴리오를 LFP로 확장하는 전환점이자 본격적인 ESS 시장 공략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회사 측은 평가했다.
삼성SDI는 미국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와 합작해 설립한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스타플러스에너지’의 일부 생산 라인을 ESS용 LFP 라인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북미를 중심으로 중국산 배터리 대체 수요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미국 내 ESS 생산 능력을 올해 말 30GWh 규모까지 확대해 현지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할 계획이다.
삼성SDI는 ‘안전성’을 ESS 사업의 경쟁력으로 내세웠다. 특히 20피트(ft) 크기 컨테이너에 배터리와 안전장치, 공조설비 등을 일체화한 ESS 솔루션 ‘삼성 배터리 박스(SBB)’는 국내외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2024년 3월 ‘인터배터리 2024’ ESS 최고 혁신상을 받은 데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미국 ‘CES 2025’ 혁신상을 거머쥐었다.
SBB는 배터리에서 열폭주가 발생하면 해당 배터리 모듈 내에 소화 약제를 직접 분사해 열 전파를 차단하는 화재 안전성 기술(EDI)을 갖췄다. 최신 제품인 SBB 2.0에는 각형 배터리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No TP(No Thermal Propagation) 기술도 적용됐다. No TP는 배터리 셀 사이에 단열재를 배치하고 열전파 예측 프로그램을 통해 특정 셀의 온도가 상승했을 때 인접 셀로 열이 전달되는 것을 막는 기술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는 ESS 사업을 오래 진행하며 기술력과 노하우, 양산 경험을 모두 갖췄다”며 “SBB에 EDI를 비롯한 안전 기술을 적용하고, 다양한 고객 편의 기능을 종합한 것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으면서 2조원대 공급 계약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SDI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의 초격차 확보를 위해 R&D 투자도 가속하고 있다. 지난해 1~3분기 누적 기준 1조1016억원을 R&D에 투자하며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이는 매출액의 11.7%에 달하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은 9876억원(매출액의 5.6%), SK온은 2314억원(매출액의 4.19%)을 R&D 비용으로 투입했다.
삼성SDI는 배터리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전고체 분야 기술 개발에서 도요타, CATL 등과 함께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내부 전해질을 고체로 바꿔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을 동시에 높인 차세대 배터리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목표 시점을 2027년으로 삼았다. 경쟁사 대비 2~3년가량 빠른 만큼 목표 시점에 양산을 이룬다면 ‘세계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기술 선점은 전략적 의미가 크다.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서 핵심 고객을 장기간 유치하고, 생산 경험을 누적해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양산 이후 프리미엄 시장을 우선 공략하고 점차 상용화 범위를 넓혀가는 전략을 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SDI가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성공하면 ‘초격차 기술’ 철학을 증명하게 된다”며 “상징적 의미로 기술을 선점한 뒤 천천히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며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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